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단순함이란 무엇인가

백승학
  • 1182
  • 2020-08-25 01:03:12
진정한 단순함이란 무엇인가

백승학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너무나 각박하게만 흘러들던 9세기 초에 유럽에서는 사막의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은둔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곳에서 그들은 혹은 느리거나, 혹은 외롭거나, 나아가 지극히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일상의 조급함과 긴박함이 주는 모순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수도원 기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국내의 어느 여류작가는 그녀가 베네딕토 여자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아직도 창살을 설치하여 여지없는 감옥의 모양을 한 방안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기도문과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묘한 전율을 느꼈다고 하였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진지해서 혹 그들의 수도원행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매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선택한 면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어떤 여지는 없어보였다고 말한다.
오래 전의 어느 날이었다. 교인들을 승합차에 태운 채 나는 아름다운 어느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교인 가족의 장례 조문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때는 5월이었고 햇살 가득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목사님 바깥 풍경이 너무 아름답네요. 내려서 구경하고 가면 어떨까요?”
나는 그때 거룩한 태도와 표정을 잔뜩 유지한 채로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세상 경치가 아름답다고 해서 다 구경하고 다닐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세상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운들 우리가 앞으로 들어갈 하나님 나라에 감히 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가 보기에도 영화 속 한 장면 같던 그 장소가 어디쯤이었는지 지금에 와서 다시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은 결코 아쉽지 않은데 그날 그들과 함께 그곳에 내려서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 가에 발을 담그고 몇 시간이고 심지어 해가 저물 때 까지 함께 보내다가 돌아오는 밤길에는 완행열차 간이역 같은 어느 허름한 시골 휴게소에 들러 함께 유부우동을 먹으며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적잖이 남아있다.
어쩌면 나는 세상 경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생각하는 거룩하기 그지없는 목사로 그들에게 보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산상 수훈 중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란 마음의 의도가 순수한 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의도의 순수함은 언제든지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도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자구나!”하는 소리를 들으려는 의도로 나온다면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나는 ‘의도의 순수함’을 ‘의도의 단순함’으로 바꾸어 표현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적이지만 훌륭하다’는 표현을 사용할 때 우선은 ‘적은 적이고 아군은 아군이다’가 그럴듯하고 단순한 논리로 보여 지겠지만 오히려 적은 적이고 훌륭한 것은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이 적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고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단순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는 길에서 우연히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나의 악수를 받는 둥 마는 둥 얼버무리며 지나치는 지인에게 언짢은 마음이 가셔지지 않아서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나왔을 수도 있고 뭔가 골몰해야할 고민거리가 있었을 수도 있죠. 우리도 그럴 때가 종종 있잖아요.”하며 아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내는 내가 친구와 나의 입장을 분리시켜서 나에게만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듯 하였다. “우리도 그럴 때가 종종 있었잖아요.”하는 말이 그렇게 한 구체적인 기억의 여부에 관계없이 강한 설득력으로 내 가슴에 박혀왔다. 17세기에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영성운동가 잔느 귀용은 진정한 단순함의 비밀이란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이 보여 질수록 더욱 침묵한 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보다 더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하고 토로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의 단순함의 비밀 역시 타자와 자신을 맘껏 분리시킨 채 자신에게만 유리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기를 살리려고 한 여인이 바로 그 아기의 진짜 엄마였듯이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일에 하나님의 의도를 깊이 헤아리며 단지 그분의 의도하심을 향하여 단순하면서도 의연하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출처)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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