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3회: 마.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3:1-6)

최세창
  • 1066
  • 2020-10-05 06:08:51
그리스도께서 사데 교회에 보내시는 편지는, 【1】[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로 시작된다.
[사데](Σάρδεσιν)는 두아디라에서 약 48㎞ 남쪽이자 헤르므스(Hermus: 현재의 Gediz) 강과 트몰루스(Tmolus: 현재의 표고 2,140m인 Boz Dag) 산 사이의 언덕에 위치한 도시(Acropolis: 丘陵都城)이었다.
[사데]는 주전 6세기에는 루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세계적인 도시이었다. 이 아크로폴리스는 웬만한 공격으로는 함락되지 않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그러나 그 약한 곳에 대해서까지도 과신하고 방비를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락되곤 하였다. 즉, 주전 549년에 고레스(Cyrus)에게 함락되어 바사(페르샤)의 영토가 되었고,①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정복(주전 334년)으로 그리스의 영토가 되었고, 주전 218년(또는 214년)에는 수리아의 안디오쿠스 3세(Antiochus III)에게 함락되었고, 주전 189년에는 로마군에 항복하여 133년까지 로마의 맹우 버가모 왕의 지배 하에 놓였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주전 133년). 주전 17년에 지진 때문에 괴멸되었으나, 로마의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면세 조치와 원조로 도시를 재건하고, 티베리우스 사원을 세웠다.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는 여기에 수로를 설치하였다.
이 도시에는 케벨레(Cybele: 위대한 어머니) 신의 사원, 아데미(Artemis) 신전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황제 숭배나 우상 숭배의 문제는 별로 없었다. 이 도시는 모직물, 양탄자, 금세공 등의 상공업이 특히 성하여 2세기까지도 그 부유함을 유지하였으며, 따라서 사치와 부도덕의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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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철손, 요한계시록: 어떤 병사가 성 위에서 투구를 떨어뜨린 것을 집으러 내려오는 길을 정탐해 두었다가 그 길로 공격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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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1세기에 이 성읍에 전해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es) 시대의 사데 교회의 사교(司敎) 멜리토(Melito: 유명한 변증가이며 주경가)는 수많은 논문을 썼는데, 그의 설교의 하나가 근년에 고사본(古寫本) 쳬스타 비티 파피리 안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폐허로 남아 있는 이 지역은 두드러진 고대의 유적이 많으므로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꽤 침식을 받았지만 아직 고대 헬라부터 비잔틴 시대에 걸쳐 축조된 요새벽(要塞壁)의 유적이 남아 있다. 로마풍의 수로교(水路橋) 자리가 트몰루스 산에서 아크폴리스에 이르고 있다. 그 아래쪽에 있는 성읍도 요새벽으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잡한 비잔틴 시대의 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시내의 유적에는 로마 시대의 극장이나 경기장이 있는데, 양자 공히 콘크리트의 거대한 구형 건물이었다. 경기장 부근에는 대리석의 아취가 있다. 현저한 건축의 유물은 아크로폴리스의 서쪽에 있는 아데미(Artemis) 신전이다. 그 원형은 현재 거의 알아볼 수 없다.②
[교회](에클레시아스, ἐκκλησίας)와 [사자](앙겔로, ἀγγέλῳ)는 1:20의 주석을 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의 [하나님의 일곱 영]은 1:4의 주석을 보고, [일곱 별]은 1:16의 주석을 보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의 [행위]는 2:2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는 나쁜 의미로 사용되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는, 사데 교회가 살아 있다는 명성은 있으나 영적으로는 거의 죽었다는 뜻이다. 교리나 종교 의식이나 종교적 의무 이행이나 신학 등에 있어서는 명성이 있었지만, 영적 생명에 속한 사랑이나 영적 은사나 능력 등은 거의 상실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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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조: E. J. Banks, “Sardis” in ISBE, Vol. IV, p. 2692. M. J. Mellink, “Sardis” in IDB, Vol. 4, pp. 221-222. A. Johnson, 黑崎幸吉,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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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황제 숭배와 관련된 핍박이나 이단들의 위협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교적 문화나 주변 사회와 타협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력을 거의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런 사데 교회에게, 그리스도께서는 【2】[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하셨다.
[일깨워](γίνου γρηγορών)는 ‘깨어나다’, ‘경성하다’, ‘정신을 차리다’ 등을 의미한다(막 13:35, 벧전 5:8). 이 말은 현재 미완료 시상과 현재 능동태 분사가 결합된 것으로 일시적인 경성(警醒)이 아니라, ‘계속적인 경성(警醒)’을 의미하는 것이다.③
이 명령은 사데 지역이 난공불락의 천연 요새라는 점을 믿고 안일하게 방비하다가 두 번씩이나 점령당했던 사데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R. C. H. Lenski, R. H. Mounce).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는 사데 교회에게 거의 다 죽고 남은 영적 생명을 [굳게 하라]는 것이다. “굳게 하라(στηρίζω)는 것은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활력소를 투입시켜 생기를 회복시키고 건강을 강화하라는 말이다(눅 22:32, 행 18:23, 롬 1:11, 살전 3:2 참조)”(김철손).④
영적으로 죽을병이 든 교회의 급선무는, 아직 남아 있는 영적 생명을 견고히 보존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는 사데 교회가 나름대로는 종교 의식을 준수하고 종교 행사를 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온전한 행위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종교 의식 준수와 행위는 형식적이며 위선적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믿음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본위 또는 자기 위주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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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조: A. Johnson, “Moffatt, Beck, Robertson”(in 강병도 편), 박윤선.
