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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기독교“ /박충구
장병선
- 1693
- 2020-08-20 07:24:33
1.
나는 하나님은 코로나바이러스에서 그대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광훈이는 그가 요구하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병에 걸려도 낫는다고 떠들었다. 그랬던 그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을 실려갔고. 그를 철석같이 믿던 그의 신자 수백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펜데믹 한 가운데에서 어리석음이 극에 달한 사건이다. 나는 전광훈이의 몰이성적인 행태를 일찍부터 비판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목사의 상식 이하의 허세를 일종의 특별한 예지적 능력에서 나오는 저항과 비판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기독교 내에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조작하는 정신적이며 도덕적인 최면 현상에서 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잘못 배운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과 도덕적 판단을 쉽게 유보하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권위를 가진 자가 비상식적인 이상한 짓을 해도 그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나 도덕적 판단을 유예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습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복종을 유도하기 위하여 인분을 먹으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는 신자, 전염병이 대 유행하고 있는 데도 감염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보이라는 요구에 응하는 것이 신앙심이라고 믿는 신자,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무모함을 좋은 신앙의 증거라고 평가하는 몰이성적인 행태가 무수한 교회에서 강요되거나 교도되고 있다.
이런 몰이성적인 신앙의 형태는 사실 신자들의 합리성과 지성을 박탈하는 일종의 종교 사기행위와 다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화된 교회들은 이런 야비한 방식으로 신도들에게 자신만의 매우 특별하고 철저한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전염병에도 안 걸리고, 오히려 비이성적인 신앙을 가지면 더 큰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인 양 허세를 떠는 일에도 능숙하다. 나는 전광훈이의 행태가 기존의 대형 교회 목사들의 행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광훈이는 음험한 언론이 대서 특필해 주고, 미통당 정치인들이 손을 잡아주면써 실인즉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마치 자기 자신이 시대의 예언자인 양 스스로를 기만하는 어리석음을 자초했다면, 다른 대형 교회 목사들은 전광훈이처럼 정치적 이용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서지만 않았을 뿐, 뒤에서는 전광훈이와 거의 똑같은 짓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 따르다. 공통점은 비지성, 비이성, 몰상식을 마치 영성적 능력이나 통찰인 것처럼 조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작금에 전광훈이만 이단시하는 논리는 한국 기독교가 상당부분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다한 대형 교회 목사, 심지어 시골 골짜기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들까지 전광훈이와 한 패거리 였다.
2.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지만 나의 생각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반이성적 신앙주의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유를 제한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에 유래 없이 급성장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기에 인색하고, 주제넘은 오만에 빠져 있다. 종교의 급성장은 종교 권력을 키워왔고, 비대해진 종교 권력은 점점 오만해 져서, 교회의 신학적, 혹은 윤리적 오류를 수정하거나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거절, 차단함으로써 교회 안에 별에 별 사악한 수단과 방법까지 검증 없이 유통시키는 교회로 전락시켰다.
여기에서 참된 종교의 내적 가치들은 여지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그 대신 나타난 현상은 물신주의, 권력지상주의, 성공주의 노선을 따라 저마다 대형화 된 교회를 이루는 것이 마치 기독교 선교 사역의 성공인 것으로 간주하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성직자 간에 일어나는 극심한 경쟁은 시기와 질투를 낳고, 동역의 구조를 모두 파괴해 버렸으며, 경쟁에서 이긴 자들은 오만과 허세를 떨고,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은 좌절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대부분 의욕을 잃고 생존 능력도 취약해 기가 죽어 있다.
