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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나
최세창
- 1642
- 2020-07-16 21:06:05
<시편 100:1-5, 요한복음 4:23-24>
1온 땅이여 즐거이 부를지어다 2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3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1. 시작하는 말
시대와 장소, 나라와 종족에 따라 선과 악, 옳고 그름이 뒤바뀌는 양심이나 도덕이나 종교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구원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심령에 내주하신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결한 삶을 사는 행위를 믿음의 행위라고 합니다. 야고보서 2:22을 보면,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교회, 직장이나 사회에서 믿음의 행위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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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합니다. 이 생활의 집약이자 교육과 훈련이 바로 예배입니다.
2.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께 드릴 기쁨과 감사의 예배
성경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러 성전에 들어갈 때에 부른 노래입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전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쁘고 즐겁고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괴로움도 있고, 일을 잘해도 인정을 못 받고, 세운 공도 가로채이고, 게다가 가정과 직장과 국가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짜증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도 없고, 말씀에 대한 갈망도 없이 타성적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요, 문제 해결과 복의 열쇠요, 영의 양식과 생수요, 천국행 인생길의 빛이요, 영적 싸움에 절실한 성령의 검인데 말입니다.
어떤 교인들은 교회에 나와 예배하면서도, 하나님과 자기 형편과 타인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물론 그런 교인들의 사정과 형편을 알면, 인정상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인류와 세상을 섭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전에 나와 예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사람들보다 사람들의 처지와 형편을 더 깊고 정확하게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섬기며 찬양하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속뜻을 읽어야만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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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으뜸으로 여기지 말고, 자기를 판단이나 행동에서 중심이 되는 기준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주제에 자기 인생의 주권자임을 자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적 환경이나 자연 환경을 마음대로 통제하기는커녕, 그 모든 것에 얽매이는 종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자신의 생각이나, 변화무쌍한 기분에 끌리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34을 보면,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고, 그 사랑의 하나님 위주와 하나님 본위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위주와 하나님 본위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툭하면 깊은 밤에 잠을 깬 동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 대곤 해서 동네에 소문이 난 사건입니다. 엄마가 우울하고 속상하고 화나는 일로 까라졌다가도, 웬 전화만 받고 나면 새벽 한두 시라도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를 혼자 두고 달려가곤 한 것입니다. 애인에게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온갖 죄악의 낙을 즐기라는 사단의 유혹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갑작스런 파멸과 지옥의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속히 회개하고 예배하며 살아야 합니다.
공산 독재자가 나타나니까, 남녀노소가 종전까지의 슬픔과 고통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두 손을 높이 흔들면서 깡충깡충 뛰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환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누구라도 독재자가 부르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하며 그의 아방궁에 들어가서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 것입니다. 존속 살해자인데 말입니다.
예배에 참석해도 염려와 근심, 선입견과 고정관념, 정치적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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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이념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안 맞는 부분에 대해 기분 나빠하고 불만과 불평을 하기 때문에 은혜는커녕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시간에는 마음과 생각을 비우고, 지정의를 지배하는 영을 기울여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설교자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하겠습니까? 설교자는, 먼저 온 영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들어야 합니다. 내 들음만 옳을 수 없으므로, 성경 주석서들과 성경 사전 등을 많이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통치자들도, 사람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세상의 모든 보배와 같은 것들도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것입니다. 죄와 불신앙으로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당할 인간이 믿기만 하면 죄를 사하여 성결하게 살게 하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주 하나님을 믿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4:23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 및 그로 인해 성취된 진리로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 중에 스스로 원해서 생명을 얻은 이도 없고, 스스로 생명을 만든 이도 없습니다. 사람을 비롯한 만물은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하는 한,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찬양해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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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꿀 만큼 값진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당신의 것인 당신의 백성이요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것으로 여겨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을 가던 우리가, 인류의 대속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보시고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6:20을 보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르시기 때문입니다. 엄마 소리도 못하던 아기가 안 하던 말을 하고, 재롱을 부리며 자라는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대견합니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가장 큰 아픔이 있다면, 자녀가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새롭게 성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격과 이성과 영성이 어느 수준에서 성장을 멈췄습니까? 지식과 정보를 얻는 지적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투자하면서도, 더 중요한 영적 지식과 영적 지혜와 사랑의 성장을 위해서는 투자하지 않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여 당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양육하시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섬기며 예배해야 하는 하나님은 선하신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18세기 초, 영국에서 신대륙인 미국에 이주한 청년인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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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는, ‘내가 이곳에서 거부가 되어 내 자손에게는 가난을 모르고 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뉴욕에 술집을 차리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당대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청년인 조나단 에드워즈(J. Edwards)는 ‘내가 여기까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왔으니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5대 자손들이 태어난 후, 뉴욕의 교육위원회에서 컴퓨터로 두 사람의 자손을 추적 조사한 결과입니다.
거부의 꿈을 이룬 마르크 슐츠의 자손 1062명 중에 96명이 5년 이상 옥살이를 하였고, 65명이 창녀가 되었고, 58명이 정신이상자나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460명이 자기 이름도 못 쓰는 문맹자이었고, 286명이 정부의 보조를 받는 극빈자이었습니다.
프린스턴대학을 설립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손 1394명 중에는 목사와 선교사 116명, 장로와 집사 286명, 대학 총장 12명, 교수 75명, 의사 60명, 장교 76명, 저술가 80명, 판사 30명, 변호사 100명, 실업가 73명, 발명가 21명, 고급 관리 80명, 부통령 1명, 상원의원 1명, 하원의원 3명, 주지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는 자녀와 후손을 위해서라도, 신앙생활의 집약이자 교육과 훈련인 예배를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