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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8회: 나.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 II
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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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1 21:47:18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는 앞으로 당할 고난을 상기시켜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실한 증거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는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라고 하셨다.
[볼지어다]는 1:7의 주석을 보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는, 서머나 교회가 장차 받을 고난의 내용을 설명하신 것이다.
여기서 마귀 곧 사단은 교인들을 핍박하는 로마 정부나 서머나의 유대인들이나 기타 핍박자들의 궁극적 배후 조종자로 언급되었다.
[시험]은 페이라스테테(πειρασθήτε)이며 마귀가 인간, 특히 성도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하는 ‘유혹’(마 4:1-11, 약 1:13)이라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상시키거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하시는 ‘시련’이나 ‘연단’(창 22:1, 출 15:25, 신 8:2, 13:3, 38:8, 대하 32:31)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마귀의 시험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의미 외에 ‘고난’ 또는 ‘환난’(눅 22:28)이라는 뜻도 있다.① {멕라우글린(G. A. McLaughlin)은 “큰 축복은 항상 큰 시험이 따른다.”②라고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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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욱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히브리서 2:18의 주석을 보라.
2) G. A. McLaughlin,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Chicago: Christian Witness Co., 1909), p. 40, in R. Earle, 마태복음(비콘 성경 주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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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위대한 전도자를 만들려면 큰 은혜뿐 아니라 큰 시험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마 4:1의 주석).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사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③. 참조: 신 8:2)라고 하였다.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는 장차 받을 고난의 기간을 나타낸 것이다.
[십 일 동안]에 대해 (1)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의 10년간의 혹독한 핍박이라는 설,④ (2) 로마의 십대 핍박자인 네로(Nero: 54-68), 도미티안(Domitian: 81-96), 트라얀(Trajan: 98-117), 하드리안(Hardrian: 117-138),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 세베루스(Septimins Severins: 193-211), 맥시멈(Maximinus: 235-238), 데키우스(Decius: 249-251), 발레리안(Valerianus: 253-260), 도미클레시안(284-305) 황제들의 시대라는 설,⑤ (3) ‘10’이 충만 수, 또는 완전 수라는 점을 미루어 매우 혹독하고 완전한 긴 기간의 종말적 고난이라는 설(민 14:22, 욥 19:3),⑥ (4) 실제로 십 일간이나 짧은 기간이라는 설(창 24:55, 민 11:19, 단 1:12, 14, 행 25:6)⑦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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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필자의 히브리서 2:17-18의 주석을 보라.
4) in 박윤선과 김철손, 요한계시록.
5) in 박윤선.
6) R. H. Mounce, R. C. H. Lenski, “Summers”(in 강병도 편), 김철손, 요한계시록.
7) H. Alford, A. Barnes, A. Plummer, C. R. Erdman, “W. Milligan”(in W. Hendriksen), A. Johnson, G. R. Beasley-Murray, W. Hendriksen, R. H. Charles, “Kiddle”(in 강병도 편), G. E. Ladd, “Greijdanus”(in 박윤선), P. E. Hughes, J. F. Walvoord, 박윤선,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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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설과 (2)설은 설득력이 없고, (3)설은 서머나 교회가 종말의 때까지 존속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4)설은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는데, 문자적인 의미의 십 일로 보는 것에 문제가 있다. 9절에 일반적인 의미의 핍박과 박해로 인한 고난이 언급되었다는 점과 다음 문장인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를 보아 짧은 기간이기는 하나 매우 혹독하고 완전한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고난이 올 때에는 순교할 각오로 그리스도께 충성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순교할 각오로 충성하는 성도들에게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다.
[생명]은 조에스(ζωής)이며 ‘생애’를 의미하는 비오스(βίος)와 다르고, 죽음(롬 6:22)과 멸망(갈 6:8)의 반대인 신적 생명 곧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요 5:26, 11:25, 14:6, 요일 1:1, 2, 5:11, 행 3:15, 골 3:4). 물론, 이 생명은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덕으로부터 비롯되는 생명’(βίος κατ’ ἀρετήν)이나,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신비적 실체로서의 불멸은 결코 아니다.⑧
{요한복음을 주석한 반즈(A. Barnes)는 “그리스도가 생명이시라는 표현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새 창조 또는 인간을 새롭게 하는 일과 죄의 상태로부터의 회복 등은 종종 첫 창조에 비교된다. 로고스는 생명의 원천이므로 유사하나, 보다 고귀한 의미에 있어서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엡 2:1).”라고 하였다.}(요 1:4의 주석).
