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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30회:2. 일곱 인으로 봉한 책과 어린양/가.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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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0 01:50:10
환상을 통해 하늘의 보좌와 그 주변의 광경을 본 대로 기록해 온 요한은, 이제 일곱 인으로 봉한 책과 어린양에 관한 환상을 본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분은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5:1-7), 최상위 천사들인 네 생물과 상위 천사들인 이십 사 장로들의 찬미(5:8-10), 그리고 천사의 무리와 피조물의 찬미(5:11-14)로 구성되어 있다.
가.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5:1-7>
요한은 새로운 환상에 대해, 【1】[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로 시작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4:2의 주석을 보라.
[오른손에](ἐπὶ τὴν δεξιὰν)는 ‘오른손 위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1:16의 주석을 보라.)에 책이 있으니]는, 왕적인 통치권자이신 하나님의 오른손 바닥 위에 책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 의지로 세상의 운명을 결정한 것에 관한 충분한 설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R. H. Mounce).
[책]은 비블리온(βιβλίον)인데, 양피지 같은 곳에 한 장씩 써서 철한 책(Grotius, Zahn, Nestle)①이 아니라, 양피지나 파피루스로 만든 두루마리 책(사 34:4, 렘 36:2, 히 10:7)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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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R. H. Charles.
2) J. Wesley, A. Barnes, R. H. Charles, A. Plummer, W. Hendriksen, H. Kraft, W. Barclay, C. L. Morris, P. E. Hughes, G. R. Beasley-Murray, A. Johnson, C. R. Erdman, R. C. H. Lenski, M. Rist, J. F. Walvoord, R. Brooks, G. E. Ladd 黑崎幸吉,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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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A. Johnson)은 “고대에는 공적 문서나 사적 문서에는 두루마리가 사용되었다. 글은 안쪽 한 면에만 세로로 써 내려가는 것이 상례였다. 간혹 두루마리 양면 모두에 글을 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을 ‘오피스토그래프’(opisthograph)라고 불렀다. 한 쪽에만 글을 쓴 보통 두루마리들은 매매가 가능했으며, 양면에 모두 글을 쓴 두루마리는 사적으로 사용된 비매품이었다(Edward Maunde Thompson, An Introduction to Greek and Latin Paleography[Oxford: Clarendon, 1912], pp. 49-50).······두루마리나 접은 종이들은 그것을 촛물로 봉한 후, 그 내용을 보호하고, 그 쓴 것이 진본임을 보증하기 위해 도장을 찍었다. 그 주인만은 인봉을 떼거나, 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었다. 원본은 인봉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사본은 그렇지 않았다. 인봉된 문서는 숨겨 두었으나, 인봉되지 않은 사본은 공개되었다(22:10)(TDNT, 7:941 이하).”라고 하였다.
[안팎으로 썼고](γεγραμμένον ἔσωθεν καὶ ὄπισθεν)는 ‘양면에 썼고’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즈안(Zahn)은 “안에 썼고, 밖으로 일곱 인을 봉하였더라”로 번역하여, 책 내용의 비밀성을 역설하나,③ 내용의 충실성을 나타내며, 가감할 수 없도록 양면에 쓴 것④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 두루마리의 내용은 6장 이하에 공개한 대로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적인 계획서이며 청사진이다. 지금까지 이 두루마리는 비공개적으로 하늘에 보존되었다. 그런데 종말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기록은 유대교 문헌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시 139:16, 겔 2:9, 단 10:21, I Enoch 91, 93, IV Edzra 6:20-). 특히, 여기의 두루마리 기사는 에스겔 2:9-10에서 직수입한 것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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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박윤선.
4) J. Wesley, H. Alford, “Vincent”(in 이상근), A. Plummer, W. Barclay, W. Hendriksen, C. L. Morris, P. E. Hughes, R. H. Mounce, R. C. H. Lenski, R. Brooks, A. Johnson,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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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라고 했다”(김철손).⑤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의 [봉하였더라]는 카테스프라기스메논(κατεσφραγισμένον)이며 ‘위 아래로 봉하였다’라는 뜻이다.
