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신의 학풍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박형권
  • 1892
  • 2020-07-20 06:28:48
감신의 학풍은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고매한 학문의 경지에 이르시다보니
신앙적 양심과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의 사랑에 기인하는 목회자적 염치를
그만 놓치고들 계신것은 아니신지
외람스럽지만 감신출신 목사님들께
통렬한 자기성찰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저는 패역한 죄인입니다.
장로의 신급으로
목사님들을 공박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선수끼리는 서로 알아본다지 않습니까
목사님들 우리와 다르신 게 없으시더라고요
아니 오히려 더 하시더라고요
적어도 평신도들보다는 나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미국 중서부의 조그만 한인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은퇴하는 아버지 목사 자리를 활용한 아빠 찬스로 젊은 나이에
100년 된 교회의 담임으로 부임을 했고, 지역 내의 모든 교회 중에서 최고액수의 연봉과
주택제공, 핸드폰 요금까지 내주는 대우를 받으면 목회를 '비지니스'로 친다 해도
열과 성을 다하여 몸이 부서져라 할 정도로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농촌의 읍소재지에 위치한 합덕교회...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은 60~70%가 70세 이상인 서민들이고
그들은 한 달에 2~300 만원의 수입을 올리려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일하며 때로는 고용주의 눈치를 보며 최선을 다합니다.

예배를 영어로 표기하면 Worship도 있지만 Service도 있더라고요.
무식해서 신학적인 정의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면 (Worship),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인생들에게 복과 평안을 주시는 (Service)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 우리교회 담임목사라고 하는 분은 우리를 도대체 어떤 존재와 대상으로,
우리를 상대로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기본적으로 모르는 분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는 노려보며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담임으로 인정은 했습니까?" ...
분명한 것은 처음 그가 부임하였을 때 우리는 진심으로 환영했고 기대를 했으며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편한 내색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장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가 와서 첫번째로 벌인 작업이 '암행심방'입니다.
대심방을 신청자에 한해서 목사와 사모 단 둘이서만 교인 집을 찾아다녔는데,
그렇게 해야 성도들의 속 깊은 사연을 들을 수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교인들은 불편해하며
이 전의 방식대로 인도자와 속장이 배석하는 것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불편하면 안 받으시면 됩니다"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심방을 받은 이들과 받지 않은 이들로 나뉘어 지는 편가르기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교회와 교회리더들에 대한 불만이나 부정적인 정보들을
암행심방을 통해 수집한 것이었습니다.
역시 유학파는 다른가?... 이것은 목회와 관련한 신종 고급기술(?)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교회경영은 지역 내의 타교단 목회자들까지 근심하고 우려하는 가운데
분열과 갈등과 증오의 싹을 틔우더니 온갖 대내외적인 법적 송사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가 내 걸은 교회표어는 '교회다운 교회 세우기'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00년의 역사를 써 내려오며 기라성같은 역대 목회자들의 목양을 통해
오늘의 교회를 이뤘는데
담임목회지로는 처음 부임한 젊은 목사가 "교회가 제대로 된 것이 없다"며
"교회를 바로 세운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교회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운(down)시키고 있는' 그를 보며
우리 합덕교회 사태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하시면서 조언을 하신 어느 목사님의 묵직한 말씀을
우리 담임목사님이 경청을 하면 좋을텐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것이 합덕교회의 불행이고 우리가 감신에 대해 실망하고 있던 차에,
금번 총회행정재판에서 감신출신 목사들이 담합하여 내린 판결은
가히 테러에 가까운 신앙적인 상해를 성도들에게 입히고 감리교회를 흔들었기에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 하나님과 전체 감리교회 성도들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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