누가와 마태와 바울 역시 사도 요한과 같은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생명의 존재 근거요 의의요 목적이시다(요 1:4-, 빌 1:20, 갈 2:20).⑨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받은 인간이란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된 인간을 지시하는 것이다(롬 5:17, 딤후 1:1). 즉,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새사람의 “참 생명”(T. K. Abott)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구원받은 자의 생명은 과거와는 달리,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다(골 3:3. 참조: 요일 5:11-13). 다시 말하면, “그 생명은 실제적이고도 심오한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C. Vau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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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R. Bultmann, TDNT, Vol. II, p. 867.
9) 필자의 빌립보서 1:20의 주석과 갈라디아서 2:2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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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와트(J. S. Stewart)는 “바울의 구원과 관련되는 모든 것인 기쁨, 평화, 능력, 성장, 도덕적 승리 등은 생명이란 말에 포함된다.”⑩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 이후의 영역에 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지금 누리는 생명은 영원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⑪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이란 이 생명으로 사는바(롬 6:4) 영적 지각과 영적 지식, 영적 판단과 영적 갈망, 영적 기쁨과 영적 능력 등을 소유한 자로서 성령을 좇아 영적 삶을 살아가는 자이다(갈 5:16-17). 그는 여기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것이다(빌 3:20). 시간 안에서 영원을 사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초월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다. 그는 아직 육신을 입고 있으나 신령한 삶을 살며,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보존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을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이 생명은 장차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되어 누릴 영원한 생명이므로(딤전 6:19), 세상에서 이 생명의 은혜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은혜는 없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 생명을 부여하고(요 6:33-, 8:12, 20:31), 누리게 하시는 분은 절대적인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시다(요 1:4, 14:6, 행 3:15). 바울은 이 생명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빌 3:20)이며,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롬 6:4) 새로운 피조물이며(고후 5:17),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는 자(갈 2:20)라고 하였다.
[면류관]은 스테파논(στέφανον)이며(마 27:29, 요 19:2,5, 딤후 4:8) ‘둘러씌운다’(στέφω)는 뜻이다.
면류관은 (1) 왕에게 씌워 주권을 표시한 것(왕하 11:12, 시 21:3, 렘 13:18), (2) 공적인 영광이나 기쁨을 표시한 것, (3) 그리스의 경주에서 승리자에게 준 것(고전 9:25, 딤후 2:5)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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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J. S. Stewart, A Man in Christ.(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64), p. 192.
11) Ibid.,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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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전후 내용으로 보아, 여기서는 특히 (3)의 뜻으로 보는 것이 적합하다. {이스톤(B. S. Easton), 바클레이(W. Barclay), 포티트(G. Poteat)도 면류관을 가리켜, 감람나무나 혹은 담쟁이 등으로 만든 화관으로 경기에 승리한 자에게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약 1:12의 주석). 따라서, 면류관이 승리자의 최고의 명예이며 영광인 것처럼, 시험을 참고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면류관인 생명이란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의 생명이며, 최고의 명예이며, 영광인 새 생명이다.
{포티트(G. Poteat)는 기독교 문학에서 면류관이란 대체로 십자가와 얽혀져서 묘사되며, 시험의 인내가 승리로 인도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고 한다. 헨리(M. Henry는 “고난 없는 승리가 없는 것처럼, 십자가 없이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현세의 십자가는 잠시 동안이나, 생명의 면류관은 영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즉, 생명의 면류관이 인간의 고투에 의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이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고투에 의해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유 의지로서 우리를 위해 생명의 면류관을 선정해 놓으셨다. 그리고 다만 그것을 얻도록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된 것이다.”⑫}(약 1:12의 주석).
특이한 것은 이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책망이나 심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서머나 교인들에게 【11】[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는 2:7의 주석을 보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앞 구절에 언급된 생명의 면류관과 연결되는 복으로, 핍박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는(요일 5:4) 성도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람의 첫째 사망은 육체적 죽음이고, 둘째 사망은 불신자들이 최후 심판을 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영원한 형벌의 죽음이다. 이 둘째 사망은 불 못에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20:14, 21:8).
이 말씀은 순교에 직면한 서머나 교인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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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참조: R. A. Ward, G. Poteat,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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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0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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