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상황을 보며 쓴 글입니다.

하성웅
  • 1796
  • 2020-08-25 05:33:10
작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계속 확산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고, 전국적으로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실시하고 있고, 서울지역은 실질적으로 3단계에 준하는 조치를 내렸다. 교회는 비대면 예배만 허용되는 상황이 이르렀다.

타 종교와 비교했을 때, 차별적이고 과한조치라고 볼 수 있고, 일부교회의 일탈로 인해 전체 교회가 피해를 보는 것이 억울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신교 예배의 특성상(통성기도, 성가대, 예배 후 교재 등) 타 종교와 다른 조치가 내려지는 것을 크게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일부교회의 일탈이라고 하여도, 정부입장에서는 그 일부를 걸러내기에 소모되는 인력과 행정과업이 크기에, 부담스럽더라도 전면적인 비대면 예배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변명을 떠나서 실제로 교회 감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번 사태를 보며, 한국교회는 철저하고,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교회는 다르다. 거기는 일부교회다.”라는 식의 선긋기는 더 이상 설득력도 없고, 교회가 무책임한 집단으로 매도되는 도움이 될 뿐이다. 전광훈 목사와 극우개신교를 키워낸 것은 한국교회가 맞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해야 한다. 개신교 내부에서야,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전광훈과의 선긋기가 가능하겠지만, 대중들에게 비춰지는 것은 그냥 다 똑같은 집단이다. 선긋기는 불가능하다. 전광훈과 극우개신교회를 방치함으로써 괴물로 키워낸, 한국교회의 원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그 원죄로 인한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감내해야할 시간이다.

지난 몇 년간, 개신교 내부 안에서, 전광훈 목사와 극우개신교에 관해에서, 얼마나 많이 문제를 제기했는가? 그러나 한국교회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별다른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을 교회를 해치는 세력으로, 반기독교 좌파세력으로 매도했다. 그 사이 전광훈과 극우개신교는 극우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개신교 내부에서 더는 통제하기 힘든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는 거짓으로 성도들을 선동하고,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으로 성도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 신앙인으로서 도저히 납득 불가한 언사가 그의 입에서 나와도, 그를 추종하는 교회성도들과 극우개신교인들은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신앙의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시만의 안정을 해치는 일까지 벌이며, 한국교회 전체가 반사회적이고, 비이성적 집단으로 매도당하도록 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신앙인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체 그를 이 시대의 선지자로, 엘리야로, 고난 받는 종으로 찬양하고 있으니, 정말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핵심적인 이유가 개교회 중심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한국교회 안에 개교회 중심주의가 얼마나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가? 내 교회만 성장하면 되고, 내 교회만 신앙을 잘 지키면 된다는 개교회 중심주의만 가득했다. 대사회적으로 개신교 전체가 어떤 공적인 책임을 가져야하는지 그리고 정의롭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지에 무관심했다. 그러한 자신들을 향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도,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시대의 고난이니, 시험이니 치부하면서, 오히려 비난을 즐기는 마조히즘 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사이에 전광훈과 극우개신교가 스멀스멀 자라나게 되었고, 이제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이 해를 끼치는 데까지 이르렀다. 뒤늦게 전광훈 소속 교단에서 면직 처분을 내렸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실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늦은 만큼, 변명으로 일관하지 말고, 수치와 비난을 달게 받아드리며,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전광훈과 극우개신교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복기해보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히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왜 잘못되었는지, 그들의 메시지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철저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더불어 교회 안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와 교단의 의사결정 구조 안에, 다양한 세대, 성별의 성도들이 들어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수의 목소리 큰 사람들, 소위 신앙의 지분이 있다는 사람들이 의사결정 구조를 독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솔직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절망스럽고, 고통스럽다. 일단은 이 절망과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부터 해보려고 한다. 하...

* 페북에 게시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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