종교가 종교인 것은 이 세상에서 접할 수 없는 거룩함의 현존, 즉 영성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을 때다. 정갈한 영성의 자리에서 나오는 맑은 정신과 그 정신에서 나오는 가르침이 신도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와 거듭남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맑고 깨끗한 영성의 목소리를 상실했다. 전광훈이라는 한 인간을 표현형으로 드러낸 한국교회의 진면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고, 무책임한 언변, 무례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허세, 그리고 합리적이며 민주적 질서를 무시하는 비틀린 권위 부리기다. 나는 이런 모습을 전광훈에게서만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 목사들은 겉으로는 교양 있는 댄디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간간히 그들이 발설하는 언술 속에 담긴 그들의 정신 세계를 들여다보면 전광훈이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성서적이지도 않고, 신학적이지도 않다.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 근대사에서 형성되어온 독재와 민주화의 대립 구조 속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적이 어없다. 몇 있다 할지라도 모두 변절했다. 이들은 전광훈이와 동일하게 반공주의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들이 숭앙하는 모델은 제국주의적 착취를 통해 얻은 부를 소수만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미국이다. 이들은 뜻과 마음을 모아 이명박 시절에 극우적인 신우파 운동을 결성하고 지금까지 그 그늘 아래에서 세상에 관한 극우적으로 해석된 정보를 얻는다. 극우의 간교한 선동가들은 단 한 번도 역사적 진실을 전하는 일이 없다. 극우는 좌파를 위험하다고 가르치고 혐오하기를 요구하며, 마치 극우의 길이 참 하나님 신앙의 길이라고 오도한다.
독재는 사상의 자유를 혐오한다.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극우의 논리는 한국 기독교 안에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이를 일시에 친북, 좌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고, 종교적으로는 사탄의 세력이라는 기괴한 편견을 진리처럼 여기는 집단으로 키워냈다. 참된 보수도 아니면서 보수를 자처하는 목사들, 대부분의 대형 교회 목사들, 그리고 그들에게 배운 장로, 권사, 집사는 그들이 하나님 신앙을 가진 긴 시간만큼 좌파 혐오와 증오의 논리에 세뇌되어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전광훈이와 대부분의 보수를 자처하는 목사들이 한 배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집단을 교활하게 이용해 먹은 집단이 바로 이름을 수없이 바꿔온 지금의 야당이다. 한국 기독교 연합회(KNCC)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1989년 한기총이라는 별도의 신종 교회 연합회를 만들어 한국 기독교를 분열시킨 장본인은 바로 지금의 야당과 손을 잡고 그동안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아온 한기총 초기 멤버들이다. 한기총의 뿌리는 박정희의 3선 개헌을 반대했던 KNCC와 달리 박정희 독재를 당연시했던 우파 목사들이 그 중심축이 되었다.
1979년 문익환 목사가 북한을 다녀오자 이 문제에 대하여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여라고 입장을 밝힌 KNCC에서 이탈한 무리들이 한경직 목사를 창립준비위원장으로 내세우고, 김준곤, 김장환 등이 앞장서서 미국식 우파 노선을 성서적 원리보다 앞세우기 시작한 무리가 바로 한기총이다. 한기총은 그 태생부터 정치적으로 우경화된 무리가 되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남북관계, 사회 변화를 모색하려 할 때마다 앞장서서 반대해 왔다. 그 반대는 자연스럽게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통당의 은근하고 노골적인 지지와 비호를 받는 가운데 더욱 강고해 졌고, 선거 때마다 그들 편을 들었으며, 검찰과 법원조차도 이들 세력이 가진 다양한 권력과 인맥 구조를 통하여 지배를 받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예컨대 강남의 한 대형 교회 법조인 선교회에는 내놓으라 하는 판사, 검사들이 수십 명 내지 백여 명이나 모여 그들끼리의 우애와 인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 집단은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종교 관련 재판을 좌지우지할만한 힘있는 세력으로 존재한다. 전광훈 집단은 암암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형교회 목사들과, 극우 정치 세력의 협력, 그리고 법조계 극우 기독교 인사들의 비호 등, 직간접적 영향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위 “전광훈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3.
결과적으로 전광훈이는 한기총을 등에 없고, 미통당의 기호에 맞는 언설을 쏟아내며 등단하는 데 성공했지만, 몇 가지 점에서 너무나 시대착오적이었기 때문에 미통당에서도 버림을 받게 되었다. 우선 지난 총선에서 황교안 전 미통당 대표는 전광훈이의 세력을 미통당과 함께 엮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광훈이의 시대착오적 행태와 몰상식하고 막무가내 식의 언변과 주장에 식상한 광화문 밖의 민주시민들로부터 구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광훈이 곁에 섰던 정치인들은 정치 일선에서 살아 남은 자가 거의 없다. 미통당 총선 참패의 원인은 나경원의 반의회적인 투쟁과 황교안의 조야한 기독교 정치화에 크게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에게 정권을 맡기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대부분의 민주 시민들에게서 내려졌던 것이다.
