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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최세창
- 1261
- 2024-09-06 04:07:34
<야고보서 4:11-12>
11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1. 시작하는 말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정확한지 그른지도 모른 채,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면서도, 그런 말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불행을 초래하는가에 대해서는 별 생각도 없고, 책임 의식도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기독교인들에게 피차에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입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이 피차에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율법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사람은, 그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자인 것입니다.
2. 비방하는 자나 판단하는 자
그 하나님의 율법 중 율법은 사랑의 법이 아닙니까? 마태복음 22:37 이하를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같은 기독교인들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자입니다.
“비방하지”의 헬라어 카타라레이테(καταλαλείτε)는, 말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해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바클레이(W. Barclay)는 “현재 그곳에 없기 때문에 변명할 수 없는 사람을 비방하고, 모욕하며, 중상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주석을 했습니다.
“판단하는”의 헬라어 크리논(κρίνων)은 단순히 비평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에 대해 결정적으로 단정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깁슨(E. C. S. Gibson)은 “야고보는 거칠고 트집만 잡는 비판을 염두에 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취지는, 그곳에 없기 때문에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없는 사람에 대해 상처를 입히거나, 불명예스럽게 단정하거나, 인격 모독을 하는 말들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야고보 사도가 판단하지 말라고 한 말씀은 어려운 문제를 초래합니다. ‘남에 대한 판단이라는 판단은 다 하지 말라는 것인가? 해야 할 판단이 있고, 해서는 안 될 판단이 있다는 것인가, 해야 할 판단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고린도전서 6:2을 보면,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6에는,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라고 했습니다.
포티트(G. Poteat)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인생을 살 수 있는가? 다른 사람과 관계할 때, 그들의 성격이나 능력들을 비평적으로 평할 수 없는 것인가? 그와 같이 필요한 식별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더욱이, 저자인 야고보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금하고 있는 비난을 하고 있지 않는가? 예를 들면, 불충실한 피조물들, 죄인들, 이중 마음을 가진 사람들 등이 있다. 주 예수님이나 바울 사도처럼, 야고보 사도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도덕적인 평가를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남을 판단해야 할 때는, 자기자신을 척도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이나 비판의 척도는 사람들의 뜻이나 생각이 아닌, 주 하나님의 뜻이나 생각에 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판단이나 비판은 보편타당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같은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나 비판은, 그들의 유익과 덕을 위한 사랑에 이끌려야 합니다.
미국 여배우인 안젤리카 휴스턴은, 까다로운 감독으로 소문났던 아버지 존 휴스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상생활에서도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제일 싫어하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고호를 싫어한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당장 고호의 대표적인 그림과 함께 고호가 싫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답을 못하자 아버지는 “사물을 절대 경솔히 판단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편견을 갖는 태도야말로 가장 나쁜 것이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칼빈(J. Calvin)은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이 그 자신의 방향에 따라 살기를 원하는, 태어날 때부터의 병폐가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이런 병폐를 버리고, 우리는 주 예수님의 지체로서 주 예수님의 사랑의 법을 따라 판단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이런 판단과 비판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이 동기와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바울 사도와 야고보 사도가 금한 것은 위장된 우월감에서, 또는 우월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자기자신을 척도 삼아서, 또는 그릇된 지식과 정보를 척도 삼아서 남을 정죄하고 파괴하는 악의에 가득 찬 판단과 비방입니다. 이런 판단이나 비판이나 비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좌절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목숨을 끊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쉽지는 않지만, 그런 판단이나 비판이나 비방에 대해 초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남의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기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국 연예인 조지 클루니는, “아버지는 늘 제게 ‘사람들이 네게 대해 좋게 평을 한다고 해서 네가 꼭 그렇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너를 아주 심하게 헐뜯고 비난할 때라도 네가 꼭 그처럼 나쁜 놈만은 아니란 걸 기억해라.’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을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바울 사도가, 자신의 사도권과 복음을 가짜라고 하는 그 고린도 교인들의 비방에 대해 한 말씀이 고린도전서 4:3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또 주 예수님의 종이요 사도로서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판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식의 판단이라면,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말 귀를 기울여 받아들여야 할 판단은, 주 하나님의 판단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악의로 왜곡한 것을 척도로 삼는 비방이나 비판은 물론,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나 그릇된 지식이나 정보를 척도로 삼는 판단이나 비방을 금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남을 비방하는 것은 곧 사랑의 법을 비방하는 것이고, 남을 판단하는 것은 사랑의 법을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땅히 사랑의 법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법을 어김으로써 그들 자신을 사랑의 법 위에 두는 교만 가운데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멋대로 사랑의 법을 지키거나 거역하고, 생략하거나 왜곡함으로써 사랑의 법을 재판하는 오만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야고보는 비방이나 판단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입법자와 재판자는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뿐이시라는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너희가 누구관대 감히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절대성에 근거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없애 버릴 사람도 없고, 논박할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이 뒤바뀌기도 하는 세상의 모든 법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종속되어야만 인간을 위한 법으로서의 가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유일한 입법자이신 하나님은 또한 유일한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의 재판권은 당신의 절대성과 창조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 능력과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진정한 입법자시며 재판장이시므로, 하나님의 법을 어겨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권을 빼앗는 것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람된 행위인 비방이나 판단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야고보 사도는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네 판단이, 하나님의 판단처럼 정확할 수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과 뒤섞여 살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비방하거나 비판하거나 판단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기자신을 척도로 삼아 판단을 하거나, 그릇된 지식과 정보를 척도로 삼아 비판을 하거나, 악의로 왜곡한 것을 척도로 삼아 비방과 판단을 하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언행은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비방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그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그 율법의 재판자가 되는 오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비방과 비판과 판단이 필요할 때에는, 반드시 유일한 입법자이시며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척도로 삼고, 나쁜 동기와 목적이 아닌 사랑의 동기와 목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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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