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구는 누구인가?(우한 바이러스/박충구 글에 대한 반박문)

이창희
  • 2063
  • 2020-09-18 23:19:49
글을 올린 분이 박충구라고 명명하기에 나도 그냥 박충구라고 명명한다.

박충구는 목사들을 ‘깡패’라고 지칭하기도 하고, 감독을 연상하도록 ‘야비하고 자아비판이 결여된 자’들이라고 비판하는데, 박충구는 도대체 어떤 자인가? 그의 글을 보면 박충구는 지식과 상식과 개념이 합쳐져 심각한 기독교 바이러스로 변이 되어 슈퍼 전파자가 된 것 같다.

그의 글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정치인, 감독, 목사들은 중국을 비하하려는 야비한 의도가 있든지, 아니면 자기비판 의식이 결여된 자들.”이라고 비판하는데, 박충구 그야말로 기독교에 대한 신앙이나 개념도 없고, 국가적 정체성도 결여된 자 같다.

‘우한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한발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박충구가 ‘우한’이라는 출처를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말이 아닌가? 박충구의 이론이 맞다 치자. 그렇다면 그는 먼저 정부에서 말하는 ‘교회발 확진자’라는 발표부터 비난하며 교정해야 옳았다.

그의 이론을 빌리면, ‘교회발 확진자’라는 정부의 발표는, 교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생산해 사회에 퍼뜨린다는 의식을 전국민에게 유포하는 정부의 악의적 행위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박충구는 자기 이론에 의거하여 ‘교회발 확진자’라는 정부의 발표를 왜 교회를 비하하려는 야비한 행위라고 말 못하는가? ‘교회발 바이러스’라고 용어를 사용하여 발표하지 말고 순수하게 ‘코로나 확진자’라는 용어를 선택하도록 정부에 대하여 말해야 그의 지론과 일치한다. ‘우한발 바이러스’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중국을 향한 ‘야비한 의도적 행위’라고 맹공을 퍼붓고 ‘교회발 확진자’라는 정부의 발표에는 말 한마디 못하는 박충구는 스스로 자기 주장을 모순 덩어리로 만드는 어리석은 괴변자이다.

박충구는 알라!
지금 목사들이나 교인들은 중국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우한발이든 코비드든 용어 선택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며 교인들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 작금에 중국을 비하한다고 말조심하라고 교회를 향해 부라리며 나서는 박충구는 개념이 있는자인가? 누구인가?

박충구가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인들을 국가에 고발하는 신앙의 변절자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감독, 목사, 교인들을 글로벌 시대를 거스르는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하며,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는 기독교를 국가적 통제 하에 귀속시키려는 정부의 의도에 입 맞추는 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교회와 교인들은 두려움에 빠졌으며, 교회 활동은 많은 제약을 받아 거의 카타콤시대로 회귀하여 숨죽여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숨죽인 기독교인들에게 중국에 대하여 “용어 선택 잘하라.”고 소리 지르며 삿대질하는 박충구는 누구냐?
비굴하고 야비한 신앙의 변절자이며 감리회의 수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박충구가 한국인이라면 그는 큰 틀에서 매국적 행위를 하고 있다.
‘우한발 바이러스’로 전 국민이 힘들어 하고 교회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는 국민적 고통을 분담하려는 정책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을 이용하여 방역과 함께 교회를 비롯한 종교계, 의료계, 요식업계 등 대부분의 공동체적 기관들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하는 때를 맞추어 박충구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글을 써대며 사회인들까지 자극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가 중국인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한국을 정신적으로 중국에 종속시키려는 수치스런 매국적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박충구는 도대체 국민적 고통에 개념이 있는 자인가?
정부는 ‘환자 중심적’ 치료 목적이 아닌, ‘확진자’ 내지는 ‘출처’ 중심적 통제 방법을 선택함으로 많은 소상공인들과 기업들은 물론 공동체적 기관들은 ‘구상권’이란 족쇄에 매여 국민적 자유를 주장할 수도 없고, ‘집회자유’나 ‘종교의자유’ 역시 ‘방역’과 ‘구상권’으로 묶어 놓고 있다. 개인들은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국가의 방역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밥 먹듯이 바뀌는 단계 수정은 정부가 다단계 기관인가를 의심하게 하며, 문고리를 지적하면 문고리가 바이러스 매개체가 되고 에어콘을 지적하면 에어콘이 전파 매개체가 된다. 정부의 손가락이 향하는 사람이나 장소는 여지없이 붕괴되고 있기에 지금 사회나 교회는 정부의 손가락을 피하는데 급급하다.

박충구는 국민적 아픔이나 교회의 아픔에 대하여 개념이 있는 자인가?

어느 시대나 야당적인 글이 많아야 권력이 조심하며 국정을 바르게 이끌거늘
어찌 감게에 정부에 아부하는 글들이 이리도 많은지?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친여적인 글들은 쓰지 않아도 국가가 다 알아서 잘하고 있다.
굳이 정부의 구미에 맞는 글을 써 기독교 통제에 자신감을 더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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