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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850:1의 승리/8월16일주/강단초록.
박영규
- 1129
- 2020-08-15 04:10:24
blog.naver.com/amenpark
설교-850:1의 영적전쟁에서 승리
성경-왕상 18:20-39절
오늘은 성경과 역사를 통해서 적들이 강하고 아무리 숫자가 많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갈멜 산 위에서 영적인 전투
BC 860 년 경 3년6개월간 이스라엘 땅에 가뭄이 들어 사람도 가축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뭄의 원인은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을 핍박하고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건의한 대로 갈멜 산 위에서 아합 왕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알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400명 등 합계 850명과 영적인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물은 송아지로 정하고 우상 섬기는 자들이 먼저 우상에게 제단을 쌓고 바알이여 라고불렀지만 사람이 만든 우상이 응답할 리가 없지요. 엘리야의 순서가 되어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 12돌을 수축하고 번제물 송아지에 각을 뜨고 엘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께 응답해 달라고 주 여호와가 하나님 이신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의 불이 번제물에 내렸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응답으로 850:1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2.다윗이 블레셋의 침략을 막아 승리를 하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성경의 내용이지요. BC 1020년 경 다윗이 17세에 베들레헴 아버지 이새의 집에서 선지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며칠 후 군에 간 형들을 찾아갔다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베들레헴 근처에서 대치중인 것을 보게 되었는데 적장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사들을 향해 조롱하는 말을 듣고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서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려 나라를 구했습니다(삼상17장)
3.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13척:133척)
정유재란 (丁酉再亂)은 1597년 8월 도요토미 정권 일본군이 임진왜란의 정전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재차 조선을 침공하여 이듬해인 1598년 12월까지 지속된 전쟁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일어난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이순신(李舜臣)장군이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원균(元均)이 거느린 조선 수군은 대부분 패하였다. 이에 그 해 7월 22일 유성룡(柳成龍) 등의 간곡한 건의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임명된 이순신은 휘하 군사들의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그러나 당시 군중에 남아 있던 쓸 만한 전선(戰船)은 칠천 량 해전에서 배설(裵楔) 장군이 탈출시킨 12척에 불과하였다. 여기에 일반 백성들이 나중에 가져온 한 척이 더해져서 13척이 되었다. 이때 일본 수군은 한산 섬을 지나 남해안 일대에 침범하면서, 육군의 육상 진출과 동시에 서해로 진출하려 하였다.
따라서 이순신은 서해 진출의 물목이 되는 명량을 지키기 위해 이진(利津)·어란포(於蘭浦) 등지를 거쳐 8월 29일 벽파진(碧波津: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으로 이동하였다. 일본 수군은 벽파진에 있는 조선 수군에 여러 차례 야간 기습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우리 측의 철저한 경계망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적의 정세를 탐지한 이순신은 명량을 등 뒤에 두고 싸우는 것이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는 9월 15일 조선 수군을 우수영(右水營: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으로 옮겼다. 다음 날인 16일 이른 아침 일본 수군이 명량으로 진입하였다. 일본 수군의 진입 사실을 알게 된 이순신은 출전 령을 내리고 최선두에 서서 명량으로 향하였다. 그 때 명량의 조류는 거의 정조시기(停潮時期)였으며 일본 수군의 전선은 133척으로 확인되었다.
이순신은 명량으로 들어서면서 일자진(一字陣)을 형성해 일본 수군의 수로 통과를 저지하려 하자, 일대 혼전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조류는 서서히 남동류(南東流)로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했으며, 일본 수군은 이순신이 타고 있는 전선을 포위하려는 기세였다.
매우 위급한 순간, 이순신은 뒤에 처져 있는 거제현령 안위(安衛)와 중군(中軍) 김응함(金應諴) 등에게 적진으로 돌진하게 하자, 전투는 절정에 이르렀다. 또한,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한 조류는 소수의 전선이 활동하는 조선 수군에 비해 많은 전선을 거느리고 있는 왜군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하였다. 협수로 에서의 불규칙한 조류 분포로 인해 서로의 진형(陣形)과 대오(隊伍)가 붕괴되고 있었다.
격전중 이순신의 전선에 동승하였던 투항왜인 준사(俊沙)가 적선을 내려다보며 “꽃무늬 옷을 입은 저 자가 바로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 때의 일본의 수군장수 구루시마(來島通總)다.”라고 외쳤다. 그러자 이순신이 김석손(金石孫)을 시켜 그를 끌어올린 뒤 목을 베어 높이 매달자, 이를 본 일본수군은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다.
이에 전투의 기세를 잡은 조선 수군은 현자총통(玄字銃筒)과 각종 화전(火箭)을 쏘면서 맹렬하게 공격하였다. 녹도만호 송여종(宋汝悰)과 평산 포대장 정응두(丁應斗) 등 여러 장수와 병사들이 적선 31척을 분파하자 일본 수군은 물러나 도주하고 말았다.
이 해전의 승리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10배 이상의 적을 맞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그들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열세한 병력을 지휘한 이순신은 위장전술로써 피난선 100여 척을 전선으로 위장해 뒤에서 성원하게 하였다는 것과, 철쇠(鐵鎖)를 협수로에 깔아서 적선을 전복시켰다는 기록도 일부 전해오고 있다.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명량대첩 [鳴梁大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께서는 천지신명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4.한 천사와 앗수르 군 18만5,000명(이사야37:36)
BC701년 경 앗수르 군대 18만 5,000명이 유대나라를 침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하였을 때 유다 왕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 한 천사를 보내셔서 18만 5,000을 다 멸하셨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왕의 기도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침략군을 물리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과 주님의 교회를 적들과 적그리스도로부터 지켜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예수님께서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위에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사탄과 사망이 정복 되고 인류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졌으며 성령강림의 은혜와 영생 천국에 가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요한14:6)
코로나 19감염 병으로 인류가 고통을 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장마가 오래지속 되면서 폭우로 홍수로 피해를 입어 어려운 시기에 예배와 기도와 찬양과 감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셔서 적그리스도와 사탄과 이단과 병마로부터 인류와 우리나라와 국민들과 여러분들과 가족을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제자교회 담임목사 박 영 규*한국위안부소녀 기념교회 설립추진목사(추진위원:서부연회 총무 배성기 목사, 김민석 집사, *동대문교회 남은 성도들 지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