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역사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이창희
  • 1307
  • 2020-09-13 04:05:57
‘우한’에 역병이 발생했다고 하더니
나랏님이 ‘우한’이라는 이름을 지우는 사이에
어느새 내 옆에 ‘코로나’로 자리 잡고 있다.

나랏님이 역병을 다스리겠노라고,
이웃과 흩어져 지내라 하더니,
이젠 가족도 흩어져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역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나랏님이 말하기를
역병이 교회 안에 창궐하니
교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라 한다.
그래야 역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목사들은 드디어 교인 없는 설교를 한다.
교인들은 비대면이란 혼자만의 예배를 드린다.
그래야 역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그런 상황에도 감리교는
감독과 감독회장을 뽑는다고 난리다.
역병이 도는 장마당에 던져진 개뼈다귀를
서로 물고 뜯는 개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던가?
주어진 기회들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가를 입증하지 않았던가?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참회록 한편이라도 남겼던가?

윤동주의 참회록이 가슴에 저며 오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보다.
그의 시를 한번 읊어 보자.

『참회록 (윤동주의 시)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는가.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감리교에 녹이 낀 거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이 수치스런 감리회 역사 앞에
자랑스런 학자가 존재하며, 목사가 존재하는가?

학자라고, 목사라고 내는 소리보다
차라리 어느 누군가의 참회록을 읽고 싶다.

“어느 감리교회 역사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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