이런 시제에 코비드-19 펜데믹 사태가 번졌으나 정부와 방역 당국이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대처하였고,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방역국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호사다마라 할까, 이 기회를 이용하여 대대적인 집회를 준비한 세력은 당연히 전광훈을 지지, 후원하는 세력이었다. 서울시 당국은 펜데믹 상황의 위중함을 감지하고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려 했으나 멍청한 판사는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전광훈 집단의 의도를 예측하지 못한 어리석음인지, 아니면 전광훈이에게 기회를 주려 그런 결정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코비드-19가 대대적으로 우리 사회를 습격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식들이 교육을 받을 기회, 상인들이 생존을 위해 영업하고 일 할 수 있는 기회, 체육인들이 역량을 다해 경기를 벌일 기회, 영화, 연극인들이 공연을 할 기회, 그리고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모두 박탈당하게 된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기묘하게 조직된 지난 광복절 난동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앞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전광훈이 같은 몰상식한 인사를 내세워 이런 사태를 불러온 세력은 과연 누구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세계 제 1의 방역 강국의 이름을 하루아침에 몰수당하게 된 이 수치는 누가 안겨준 것인가?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떠들던 전광훈이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원에 갇혔고, 전광훈이를 교주 모시듯 하던 어리석은 그의 신도 수백 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수백 수천 명의 의료진들이 또다시 방역 일선에서 생명을 걸고 구슬땀을 흘리며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며칠 사이에 벌어진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비상사태를 알리는 메시지를 계속 이어받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하여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 할 것인가? 나는 1차적으로는 전광훈이를 키워온 세력, 한기총 세력과 미통당, 그리고 그들의 교회에 속해 있는 검사, 판사들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세력을 제지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지내온 한국 개신교 목사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통당 전 현직 국회의원들이 전광훈이를 감싸고 있었건만, 미통당은 약삭빠르게 발을 빼고 ”우린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미통당과 극우 세력이 비호하자 무엇이나 된 듯이 국민이 선택하여 세운 대통령을 향하여 공개적으로 하대하며 모욕하는 몰상식한 일이 벌어진 광화문, 그 자리에서 뭐나 된 듯이 나대던 전광훈이는 이제 미통당에게서도, 법원에서도 더 이상 비호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라성 같은 대학을 나와 이 나라 정치인으로, 성직자로, 판·검사 법관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어쩌다 신학교도 제대로 다닌 흔적도 없는, 듣보잡 목사를 그렇게 믿고 광화문에 내세웠을까? 그것은 전광훈이의 품성이 너무나 어리석어서 저 죽는 줄도 모르고 박수 쳐준다고 제 푼수도 모르고 기고만장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큰 책임은 뒤에 숨어서 전광훈이를 물심양면으로, 법적으로 후원하던 대형 교회 목사들이 제일 큰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다. 종교가 위기에서 우리사회를 건져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사회를 위기로 내모는 일에 숨어서 가담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교활함에 대해서는 더 논구하고 싶지 않다. 정치를 하면서 평범한 시민은 온 가족이 달려들어 평생 수고해도 모을 수 없는 23억, 73억을 부동산 투기 부업으로 움켜쥔 자들에게 무슨 도덕성과 사회통합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광훈이는 이제 자기가 저지른 어리석은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전광훈이를 앞세워 섣부르게 정치판에서 나대며 덧 씌어 놓은 “몰상식하고 백해무익한, 위험한 기독교”라는 비난에서 벗어나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설령 누군가가 “난 아니야!” 라고 소리를 지른다 하여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이 불행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기도 하고, 특히 한국 교회의 불행이다. 우리 모두 맑고 깨끗한 영성의 길, 예수의 길에서 너무나 멀리 이탈한 결과다. 돌아갈 길이 정말 멀고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