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의 리더는 먼저 사람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오재영
  • 1643
  • 2020-10-03 23:39:00
위기와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고결한 지도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그가 속한 집단 모두에게 소망과 기대감을 갖게 하는 보람 있는 일이다. 선민의 나라 유다의 국가존망이 풍전등화 같은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을 허락하셨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가 정복한 여러 나라에 관대한 정치를 행하였다.
유다나라에 대해서도 제⼆회 포로 후 당시 신앙적 명문출신인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하고 미스바에서 유다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다랴의 조부는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공헌한 대정치가 사반, 부친은 예레미야를 위기에서 구해낸 아히감(26:24), 숙부는 바룩이 예레미야의 예언의 두루마리를 읽을 때 성전내의 자기 방을 제공한 그마랴(26:10)다.

이처럼 그다랴 一家는 신앙적으로도 예레미야와는 같은 방향으로 예레미야를 존경하고 그의 예언을 따라 바벨론에 복종하는 것만이 유다부흥의 유일한 길이라 믿고 자기 한 몸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감히 조국을 위해 총독이 되었다. 예레미야도 수도 함락 후 그에게 가서 함께 지냈다(40:6). 그는 당시에 보기 드문 바른 정치가로 고결, 관대한 사람으로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도 높아 바벨론에 저항했던 여러 장수들을 비롯한 이들이 칼을 버리고 미스바로와서 그에게 복종하며 함께했다. 그로인하여 전화(戰禍)3년의 폐허에서도 질서는 점차 회복되고 조국부흥의 서광이 미스바의 만추(晩秋)로 비치기 시작했다(렘30,31장)

이처럼 그다랴는 조부로부터 부친 아히감의 신앙과 신실함을 이어받아 오합지졸 된 남은 자들과 돌아온 이들에게 “패망의 현실에 낙망하지 말고 일상을 회복하도록 격려와 함께 소망을 심어주며 여러 가지 정책의 바른 방향으로 섬김의 본을 보인 지도자, 예나 지금이나 이런 지도자는 그가 속한 공동체에 안정과 미래의 희망을 준다. 그러나 그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은 사람분별에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요하난의 충고를 믿지 않음으로 야심가 이스마엘(왕의 일족)로 인해 본인은 암살되고, 남은 백성은 요하난과 함께 애굽으로 옮겨 흩어짐으로 국가의 부흥은 수포로 끝이 났다. 절망에 있던 이들이 조국에 대한 평화와 희망의 기대는 겨우 1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암흑의시대가 임한 것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지도자들도 위기의 때일수록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해야한다.
자기 주변에 부친 때부터 관계된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는데도 그다랴와 요하난, 그들은 왜 애굽행에 대하여 묻지 않았을까? 오늘도 원리는 동일하다. 신앙의 지도자 된 이들은 주님의 뜻과 함께 자기 주변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거나 거스르는 이들을 잘 분별할 때 그 공동체가 올바로 성장할 수 있다. 대부분 지도자들이 자리(職)에 오른 후에 변절함은 초심(初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삶은 어떻게 시작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떻게 마칠 것인가는 더 중요하다. 그런 말씀이 있다.“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나의 지금 경쟁상대는 누구(무엇)인가?

성경이 지도자 된 이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 있다.
그것은 지도자 된 이들이 자신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기 시작을 하면 그의 영혼은 건강할 수가 없다. 그것은 그가 경쟁을 부추기는 생활방식에 빠져들 때 마다 그의 영혼은 조금씩 죽어가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경쟁과 시기와 질투라는 파괴적인 세력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이가 없다. 때문에 지도자에게는 민감함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민감함이란 사람들의 삶의 이면에 숨어있는 실체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그에 따라서 적절한 행동이나 반응을 결정할 수 있는 결단력의 용기 있는 능력을 말한다. 스티브 옥포드는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리더십이란, 꿇은 무릎, 젖은 눈, 깨어진 심장에 있다”고 했다.

헛된 야망에 사로잡힌 지도자는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린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교단이 지나온 10여년의 과정만 헤아려도 중책을 맡거나 거부당한 후에 그의 자세를 보면 그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이들은 본인이 원한 지위에 오른다하여도 그에 걸 맞는 주님을 면대함으로 준비되지 못했기에 영성과 섬김의 총명함을 잃어 따르는 이들로부터 치기만만(稚氣滿滿)히 보여 초라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려는 이들은 먼저 겸비함으로 사람을 분별하여 (아첨하는 자. 동료를 비방하는 자. 편 가르기를 하는 자.) 멀리하고 조직 내 두루 살펴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다른 이들에게 칭찬 듣는 이들을 발굴하여 그들을 “적재적소”에 세워야 한다. 이 안목이 준비되지 못한 이의 등장은 모두의 불행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혹시라도, 세상적인 방법으로 겁박하거나 타협을 종용하는 이들을 두려워하거나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거듭남이 의심될 뿐만 아니라 본인과 관계된 모두를 파멸시키는 불행한 존재들이기에 가능하면 변화시켜 돌려보내야할 대상이지 함께 성직을 논할 이들은 아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성숙함의 표시는 나쁜 행위를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에 있다. 혹여 실패했다하여도 즉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의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리더는 언제나 말씀을 기준으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길이 바른지를 확인해야한다. 말씀은 바르지 못한 길과 곁길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절되었을 때에 필요한 것...

한때 교단을 황폐화시켰던 이들이 이제는 대부분 은퇴를 하였거나 이 땅을 떠났다. 이들이 본인의 기대와 달리 거절되었을 때 그동안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여 주님의 몸 된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순응하여 더욱 준비하였더라면 어떠한 결과가 되었을까? 지지하거나 반대한 이들에게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존경받는 이로 기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세속적인 방법으로 패거리지어 교단의 본부를 점거하고 이교도들에게 추한모습을 보임으로 결과적으로 본인이나 함께한 이들이나 모두가 교단에 씻을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남기고 실패자의 길을 걸었다. 그 罪 가볍지 않다. 이들도 그에 대한 처절한 회개가 없다면 十字架의 원수 된 가엾은 이들이다. 세상 떠나기 전 정리함이 지혜다.

지금도 동일한 길을 따르는 사람들...

‘감게’와 당당의 기사에 오르내리는 사연 중에 지금도 패거리지어 상대를 폄하하며 세상 법정에 드나드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생각 속에 주님을 두려워함이 있을까? 모두가 끝없는 사막길 에서 정로(正路)를 이탈하여 신기루 따라 방황하는 이들일 뿐이다. 본인들이 어디에 기댄 자신감인지는 모르나 부디 자중하여 뜻을 철회하고 목회현장으로 돌아가 겸손히 섬기는 자리에 있기를 권면 드린다. 본인들이 주변의 다른 이들보다 인정을 받고 여유가 있음은 그것은 본인의 탁월함이 아닌 남다른 은혜일뿐이다. 그 여유로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게 마음을 쓰기 바란다. 법률적인 모순에 매여 있는 세상법정에 이교도들인 판사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은 모두가 주님을 경홀히 여기는 망령된 행실들일 뿐이다.

“그리스도 외의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는 사람은 멸망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다”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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