[일곱 인]에 대해 (1) 유서에 여섯 개의 인으로 봉하고, 각 인으로 봉하는 사람마다 그 이름을 썼으며,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인봉을 뗄 수 없게 한 고대 로마의 법을 따른 것으로, 장차 하나님 나라의 상속에 관한 유서와 같은 것이라는 설(Zahn),⑥ (2) 일곱 교회와 일곱 영에 관련되는 것이라는 설(Miligan),⑦ (3)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하나님의 계시의 완전성과 비밀성을 나타낸다는 설⑧ 등이 있는데, (3)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3)설을 지지하는 김철손 님은 “저자 요한은 유대교에서 중요 문서나 증서, 유서, 매매 증서(렘 32:10-14)를 인봉하는 전통을 따라(사 29:11, 단 12:4, 9) 두루마리를 일곱 인으로 봉했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요한은 【2】[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라고 하였다.
[힘있는 천사]에 대해 천사장의 하나(A. Clarke, “De Wette”⑨)이거나 가브리엘(J. M. Ford, “De Lyra”⑩)이라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아무튼, 그는 [큰 음성으로 외치]는 [힘]이 있는 천사이었다.
[천사](앙겔론, ἄγγελον)는 1: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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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철손, 요한계시록.
6) in A. Johnson.
7) in 이상근.
8) H. Alford, W. Barclay, R. H. Charles,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9) in 이상근.
10)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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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있는 인봉된 두루마리 책의 인을 떼고, 그 책을 펴 보기에 합당한 자격이 있는 자가 누구냐고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요한은 【3】[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라고 하였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라는 3부 구조는 우주에 대한 예로부터의 이해이다(빌 2:10).⑪ 따라서, 이 구절은 하늘 위의 천사들 또는 성도들이나, 땅 위에 살아 있는 사람들 또는 생명체나, 땅 아래의 죽은 자들이나 악한 영들 중에 그 누구도 두루마리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자격이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온 우주 안에 그 두루마리 책을 펴 볼 자격이 있는 자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자신의 반응에 대해, 요한은 【4】[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라고 하였다.
요한의 큰 울음은 천사의 큰 음성에 대응하는 것이다. 요한의 울음은 이미 받은 계시의 약속(4:1)이 그 두루마리 책을 읽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없으므로 무산될까 보아 두려워한 것이며(H. Alford, C. L. Morris), 그 자신이 계시를 열망하고 받아들일 만한 학습자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J. A. Bengel).
우는 자신에게 소망을 주는 소리에 대해, 요한은 【5】[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라고 하였다.
[장로 중의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의 [장로 중의 하나]에 대해 순교자 베드로로 추측하는 학자가 있으나(De Lyra), 네 생물들 곧 최상위 천사들과 함께 거론된 이십사 장로들 곧 상위의 천사들 중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4:4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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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필자의 빌립보서 2:10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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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지파의 사자]는 야곱이 유다(유대) 지파에게 했던 축복의 예언(창 49:8-12)을 반영한 것이다. [사자]는 동물 중의 왕이므로 유대 지파의 사자란 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승리하신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메시아가 유대 지파에서 나온다는 것은 유대 민족의 공통적 신앙이었다(IV Ezra 11:37, 12:31, Testament of Judah 24:5,⑫ 히 7:14⑬).
[다윗의 ‘뿌리’](리자, ῥίζα: ‘뿌리’, ‘싹’)는 이사야 11:1-10을 반영한 것이다. 이사야서에서 메시아는 악을 징계하고 평화로운 이상 국가를 이루시고 다스리시는 왕으로 나타난다. 이 메시아 칭호는 혈통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22:16, 마 1:1,⑭ 롬 1:3,⑮ 딤후 2:8⑯).
[이기었으니](ἰδοὺ ἐνίκησεν)는 감탄사인 이두(ἰδοὺ: ‘보라’)와 단회적으로 ‘이겼다’를 의미하는 부정 과거 시제의 에니케센(ἐνίκησεν)으로 되어 ‘단번에 결정적으로 승리하신 것’을 나타내고 있다.
