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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칼럼)
백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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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31 23:51:06
백승학
미국에서 출간 당시 10만 부가 팔린 마이클 샐든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을 때 그 열배인 1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반증이라며 10만과 100만이라는 두 숫자가 자주 비교되거나 인용되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그 당시에 나는 세계에서 많이 팔리는 출판물의 부류 중에서 요리에 관한 책과 행복에 관한 책이 빠지지 않고 상위에 랭크된다는 기사를 보면서 인간이란 늘 배가 고프거나 행복을 갈망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여겨졌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팀이 세계의 강호들을 꺾고 승승장구할 무렵에 히딩크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이 잘 맞지 않았는지 직접 물어볼 기회가 내게는 물론 없었다.
한편 행복을 주제로 열린 어느 강연장에서 강사가 청중을 향하여 가장 구하고 싶은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 “아! 저는 그저, 무엇보다도 감동을 느끼고 싶습니다!”하고 대답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감동이란 마치 대지를 적시는 빗물 같아서 메마른 가슴에 삶의 윤기와 활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동이 있으면 그저, 무엇보다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예를들어 예전에 홍수환 선수가 WBA 세계 타이틀매치에서 11전 11승 11 KO를 자랑하던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네 번 다운 당한 후에도 다시 일어나서 역전 KO승을 거둔 적이 있다. 그때 텔레비젼 앞에서 여느 사람들 못지않게 감동의 환호성을 질러대던 누군가가 끝모를 듯 밀려들던 그 감동의 자리 어느 어귀에서 정작 자신은 인생, 혹은 무엇인가에 KO패를 당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감동하였기에 행복한 것은 아니라 해도 행복하다면 그는 이미 감동하는 자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행복에 있어서 충분하고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의미라 할 것이다. 질 들뢰즈는 모든 가치는 사건이 가지는 짧거나, 혹은 보이지도 않을 순간의 효과가 만들어 내는 의미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든 아름다움이나 행복은 이러한 것의 과정이나 부산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스 켈젠이 ‘모든 정의는 의미의 정당함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서만 정당화된다’고 말한 것과 논조 상으로 닮아 보인다. 그는 세계 제 1, 2차 대전 당시에 나치에 대항하여 활약했고 마이클 샐든이 근간에 쓴 ‘정의란 무엇인가’와 동일한같 제목의 논설집을 일찌기 낸 바 있었다. 예수께서 애통하는 자와 온유한 자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긍휼히 여기는 자가 행복할 것이라고 한 것 역시 삶의 의미에 먼저 관심을 두라는 말씀으로 보여 진다.
행복이란 그것이 비록 소중하다해도 결코 행복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서 행복해지려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선 것은 아닐지라도 행복한 자라면 그는 이미 삶의 의미를 가진 자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표현처럼 남아있던 나날, 혹은 남아있는 나날이 엮어내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당시 겪었던 유월절 이야기와 마카비 시대의 독립과 해방을 기념하는 수전절의 이야기를 마치 그 이야기 밖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처럼 반복하여 들으며 울고 웃었다. 촛불이 타들어 가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도 집집마다 깊어져만 갔고 끝이 없었다.
근래에 나는 딸과 집 근처의 커피점에 마주 앉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딸은 영문도 모르고 금새 따라 울기시작했다. 오래전 어느 단체에서 1박 2일 세미나가 있었던 날 나는 가족과 함께 강원도의 어느 펜션에 머물렀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마치 새끼 캥거루처럼 뛰어다녔다. 세 살 어린 동생도 누나 뒤를 덩달아 쫓아다녔다. 돌아오는 날 딸이 말했다. “아빠! 여기서 우리가족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돼?” 나는 곧바로 아내와 의논을 했으나 더 이상의 지출은 곤란하다기에 어렵사리 딸을 설득하였다. 펜션 마당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딸의 모습과, 그곳에서 하루만 더 머물자고 호소하던 간절한 눈빛과, 안된다는 나의 말에 축 처져 내리던 여린 어깨가 불현듯 떠올라서 그날 나는 눈물이 났던 것이다.
올리비아 가잘레가 ‘위기가 없는 사랑은 이야깃거리도 없다’고 하였던가. 우리의 유월절과 수전절 역시 위기를 견뎌내면서 펼쳐지던, 혹은 선물처럼 다가오던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출처)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