4)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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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은 페플레로메나(πεπληρωμένα)이며 신적인 절대 무오의 완전이 아니라, 믿는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완전을 의미한다(6:11, 요 16:24, 17:13).
사데 교회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리스도께서는【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고 하셨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는 사데 교회가 처음에 “복음에 대한 사도의 전승”(A. Johnson)을 어떻게 받았고,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A. Johnson)을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살전 1:5)⑤라고 하였고, 고린도 교회에는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고전 2:1)⑥라고 하였다.
[회개하라](메타노에손, μετανόησον)는 2:5의 주석을 보라.
영적으로 거의 죽게 된 사데 교회의 살길은 계속적인 경성(警醒)과 남은 영적 생명을 굳게 하는 것과 복음을 어떻게 받고 들었는가를 생각하는 것과 지키는 것과 회개하는 것이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는,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잠자는 자에게 도둑 모양으로 임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때에 갑자기 재림하시게 되는 상황을 비유하신 것이다(16:15, 마 24:43, 살전 5:2, 벧후 3:10).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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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필자의 데살로니가전서 1:5의 주석을 보라.
6) 필자의 고린도전서 2:1의 주석을 보라.
7) 필자의 마태복음 24:43의 주석과 데살로니가전서 5:2의 주석과 베드로후서 3:1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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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의미에서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사데 교회의 예외적인 상황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4】[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데 교인들이 영적으로 거의 죽은 상태이었으나, 그 중에 극소수의 예외가 있었다. 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께서는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라고 하셨다.
이 말에 대해 (1) 도덕적으로 순결한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이라는 설⑧, (2) 성적인 불결에서 자신을 지킨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이라는 설(Zahn),⑨ (3) 우상 숭배로 더럽히지 않은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이라는 설(H. Kraft), (4) 세속적인 풍조와 혼합에 물들지 않은바 기독교적 의미의 성결한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이라는 설(고후 7:1) R. C. H. Lenski, A. Johnson, 박윤선) 등이 있다.
어느 한 두 견해를 취하기보다는 종합해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철손 님은 “a. 소극적으로 이 세상의 도덕적 부패에 물들지 않았다는 말이고, b. 이단 사상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의미가 또 있다. c. 충성스럽게 순수 신앙을 고수했다는 말이다.”⑩라고 하였다.
그러한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라고 약속하셨다.
[흰옷을 입고]의 [흰]은 1:14의 주석을 보라.
[흰옷]은 천적인 정결(A. Plummer)과 승리(H. Alford), 또는 “하나님의 의, 승리, 영광”(A. Johnson)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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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ffatt”(in박윤선), “Beckwith, Swete”(in 黑崎幸吉, H. Alford, 黑崎幸吉.
9) in 이상근.
10)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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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리니]는 페리파테수신(περιπατήσουσιν)이며 문자적으로는 ‘걷다’, ‘거닐다’의 뜻이나, 은유적으로 ‘윤리적 의미에서의 습관적인 행동’ 또는 ‘생활양식’을 의미한다(3:4, 16:15, 21:20, 고전 3:3, 7:17, 고후 4:2, 5:7, 엡 2:2, 4:1, 빌 3:17, 18, 골 1:10, 2:6, 살전 2:12, 4:12, 살후 3:6, 11, 요일 1:6, 7).
그러므로 [나와 함께 다니리니]는 이단 사상이나 세속에 물들지 않고, 정결한 신앙생활을 한 영광의 승리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신령한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극소수의 사데 교인들의 주도적인 역할에 의한 합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효와 성령의 성화로 말미암아 성취된 합당이다”(A. Clarke).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랐을 뿐이다.
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께서는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하셨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의 [이기는 자]는 2:7의 주석을 보라.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의 [생명책](βίβλου τής ζωής)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자의 이름을 기록한 책을 의미한다(3:5, 13:8, 20:12, 사 4:3, 겔 13:9, 단 12:1, 출 32:32, 시 69:28, 눅 10:20).
“처음에 이는 지상의 신정(神政) 국가에서의 시민권을 뜻했다(Lightfoot). 구약 말기의 예언서(단 12:1) 및 외경에서는 그 성격은 종말적이 되었으며, 의로운 자를 위한 생명책과 악인을 위한 멸망책이 있었고(I Enoch 81:4, Ass. Isaih 9:22), 탈묻에는 거기에다 아직 판결을 받지 못한 악인을 위한 셋째의 책도 있다(Rosh Hashanah 1:49). 또한, 외경에서는 의인이 그 의를 잃어버릴 때 생명책에서 멸망책으로 옮겨진다고 하였다(Jubilees 30:32)”(이상근).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의 [내 아버지]는 1:6의 주석을 보고, [천사들](앙겔론, ἀγγέλων)은 1:1의 주석을 보라.
[시인하리라]는 엑소모로게소마이(ἐξομολογήσομαι)이며 법정 앞에서 하는 공적인 고백에 사용되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심판 때에 아버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믿음의 승리자들이 하늘나라 시민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신다(마 10:32, 눅 12:8).
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데 교인들에게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다.
이 구절은 2:7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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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36-142.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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