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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용 바꿈]감리교회 목회자의 사회생활에 대해
민관기
- 1614
- 2020-08-29 07:27:13
목사들은 대개가 교회를 중심으로 목회를 한다.
120년 전으로 돌아갈 볼까?
교회안에 머물며 교회 목회에만 집중하던 목사는 1명도 없다.
목회잔 누굴 막론하고 사회생활과 활동을 해야만 한다.
공식적 목사 안수는 감리교회가 1901년이지만 1893년경부터 전도사란 직책으로 대한인들이 교회의 업무를 맡아 목회를 하여왔다.
당시는 신학문을 한 개화인사는 이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안 되고 감리교인이라해야 한다.
장로교인은 기독교인이나 신학문은 없던 자들이다.
하여, +외교문제를 비롯한 국가의 중대사는 당연히 +개화인이며 +신학문을 하였고 +외국어가 되는데다가 +충군애국이 확인된 감리교인에게만 주어졌던 국가의제였던 것이다. +가 하나라도 없으면 자격을 전혀 줄수가 없다.
이 직을 수행할 수있는 이들은 감리교회 목회자와 평신도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황제의 여특사도 감리교인만 하는 것이다.
*. 정리하면
+. 개회인
+. 신학문
+. 충군애국
+. 외국어 구사는 감리교인만이 할 수 있었고 다른 대한인은 아무도 이 자격이 없었으니
국가의 최고 중대사인 외교는 필연적으로 감리교인에게만 주어졌던 임무로 [감리교회는 황제와 국사를 논하고 책임진 국가 종교]였었다.
하여, 지금도 감리교회는 역할이 달라야는데 뭔가 한 몇 십년전부터 꼬인게 있어서 지금 실타래를 풀고 있는중.
그런데 당시는 왜 감리교회 목사들을 외국으로 사회로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했는가?
누굴 좀 보내고 싶어도 뭘 알아야 보내지?
-. 위정척사 유림 : 반개화 위정척사
-. 동학 : 반개화 반정부
-. 불교 : 산중종교라 세상물정을 아예 몰라 - 그냥 무장투쟁은 서산이나 사명당처럼 한다. 근데 외교는 안 되거든
-. 천주교 : 비충군애국, 비외국어
-. 장로교 : 개화이며 충군애국이나 외국어 구사 전무
다른 이들이 이러하니.. 이젠 종친도.. 외척도 명성황후 살해로 없어졌고..
아무도 못 믿어... 이건 정말야. 오죽하면 황제가 남의 나라 공관에 가서 쪽방에 3년을 머물럿겟어요.
감리교회 선교사들과 평신도들이 애걸복걸 나라살리자고 해서 겨우 궁으로와서 대한제국 선포한 제국의 주인이 바로 우리 감리교회인것이요.. 하니 그 책임을 다하려 목숨을 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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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애초에 남는게 감리교회밖에 없는것.
하여, 감리교회의 목사나 평신도들이 무엇이든지를 가리지 않고 출사하여 활동을 한것.
1. 하와이 : 1903년 현순과 홍승하 목사 파견, 그리고 어떤 여전도사 파견. 총 7000여 명의 하와이 노동이민자들 신앙지도위해 존스 선교사가 파송
2. 만주 연해주 : 손정도, 김영학, 이화춘 목사와 최나오미 선교사 등 파견
3. 상해 임정 : 손정도, 현순, 이상만(임정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동행한유일한 목사)과 정세화 전도사
4. 파리강화회의 : 하란사는 이화와 감신의 교수로 황제가 자신의 아들 이강과 파리강화회의 파견
5. 미주 : 현순(구미특파원) 윤병구, 민찬호, 박동완, 양주삼, 김창준 등의 목사와 윤치호, 안창호, 이승만, 김활란, 서재필, 조병옥, 황애덕, 하란사, 박에스더, 안익태, 유일한 등 평신도 파견 및 유학
6. 황제의 망명정부 구성에 해외 신민회 영수 이회영과 국내 신민회 영수 손정도와 기획
7. 헤이그 특사 지금도 가려면 죽는데 아이고~
게다가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동포들이 애니갱 농장에서 혹사 당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기에도 조사원 박희병 파견하는 전덕기 목사. 이게 사람인가할 정도로?
도대체 멕시코 유카탄이 어디요?
8. 신흥무관학교 - 육사전신, 한미항공학교 - 공사전신, 보창학교 - 해사전신 등 3개 사관학교 감리교인 설립
9. 황제는 홍콩 덕국은행에 내탕금 5만원을 숨겨놓고 독립자금으로 활용하려했다.
이 돈의 출금은 오로지 헐버트에게만 맡겨졌었다.
왜 이 수 백억원의 돈을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 감리교회 목사에게 맡겻을까?
여기에 답을 해보시오.
9. 동경 YMCA 설립, 아오야마학원, 관서학원 등 유학
이 외에도 수도 없다. 무척 많다.
이런 교단이나 종교 있으면 어디 나와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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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장로교회는 1923년에서야 한 신학생을 유학보낸다. 박형룡인가?한다.
[이전에 장신 학생들이 교수님 "우리도 감신처럼 영어가르쳐 주세요"하면 눈을 부릅뜨며 "학생 마귀가 들었나~"하며 불호령을 내렸다.] 반우민화 정책에 장로교인들은 그냥 그랬다.
1920년대 어떤 잡지에 감신과 장신의 모집 요강이 실렸다.
1) 서울 감신 : 남여학교 다. 고등보통학교 및 전문학교 이상 졸업자 지원 됨.
고등학교 졸업자가 몇 안 되는데 누가 신학교를 올 이들이 몇이나 될까? 10~50명?
2) 평양 장신 : 무학됨.
수 백명 몰려듬, 계절학기로 단기 1년 수료면 목사 안수.
사실 이때 부터 장로교회의 이단 사이비화는 진행되었다.
하고, 고등보통학교를 하는 것이 나이가 너무차 불가능했던 김약연같은 분은 어쩔 수 없이 장로교 목사가 된것이다.
-. 하니, 1907년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로 파송하곤 최초 선교사 파송이라고? 참 특별하다. 아니 제주도가 무슨 외국이라도 되냐고요?
-. 숭실 100년사보면 더 가관 : 손정도 목사 사진을 떡허니 실어놓고 숭실이 만주 선교사로 파견? 아~ 진짜 참 뭐가 풍년이다. 니네 졸업자이고 선배이지 무슨 니네가 만주 선교사로 파송을 하냐고요. 역사 도둑입니다. 사과하십시오.
1. 교회의 목사가 해외나 국내의 어디라도 파송을 할 수있는건 실력이 되기 때문이고
2. 사실 평신도들 내보내려 해도 적임자가 없어서이고, 사실 상해 임정도 더 톡 까놓고 말하면 평신도에게만 맡기는 것이 못미더워서
[대한민국 민족운동의 총괄 지휘자인 노블 감리사가 현순, 손정도, 이상만 트로이카에 10000불 - 100억원]을 쥐서 같이 보낸 것.
목사는 세상과 함께 세상을 지도하며 활동해야 한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니 해야하는데 어떤 사정으로 못하고 있을 뿐.
이런 교단에서 신앙생활하는 감리회 평신도들은 항상 감사를 해야 한다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