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6회: 2. 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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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4 20:01:57
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2:1-7>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회에 보내시는 편지는, 【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로 시작된다.
[에베소](Ἐφέσῳ)는 주전 11세기에 건설되어 이오니아의 식민지, 파사의 영토, 알렉산더의 자유시, 로마 제국의 한 주 등의 역사를 겪으면서 점차 발달되어 신약 시대에 이르렀다.① {에베소는 소아시아 반도의 서해안 중심지에 인접해 있는 카이스터(Cayster) 강어귀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로서, 신약 시대에는 교통과 무역(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우상 숭배로서 그 의식은 동방의 밀교 의식과 비슷하였다. 특히, 그들의 주요 예배 대상은 음란의 여신 아데미(Artemis)이었으며, 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명하다. 특히, 에베소 사람들은 사치와 방탕으로 악명을 떨쳤으며, 또한 그 지역에는 마법과 마술이 성행하였다.②}(에베소서, II. 대상).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처음으로 에베소를 방문하였으나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행 18:19-21). 그는 제3차 선교 여행을 하는 도중에 다시 방문하여 3개월 동안은 회당에서, 그 다음 2년 동안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였다. 또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나기도 하였다(행 19:8-20). 그 결과 에베소는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세 번째의 기독교 중심지가 되었다.
[교회](에클레시아스, ἐκκλησίας)와 [사자](앙겔로, ἀγγέλῳ)는 1:20의 주석을 보라.
편지하시는 이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시다.
[붙잡고]는 크라톤(κρατών: ‘움켜쥐다’)이며 1:16의 “있고”(에콘, ἔχων)보다 더 강한 의미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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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Finegan, “Ephesus” in IDB, Vol. 2, pp. 114-118.
2) F. W. G. Blaikie, p. v. H. C. G. Moule, 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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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 일곱 별(1:16의 주석을 보라.)을 붙잡고]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일곱 교회의 각 지도자들을 흔들리지 않도록 확고하게 붙잡아 주신다는 뜻이다.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는 1:12-13의 주석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칭찬하셨다.
[행위]는 에르가(ἔργα: 복수)이며 ‘행위’, ‘일’, ‘수고’, ‘노동’ 등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단순한 외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동기와 원리의 행위를 포함하는 행동과 관계된 모든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A. Barnes)}(롬 2:6의 주석).
[수고]는 코폰(κόπον)이며, {문자적으로는 기진맥진할 때까지 노동한다는 뜻이다(M. R. Vincent). 즉,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힘과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용할 만큼 노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W. Barclay). 또한, “이 낱말은 운동선수들이 힘들여 훈련한다는 뜻도 있다.}(빌 2:16의 주석).
[인내](휘포모넨, ὑπομονήν)는 1:9의 주석을 보라.
[수고]와 [인내]를 행위의 내용이라고 하는 설이 있으나,③ 원문에 카이(, καὶ: ‘그리고’, ‘~과’, ‘또’)로 구분된 것을 보아 세 가지 덕목으로 보는 설④이 더 그럴 듯하다.
가장 바람직한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데살로니가전서 1:3의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고]는 오이다(οἶδα)이며 ‘체험적으로 알다’, ‘체득하다’, ‘깊이 알다’ 등을 의미하는 기노스코(γίνωσκω)와 달리, ‘직관으로 알다’, ‘관념적으로 알다’, ‘초경험적으로 알다’, ‘영감으로 알다’ 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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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 C. H. Lenski, H. Alford, R. H. Mounce, “Moffatt”(in 이상근), R. H. Charles, A. Plummer, G. E. Ladd, 박윤선.
4) A. Barnes, M. Rist, W. Hendriksen, J. F. Walvoord, R. H. Mounce, A. Johnson, 黑崎幸吉,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5) 필자의 데살로니가전서 1:3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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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의 [악한 자들]은 관사가 없는 복수 명사인 카쿠스(κακούς)이므로 ‘악한 것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말은 윤리‧도덕상 악한 것들이나 악한 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이나 이단들도 의미한다. 여기서는 교회가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며, 또 죄악의 인생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받아들이는 공동체라는 점을 미루어 악한 것들로 보아야 한다.