골로새서 2:14 이하에는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승리에 대한 확증이며, 죽음에 대한 승리이다. “그 승리는, 사단과 죄의 권세와 사망과 세상을 이긴 것이다(1:18, 눅 10:18, 요 14:30, 12:31 참조)”(박윤선).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는, 장로 중 하나인 한 상위 천사가 승리하신 그리스도만이 인봉된 두루마리 책을 떼고 펴서 읽으실 유일한 자격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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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n 강병도 편.
13) 필자의 히브리서 7:14의 주석을 보라.
14) 필자의 마태복음 1:1의 주석을 보라.
15) 필자의 로마서 1:3의 주석을 보라.
16) 필자의 디모데후서 2:8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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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리스도에 대해, 요한은 【6】[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하였다.
[네 생물]은 4:6의 주석을 보고, [장로들]은 4:4의 주석을 보라.
[어린양이 섰는데]는 “한 상상의 동물의 모형에서 다른 동물로의 신속하고도 재빠르나 조화되지 않는 이동이다. 유대 지파의 사자(lion)인 그리스도가 이제 한 어린양으로 묘사된 것이다”(M. Rist). “사자와 어린 양은 아주 대조적인 동물이다. 힘과 유순, 승리자와 희생자, 왕자와 신민의 대조이다. 그러나 이 대조가 그리스도에[께]는 일치되고 조화된다. 그는 사자 같은 어린 양이시요, 어린 양 같은 사자이시다”(이상근).
구약성경에서는 어린 양이 주로 희생 제물로 드려졌는데(창 22:7-8, 출 12:3, 6, 29:38-39, 레 3:7, 4:32, 5:7, 9:3, 12:8, 14:24, 23:18, 민 28:4, 13, 29:4, 사 53장 등), 이것은 요한복음 1:29, 36에 나오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⑰ 36, 행 8:32)이신 예수 그리스도(벧전 1:19)⑱의 모형이었다.
여기의 [어린양]은 “요한복음 1:29의 그것(암노스, ἀμνός)과 다르게 아르니온(ἀρνίον)이라고 했으니, 이는 어학상 아형 명사(兒形名詞)이다. 이 아형 명사가 사용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드러우심, 온유하심, 희생이 되심, 사랑이 충만하심을 역설하려는 것이다”(Greijdanus).⑲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는 1:18의 주석을 보라.
이것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거나(Minear),⑳ 그리스도의 몸에 십자가에서 못박혀 운명하셨던 흔적이 있는 것을 묘사한 것(R. H. Charles, R. H. Mounce, 黑崎幸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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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필자의 요한복음 1:29의 주석을 보라.
18) 필자의 베드로전서 1:29의 주석을 보라.
19) in 박윤선.
20) in A.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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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만족케 하시고, 현재는 중보자로서 십자가의 구원의 효력을 영원토록 발휘하시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5:9, 12, 6:4, 9, 13:3, 18:24. P. E. Hughes, 박윤선). 사자(lion)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처럼 희생 제물이 되신 것에 인류 구원의 비밀이 있다.
사자와 같은 메시아로서 어린 양 같은 속죄 제물이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라고 묘사되었다.
[뿔](케라타, κέρατα)은 ‘힘’, ‘권능’, ‘권력’을 상징한다. 특히, 유대교에서는 메시아적 힘 또는 권력을 상징하였다(민 23:22, 신 33;17, 삼상 2:1, 왕상 22:11, 시 18:3, 132:17, 눅 1:69㉑). 따라서 [일곱 뿔]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힘, 또는 권능, 즉 전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곱 눈]의 [일곱]은 완전수이고, [눈]은 ‘통찰력’, ‘지혜’, ‘지식’을 의미하므로(슥 4:10), [일곱 눈]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통찰력, 또는 완전한 지혜나 지식, 즉 전지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의 일을 하도록 세상에 파송된(요 14:26, 15:26, 16:8, 13-15, 행 2장) 그리스도의 영이자 하나님의 영인 거룩하고 완전한 성령을 의미한다(1:4의 주석을 보라).
사자와 어린양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행동에 대해, 요한은 【7】[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능동적으로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책’(5:1의 주석을 보라.)을 취하]셨다. 이제 두루마리 책은 어린양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이양되었다. “이것은 어린양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김철손).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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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필자의 누가복음 1:69의 주석을 보라.
22)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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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72-178.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