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최세창
  • 1403
  • 2020-10-02 19:14:33
(설교 동영상: 유튜브)

<창세기 50:15-21, 로마서 8:28>

15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1. 시작하는 말

불행해질까 봐 염려하며 두려워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노력들을 합니다. 그러나 불행해질까 봐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기도 하고, 불행을 피하거나 면하려고 애쓰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불행을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는 원치 않는 불행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천재지변과 전쟁, 독재 정치와 무능한 정치, 질병과 노환, 실수와 죄악 등으로 인한 불행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닥친 불행을 거부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선용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불행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2. 불행 속의 하나님의 뜻

요셉 덕택으로 애굽에서 살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는 바람에 몹시 불행해졌습니다. 총리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데다가 애굽 왕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고 있는 요셉에 의해 끔찍한 고통을 당하거나, 죽게 될까 봐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형들이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는, 그들이 뿌린 죄악의 결과입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을 미워한 나머지 죽이려다가, 이방인에게 노예로 팔아 버리는 죄악을 범한 적이 있습니다. 형들은 죽이고 싶도록 미워서 요셉을 팔아버렸지만, 그 죄악이 부모의 가슴에까지 대못을 박는 짓인 줄은 미처 생각 못했습니다. 죄와 악, 사랑과 선의 결과는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입니다.
원인 제공자는 소년 요셉이었습니다. 당시에 요셉은 툭하면 형들의 실수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습니다. 게다가 자기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자기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을 꾸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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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에게 자랑하며 떠벌렸고, 또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는 부모와 형들에게 자랑하며 떠벌렸습니다. 미련을 떤 겁니다. 꿈대로 부모형제와 만인 위에 우뚝 섰다고 해도, 입을 가볍게 놀리면 비아냥거리는 사람과 미워하는 적을 만들게 되는데, 그냥 꿈만 꾸고는 우쭐거리며 떠벌리니 비웃음과 미움을 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가답게 정말 똑똑한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과 권력이나 재력이나 지력이 있어서 잘난 줄 아는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있는 힘에 쏠린 탓에 그나마 있는 지혜마저 잃어버리고 미련을 떠는 유력자들도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요셉의 형들은 기근 때문에 식량을 사려고 애굽을 방문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사실을 알았고, 대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이웃도 고향도 다 잃어버린 요셉과 사는 데 필요한 단 하나의 조건도 없이 팔려간 요셉과 그 불행한 요셉의 말단 노예살이와 상전인 애굽의 시위 대장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일하다 겪은 억울한 옥살이와 기대했던 술 맡은 관원장이 2년이나 넘게 요셉의 간곡한 부탁을 망각하는 등의 갖가지 불행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
형들은 동생 요셉의 원한 때문에, 애굽에서 옥살이를 하거나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하시며 형통케 하시는 복을 받으면서 탁월한 신앙인으로 성숙하고, 총리까지 된 요셉의 사랑으로 아무런 해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온 집안이, 양식이 풍족한 애굽에서 땅까지 얻어 살게 됐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애굽에 살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죄악에 대한 회한과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까 마지못해 굶주리던 우리들을 거두어 준 것이지. 아버지가 살아 계시지 않았으면 벌써 무슨 변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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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을 것이다.’ 사람은 죄를 짓고는 못 사는 겁니다.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편안하게 잘만 사는데 무슨 소리냐? 회개는 무슨 얼어 죽을 회개냐?’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망가진 인생임을 자인하는 줄도 모르고 자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갑자기 재앙을 당하거나,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제들, 특히 각자의 가족까지 책임지고 있는 형들이 몹시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형들은 이구동성으로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하고는, 말을 전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는 요셉에게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악을 행한 형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기를 바란다고 유언하셨으니,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형들을 용서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보낸 형들은 마음이 안 놓여서 직접 요셉의 앞에 엎드렸고,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라고 하면서 처분만 기다렸습니다. 죄악이란 게 이런 겁니다. 성인군자나 통치자나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권세자라도, 저지른 죄악이 고개를 들면 한없이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죄악이란 범한 사람의 상전이 되고, 그는 초라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고, 결국 멸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34을 보면,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64:6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중 은혜를 죄 사함의 은혜요,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불행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기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로부터 인간 세상에는 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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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도 없는 형들을 귀양 보내거나, 독살한 왕자의 난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공산 독재 권력을 쥐거나 유지하느라, 친족이나 가족까지 죽이는 자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인간은 대동소이한 겁니다.
그러나 요셉은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질린 형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기근에서 구원하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다 길러 줄 것입니다.” 그런 후에 간곡한 말로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그야말로 요셉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6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불행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 불행들 속의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고, 그때그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요셉은 그때그때 다른 불행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용하다가 결국 애굽의 총리까지 되었고, 인류를 기근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냈습니다.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모든 불행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편이며, 주님 안에서 승리와 성공을 이루는 방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28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뉴톤 베이커가 겪은 감동적인 실화가 크리스챤신문에 실렸었습니다. 전쟁 중에 유럽의 어느 야전 병원을 방문했다가, 두 다리와 한 팔 그리고 한쪽 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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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잃어버린 처참한 상태로 누워 있는 병사를 보았습니다. 얼마 후, 두 번째 그 병원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 병사의 모습이 안 보였습니다. 원장에게 물었더니 간호원과 결혼하여 퇴원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베이커 장관은 그 병사가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구하고, 결혼까지 한 것을 퍽 잘된 일로 생각하며 귀국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베이커 씨는 국방장관직에서 퇴임하고, 홉킨스대학의 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재단 이사장으로서 졸업식을 주관해 박사 학위를 수여하던 중에 휠체어에 앉아 박사 학위를 받으러 나오는 그 병사를 보았습니다. 5년 동안 집념을 불태운 결과로 박사 학위를 받게 된 그 병사를 보고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남은 한 손을 붙잡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 상이용사는 베이커 씨에게 “베이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것을 신문 지상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으니 조금도 낙심치 마시고 더 힘차게 사십시오.”라고 위로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람들은 불행해질까 봐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워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불행을 초래하기도 하는 그런 마음가짐은, 불행을 막을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어차피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병약한 육의 몸으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에서 하는 생활과 가정생활과 직장 생활과 사회생활에는 불행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불행을 피하거나 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닥친 불행을 받아들이고 선용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불행 속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각자의 불행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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