[악한 자들]을 [자칭 사도]라 하는 가짜 사도들과 동일시하는 설이 있으나,⑥ 원문에 카이(, καὶ: ‘그리고’, ‘~과’, ‘또’)로 구분된 것을 보아 동일시하지 않는 설⑦이 더 그럴 듯하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의 [자칭 사도]에 대해 (1) 바울 이전에 에베소에 와서 ‘세례 요한의 교리’를 가르친 어떤 제자들(행 19:1)이라는 설,⑧ (2) 바울의 제자들, 또는 바울 자신이라는 설(Volkmar, Vlter, Holtzmann),⑨ (3) 에베소 교회에 이단들의 세력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설(김철손)⑩ (4)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바울 사도 이외의 어떤 순회 전도자들이라는 설(G. E. Ladd, 黑崎幸吉), (5) 예루살렘에서 파견한 유대주의자들(참조: 고후 11:13)이라는 설(“Spitta”,⑪ P. E. Hughes), (6) 1세기말에 만연했던 어떤 영지주의자들이라는 설, (7) 6절에 나오는 ‘니골라 당’이라는 설⑫ 등이 있다.
2:6을 보아 (7)설을 취하되 (3)설과 (4)설과 (5)설과 (6)설을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에베소에 이런 무리가 있었다는 것은 이그나티우스의 서한에서도 알 수 있다(Ignatius, Eph. 4:1).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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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A. Barnes, H. Alford, “Greijdanus”(in 강병도 편), W. Hendriksen, R. H. Mounce, A. Johnson, G. E. Ladd, 김철손, 요한계시록.
7) J. Wesley, C. R. Erdman, W. Barclay, C. L. Morris, R. C. H. Lenski, J. F. Walvoord, 黑崎幸吉, 박윤선.
8) in 김철손, 요한계시록.
9) in R. H. Charles.
10) 김철손, 요한계시록.
11) in R. H. Charles.
12) A. Barnes, “Bousset”(in R. H. Charles), H. Kraft, R. H. Charles, 이상근.
13) 참조: H. Kraft. A. Johnso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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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부른 후에,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29-30)라고 예언한 적이 있었다. 이 예언은 적중했고, 에베소 교회는 잘 대처하였다. 그러나 이 문제에 실패한 고린도 교회에 대해, 바울은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라고 하였다(참조: 요일 4:1-3).
[사도]는 아포스톨루스(ἀποστόλους)이며 일반적으로 ‘보냄받은 자’, ‘대리자’, ‘파송된 자’, ‘전권 대사’를 뜻하고, 또한 특수하게 예수님의 12제자 등을 가리킨다.
사도란 (1) 지상의 예수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마 10:5, 28:29. 비교: 갈 1:1), (2)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이 사실을 증거한 자(행 1:21, 22), (3)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은 자(요 14:26, 16:13, 고전 2:10), (4) 그러므로 그들의 권세는 지상에 있고(마 18:18, 20, 요 22:22-23), (5) 표적을 행하는 권능을 받았으며(행 2:43, 5:15), (6) 그들의 복음 전파의 범위는 우주적이었고 무제한이었다(고후 11:28).
[사도]라는 칭호를 들은 이들은 12제자 외에도 바울과 바나바(행 14:4, 14), 실루아노와 디모데(살전 2:6) 등이 있다. 또한, {70제자들(눅 10:1)도 사도로 일컬어졌다는 기록이 있다(Irenaeus, Tertullian). 사도직은 초대 교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이었다(엡 4:11, 고전 12:28). 본질적으로 사도의 직분은 그를 보내신 분의 위엄을 떠나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A. J. Mason).}(살전 2:6의 주석).
