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에서의 예수의 가르침과 축귀: 참조 비대면 예배(?)

최세창
  • 1262
  • 2020-09-08 05:05:27
<누가복음 4:31-37>

31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1. 시작하는 말

극소수의 교역자들과 일부 교인들의 불미스러운 일을 핑계 삼아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헌금하는 게 아깝거나, 부담스러워서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떠난 후에, 자기 정당화 때문인지 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수는 믿는다고 하는 이들도 있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있고, 자기들끼리 따로 모여 예배하는 이들도 있고, 교회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종교계나 사회에서나 개혁의 주체인 양 설치던 사람들이 성공하면 같은 길을 가거나,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 개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의한 개혁인 복음적 개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회를 떠난 모든 사람은,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 예배에 참석하신 주 예수님의 가르침과 축귀에 온 영을 기울여야 합니다.

2. 유대교 회당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축귀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갈릴리 가버나움의 회당에 참석하여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시던 주 예수님은 칭송을 받기도 하시고, 배척을 당하기도 하시고, 살해 위협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주 예수님의 전파의 핵심은 마태복음 4:17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선언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진 유대교인들을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삶의 방향을 돌려 구원자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청천벽력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향한 회개와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실상, 종교 중 종교인 유일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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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도 종교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회개할 다양한 문제와 부정부패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숙정하시면서,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고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등지지도, 유대교인들의 예배 처소인 회당을 배척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에 참석하셨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예배하는 사람들이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또, 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등지거나 배척할 이유가 아니라, 바로잡아 주는 사랑을 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주 예수님의 공생애의 중심 부분이 갈릴리 선교이고, 갈릴리 선교의 중심지가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폐허로 남아 있으나, 그 당시에는 동서 교통의 요충지로 인구가 조밀하였고, 어업이 왕성하여 매우 번창한 도시이었습니다. 행정상으로는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 구역에 가까웠고, 관세나 통행세를 받는 세관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호수 서안의 디베리아스가 대표적인 로마 도시인 것처럼, 가버나움은 대표적인 유대 도시였습니다. 가버나움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갈릴리 선교의 중심지로서 그 의의가 있는 곳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참석한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습니다. 가르치심은 어떤 교리가 아니라, 교훈이나 설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교훈이 담긴 설교에 경탄하며 놀란 것은, 신적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자들은 복음의 교훈이 담긴 설교를 통해 인간적 권위가 아니라, 신적 권위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은 끊임없는 기도와 성경 연구, 그리고 성경 말씀 묵상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진다고 해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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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도의 복음이 위주요 본위인 성경이 저절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성경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기는 하나, 인간이 성령 충만으로 완전무결한 신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성령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해졌다고 해서 저절로 100% 순종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 6:1 이하를 보면, 성령 충만한 사도들이 과부 교인들을 구제하는 일에 실수한 내용이 있습니다. 또, 사도행전 15:35 이하를 보면, 선교 여행 중에 무단이탈했던 마가를 다시 선교 여행에 데려가는 일로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심히 다투고 갈라섰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를 타고 구브로로 향하고, 바울 사도는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면서 교회들을 굳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이나 충만함을 내세워 자기 성경 해석만 옳다고 하는 교만을 버리고, 같은 성령의 감동이나 충만을 체험한 신학자나 교역자들의 성경 주석 및 해석을 탐구하고, 성경 대백과사전과 기타 관련 자료들을 참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면, 자기 설교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뱃속서부터 율법을 배운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신적 권위가 드러나는 설교에 놀랄 만도 했습니다.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원문(ἄνθρωπος ἔχων πνεύμα δαιμονίου ἀκαθάρτου)을 직역하면 ‘더러운 귀신의 영을 가진 사람’입니다.
악하거나 더러운 귀신들을 부정하는 신학자들과 교역자들도 있지만,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님이 귀신들이 사로잡아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셨다는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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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또,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도, 그런 축귀의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 예수님이 귀신들의 존재를 인정하신 것이 됩니다. 주 예수님이 귀신들과 대화하신 것으로 보아, 귀신들이 영적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들의 왕초를 사단 또는 마귀라고 합니다.
어드만(C. R. Erdman)은 마가복음 1:23의 주석에서, “그는 완전히 그 귀신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지배받고 있었다. 그는 단지 육체적 혹은 정신적 병을 앓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악마에게 사로잡혔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께서 공연히 연극을 하여 사람을 속인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성경, 특히 복음서 곳곳에는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가 따로 기록되었고, 또한 주 예수님과 제자들은 귀신들린 자에게서는 귀신을 쫓아냈고, 병든 자는 고쳐 주었습니다. 제자들, 특히 주 예수님이 일반적인 병과 귀신들려 마음과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분별하시지 못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귀신들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을 미혹하여 주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번뇌케 하며, 죄를 범하도록 충동질합니다.
회당에 들어와 있던 귀신 들린 사람은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주 예수님과 대면하여 존경하고 믿고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쫓겨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귀신들이 사로잡은 사람의 입을 도구 삼아 저항한 말입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는 구약성경에서 전쟁이나 재판 상황에 있어서 공식 표현인 방어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는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질려서 한 말입니다. 요한일서 3:8을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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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도 알았습니다. 이 칭호는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칼빈(J. Calvin)은 마가복음 1:24의 주석에서,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된 자, 유일한 은총이 부여된 자, 그리고 모든 교회의 머리이신 메시아에게 주어진 칭호이었다.”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주 예수님에 대해 회당의 지도자들과 회중보다 더 잘 아는 영적 지식을 드러냈지만, 신앙고백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 인식은 개인 또는 영의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를 이기는 것이라는 당시의 일반적 관념을 따라서 예수님을 지배하기 위한 방어적 시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자의 입에서 나오는 귀신들의 소리를 들으신 주 예수님은 꾸짖어 말씀하기를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주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들에 대해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계셨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 예수님의 명령 곧 말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권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오는 것으로도 입증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선언은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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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을 비롯한 모든 종교인들은 물론, 세상에 대한 획기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기존의 종교 교리나 교훈들이 아닌 복음의 교훈이 담긴 설교는, 유대교인들도 경탄할 정도로 놀라운 신적 권위가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온갖 죄악의 종으로 만들어 지옥의 멸망으로 끌고 가는 마귀의 일을 멸하는 것이고, 더러운 귀신들을 쫓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의한 축귀의 권능을 목격한 유대교인들은 다 놀라서 서로 말했습니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그 목격자들은 신적 권위가 있는 주 예수님의 소문을 그 근처 사방에 퍼뜨렸습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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