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가네(II)

백승학
  • 1315
  • 2020-09-03 03:10:31
여름이 지나가네(II)
백승학
맨드라미 피어나야할 붉은 마당 가에
죽음보다 깊은 울음을 묻어두고
세월아, 무정한 세월아
세월아, 눈 멀고 귀 먼 세월아 어서 지나라
숨죽이던 시절의 여름에는
강물도 맨드라미 꽃잎 빛깔로 흘렀으리
지나간 여름이 왜 그리 아팠는지 묻는 그대여
푸르지 않을 강물마다 가슴에 끌어담아
대지의 강물은 여전히 푸르기를
가슴 속 강물은 터지고 갈라져도
시대의 강물은 하나로 흐르기를 바라고 바라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기억하라.
눈물겹던 시절 만큼이나
멀고 먼 여름이
강물보다 푸르고 꽃잎보다 서러울 여름이
지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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