{킬케골은 천재와 사도를 잘 구별하였다. 천재가 되는 것은 그의 내재적 목적 때문인데, 그는 민중과 구별되며 천재임을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도는 전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초월적인 근거인 하나님의 권위를 입고 존재하며, 자기에게 배치되는 역리적 목적 때문에 사도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⑭}(롬 1:1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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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in 전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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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도의 교훈서」에는 이런 거짓 사도의 식별법까지 상세히 가르치고 있다(이상근). 새로 나타나는 순회 전도자의 생활 태도와 설교 내용을 듣고 진위를 가리는 기준을 삼았던 것 같다(김철손).⑮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는 【3】[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2절 초반의 내용을 반복 강조한 것이다.
[이름]은 오노마(ὄνομά)이며, 성경에서는 대개 본성과 인격과 성격과 재능과 능력 등을 포함한 그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요 2:23, 3:18, 요일 5:13). 따라서 [내 이름을 위하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뜻이다.
에베소 교회는 황제 숭배 강요에 따른 극심한 외적 박해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요이 7)과 기타 이방 종교들의 내적 도전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켰다.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여 책망하신다.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하였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의 [책망]은 혈기나 분노에서 비롯된 책망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된 책망이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에 대해 (1) 예언과 다른 은사의 활동을 버렸다는 설(H. Kraft), (2)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설,⑯ (3) 하나님(그리스도)과 믿음의 형제에 대한 사랑 두 가지를 다 버렸다는 설,⑰ (4) 하나님(그리스도)과 믿음의 형제와 인류에 대한 사랑 세 가지를 다 버렸다는 설(C. L. Morris), (5) 이웃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설(Arethas),⑱ (6) 믿음의 형제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설⑲ 등이 있다.
(1)설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2)설과 (3)설과 (4)설은 3절을 보아 받아들일 수 없다. 3절을 보면 (5)설이나 (6)설을 취해야 하는데, 2절을 보아 (5)설보다는 (6)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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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철손, 요한계시록.
16) A. Barnes, “Vincent”(in 이상근), A. Clarke, P. E. Hughes, M. Rist, A. Plummer, “John R. W. Stott”(in A. Johnson).
17) R. C. H. Lenski, A. Johnson, C. R. Erdman, G. R. Beasley-Murray, 박윤선.
18) in H. Alford.
19) “Moffatt, Kiddle”(in 이상근), G. E. Ladd, R. H. Charles, W. Barclay, J. F. Walvoord, R. H. Mounce,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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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형제들을 뜨겁게 사랑했던(엡 1:15-16, 행 20:37) 에베소 교인들은 교회 안의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일을 열심히 하느라 형제들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바람에 형제 사랑을 상실한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무튼, 에베소 교인들은 보다 덜 중요한 교리 때문에 보다 더 중요한, 교리의 본질인 형제애를 잃어버렸고, 따라서 하나님(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도 문제를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요일 4:20-21).⑳
책망에 이어서 그리스도께서는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하였다.
[어디서 떨어진 것(참조: 사 14:12, 갈 5:4, 히 2:1, 4:11)을 생각하고]는 믿음의 행위의 본질인, 열정적인 처음 사랑을 상실한 원인을 ‘계속 생각하라’(므네모뉴에, μνημόνευε)는 것이다.
[회개하여]는 메타노에세스(μετανοήσῃς)이며 ‘정서뿐만 아니라 마음과 의지를 전환하다’를 의미한다. 실상 그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적‧지적‧도덕적 면에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생의 변화를 초래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이다(고후 7:9, 딤후 2:25).
특히, 여기서는 “신앙의 완전 타락”(김철손)㉠이라기보다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를 보아 상실한 첫 형제애와 그로 인해 상실하게 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길로 돌아서라는 것이다.
타락한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행위를 갖는 것은 처음 사랑을 복귀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과정이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자로 임하셔서 에베소 교회를 옮기시는 것(A. Johnson, “Ramsay”㉡)이 아니라, 제거하신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 경고는 재림 때의 심판(A. Clarke)을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역사상의 영적 임재의 심판㉣을 선언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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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필자의 요한일서 4:20-21의 주석을 보라.
㉠ 김철손, 요한계시록.
㉡ in 박윤선.
㉢ A. Barnes, R. H. Mounce, “Greijdanus”(in 박윤선), W. Hendriksen, J. F. Walvoord, G. E. Ladd, R. H. Charles,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 H. Alford, A. Barnes, W. Hendriksen, J. F. Walvoord, R. H. Charles, A. Plummer, C. L. Morris, 黑崎幸吉,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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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J. Wesley)는 “이 일 후에 에베소 교회가 번영한 모습으로 보아 그 교회가 회개한 것으로 믿을 만하다.”라고 하는데, 왈부드(J. F. Walvoord)는 “그 교회는 계속 유지되어 후에 교회 회의의 주요 무대가 된다. 그러다가 5세기 후에는 교회도 도시도 모두 쇠퇴했다. 그리고 14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인근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현재 에베소는 폐허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끝내기 전에 한 가지 칭찬을 추가하셨다. 【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니골라 당](Νικολαϊτών)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대체로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 역사적 기원설로 초대 교회에서 처음 선택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니골라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니골라는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행 6:5), 후에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단 사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 상징적 기원설로 니골라(Νικολαϊτών)가 ‘백성’을 의미하는 라오스(λαός)와 ‘삼키다’ 혹은 ‘없애다’ 혹은 ‘이기다’를 의미하는 니카오(νικάω)의 합성어이고, 2:14의 발람(■■ ■■■: ‘백성을 삼키다’) 역시 동의어이므로 이 당의 성격에서 이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즉, 니골라 당은 그 퇴폐적인 사설(邪說)로 백성들을 정복하고 삼켰다는 것이다.㉧
(1)설은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고, (2)설은 2:14-15로 뒷받침된다.
니골라 당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다(2:14-15). 그들은 율법의 때는 지났기 때문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고,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육신은 악하고 영만이 선하므로 육신으로는 음란한 행위를 비롯해서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고 가르쳤고,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이단들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범죄자들이다.
에베소 교인들은 니골라 당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고 있었는데, 그리스도 역시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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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H. Charles, “Greijdanus”(in 박윤선),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 지지자들: Irenaeus, Her. I, 26:3, iii. 11:1. “Hipplytus, Tertullian”(in 이상근), H. Alford.
㉦ 참조: G. E. Ladd,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 R. H. Charles, A. Johnson, “Ewald, Bousset, Trench”(in 이상근), 박윤선, 이상근.
㉨ 참조: J. Wesley, A. Johnson, W. Barclay, W. Hendriksen,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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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귀 있는 자는······들을지어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선교하시던 중에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에 사용하신 표현이며(마 11:15, 13:9, 43, 막 4:9 , 23, 7:16, 눅 8:8, 14:35), 본서에서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론적 어구로 반복해서 사용되었다(2:11, 17, 29, 3:6, 13, 22, 13:9).
진리에 대한 인간의 경시 또는 무지를 아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자(고전 2:12-13, 12:3) 자신의 영인(행 16:6-7) [성령(롬 8:9)이 교회들] 곧 지상의 모든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주목하여 듣고 깨닫도록 자극하시는 것이다. 교인들은 다 귀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진리를 들을 영의 귀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소리이므로 마음과 정신뿐만 아니라 영을 기울여야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기는 그(τῷ νικώντι: 현재 능동태 분사)]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반복되는 형식인데, ‘계속해서 이기는 자’라는 뜻이다(2:17, 26, 3:5, 12, 5:5, 12:11, 15:2, 17:14, 요 16:33, 요일 2:13, 5:4, 5). 이 말은 군사 용어로 그리스도와 사단의 싸움을 보여 주는 본서에 적합하다. 사단의 하수인들인 반 그리스도들 내지는 적그리스도들의 박해를 이기는 자란 견뎌 내며 믿음을 지킨 자나 순교하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기는 자의 보상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낙원(τῷ παραδείσῳ τού θεού)의 낙원]은 파라데이소(παραδείσῳ)이며, {“원래 바사어로서 ‘둘러쌈’, ‘울’, ‘담’을 뜻하였고, 여기서 ‘즐거운 동산’이나 ‘즐거운 공원’을 뜻하게 되었다”(P. E. Hughes). 특히, 바클레이(W. Barclay)는 그 말과 관련된 바사의 관습에 대해, “바사어에서 온 말이며, 담으로 둘러싸인 동산이라는 뜻이다. 바사 왕이 특별히 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특별한 명예를 부여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사람을 동산의 벗으로 삼아 왕과 함께 가깝고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 경험에서 바울은 전무후무하게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벗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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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칠십인역에는 에덴 동산이라고 번역되었고(창 2:9, 10, 15 등), 신약성경에는 세 번(고후 12:4, 눅 23:43, 계 2:7) 나오는데, 특히 요한계시록 2:7에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낙원이란 하늘의 낙원(4 Ezr. 4:7-, 3 Bar. 4:8, TB Hăḡîgāh 16b, Rabba 65 on Gen. 27:72 등)㉩이고, 인간이 죄 때문에 잃어버린 낙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인류에게는 모든 복이 회복되는 그 이상인 것이다(참조: 계 22:1-).
휴스(P. E. Hughes)는 “초기의 교부들은 낙원을 사후(死後)에 모인 믿는 자들의 영혼들(souls)이 세상 끝 날에 발생할 몸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간주하였다. 오리겐(Origen)은 정말로 낙원이 지구 표면의 어떤 장소에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플럼트리(E. H. Plumptre)는 의인의 영들이 거하는 곳이라고 하였고, 웨슬리(J. Wesley)와 클라케(A. Clarke)는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분리되어 있는 영들의 행복한 자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신빙성 있는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4에서 세상의 어느 장소에 갔다고 하지 않고, 셋째 하늘 또는 낙원으로 이끌려 갔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면에서 어떤 형태의 몸이 없는 영만의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참조: 고후 5:1-의 주석).
아무튼, 휴스(P. E. Hughes)는 낙원과 셋째 하늘을 동의어로 보는 학자들로 데오도레트(Theodoret), 어거스틴(Augustine), 아퀴나스(Aquinas), 에스티우스(Estius), 핫지(C. Hodge), 바흐만(Bachmann), 빈디쉬, 타스커(R. V. G. Tasker)㉪ 등을 들고 있다. 또한, 그는 대다수의 현대 주석가들의 견해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낙원과 셋째 하늘을 동일시하는 기록은 외경과 랍비 문학에서도 볼 수 있다. 제2 에녹서 8장에서는 낙원이 셋째 하늘에 있는 것으로 말한다. 모세의 묵시록 37장 5절에서 하나님은 미카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죽은 아담)를 세 번째 하늘의 낙원으로 들어 올려라.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서 심판할 그 두려운 날까지 그를 거기에 내버려 두라”(C. K. Barett).}(고후 12:4의 주석).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는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고난이 없는(22:2) 영생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타락한 아담은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창 2:8-9)를 먹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성도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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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F. F. Bruce.
㉪ 셋째 하늘은 의인을 위한 장소와 마찬가지로 악인을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자가 거하는 장소를 낙원이라고 한다.
㉫ J. Wesley, M. Henry, M. Rist, C. L. Morris, A. Johnson, A. Barnes, W. Hendriksen, J. F. Walvoord, R. H. Mounce, “Robertson”(in 강병도 편), G. E. Ladd, 박윤선,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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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9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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