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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가 정말 교만인가
최세창
- 1346
- 2020-11-16 02:45:57
<창세기 3:1-6, 로마서 5:12>
1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원죄란 인류 최초의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2:14을 보면, 바울 사도는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뱀을 통한 사단의 유혹에 아담보다 하와가 먼저 넘어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점을 밝힌 바울 사도가 죄의 기원을 언급할 때에는 하와의 죄라고 하는 대신에, 아담의 죄라고 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죄의 기원인 원죄와 그 결과에 대해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원죄란 모든 인간의 근원적 죄입니다.
2. 사단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교제와 영광을 위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말씀을 따라 만물을 다스릴 능력을 지닌 자율적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곧 아담과 아담의 짝인 하와를 에덴에 창설한 동산에 두시고,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부부는 짝지어 주신 하나님 아래서 정말 복에 겨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뱀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실은, 사단이 그 뱀을 통해 사람들을 타락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하와의 마음속에 의심과 호기심과 반감의 씨를 심기 위한 것입니다. 알고, 혹은 모르고 사단의 도구 노릇을 하는 유혹자들은, 권유나 명령이나 책망보다는 위하는 듯한 질문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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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고 있고, 말씀을 좇아 무한히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단 하나의 금령을 부각시켜 유혹하는 질문에 하와는 그만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됐다는 점과 만물을 다스릴 능력과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킬 의무를 부여받은 자율적 존재라는 점과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단의 유혹은 유혹이라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그 모든 은혜와 복에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한 가지에 대해 불만스러운 의심과 호기심과 반감을 가졌습니다. 유혹의 경우에 유혹자나 유혹의 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유혹받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와의 대답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와의 대답은, 창세기 2:16 이하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라는 무조건적이며 무제약적인 허용의 말씀을, 하와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라고 하여 단순한 허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약화시켰습니다. 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라는 말씀을,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다른 나무들 부류로 여겨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라고 한 것이고, “만지지도 말라”라는 없는 말을 덧붙여 금령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입니다. 게다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는 말씀을,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라고 하여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는 의미를 죽을지 안 죽을지 모른다는 의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말려들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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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하거나 무식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사람이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편한 대로 듣고, 관심에 따라 듣고, 감정에 따라 듣고, 비난과 공박을 위해 듣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남의 말을 잘못 듣고는 불쾌해 하거나, 원망하거나, 적의를 품기도 합니다. 고의로 가감하거나 왜곡하여 듣고는 비난이나 공박도 하고, 옮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문OO 목사님이 소개한 유머입니다. 전철에 한 아줌마가 강아지를 안고 탔는데,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한 10분 정도 지났을 때, 강아지가 갑자기 낑낑대기 시작하더니 계속 깽깽거렸습니다. 그러자 아줌마가 “어머, 제니야 멀미하니?” 등등 별스런 소리를 다 해 댔습니다.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에 점점 짜증을 내며 한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못한 한 아저씨가 주위의 반응에 힘입어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주머니, 전철 안에서 너무 시끄럽네요. 그 개 새끼 좀 조용히 좀 시켜요!” 그러자 아줌마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 개 새끼라니요! 얘는 내 자식처럼 여기는 강아지라고요! 멀미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거 가지고 왜들 그러세요. 나 원 참!” 어이없는 아줌마의 말에 주위의 반응이 살벌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아니, 조심하지. 어쩌다가 개 새끼를 낳았어?”
하와의 결정적인 문제는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순종하기는커녕 그 말씀과 말씀의 의미를 가감하고 왜곡하고 변질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 파괴, 명령자와 복종자의 관계 파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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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고 왜곡하고 변질시킨 하와의 대답을 듣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본격적인 유혹의 소리에서 우리는 또 사단의 놀라운 지혜를 보게 됩니다. 혹시 따먹고 죽지나 않을까 하는 인간의 염려에 대해 우선적으로 단호하게 안심시킨 겁니다. 다음에, 인간의 눈이 어두운 것처럼 현혹시킨 겁니다. 그 다음에, 인간의 교만을 최고도로 불러일으킨 겁니다. 따먹기만 하면 눈이 밝아져서 전지전능한 신들(Elohim)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질투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선악과를 따먹기만 하면 그런 하나님 밑에 있지 않고도, 전지전능한 신들이 되어 자주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단의 소리에 쏠린 하와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그 선악과가 예전의 선악과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말씀을 순종해 살 때에는 선악과가 별것 아니었는데, 유혹에 마음이 쏠리고 보니까 별것이 된 것입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는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사랑의 선물도 잘 골라 받아야지, 세상에 그게 뭔데 냉큼 받아먹습니까? 사랑하는 아내가 주니까, 그냥 헬렐레해 가지고…. 남편 좋은 게 뭡니까? 아내가 잘못하면 박력 있게 “안 돼!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고 팔목을 꽉 잡고 막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아내도 남편이 잘못하면, 애교 떠는 목소리로 충고하고, 그래도 안 들으면 어떻게 합니까? 바가지라도 박박 긁어야죠?
아무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있다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먹은 아담도 하와보다 나을 게 전혀 없습니다. 원죄란 하와의 죄요 아담의 죄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우리 모두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힘입지 않는 한, 사대 성인을 비롯한 그 어떤 성인 군자도, 그 어떤 영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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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도 사단을 당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것이 사단의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께 속한 자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속한 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47에는,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복된 말씀 대신에, 돈과 권력과 명예와 온갖 죄악의 낙 등을 미끼로 유혹하는 사단의 소리를 좇아 죄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만이 참 자유를 누리고, 사단의 궤계를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원죄의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바로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3. 맺음말
원죄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한 교만이라고 합니다. 하이비 콕스라는 신학자는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켜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태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일면만 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죄를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이 선악과를 왜 만드셨나? 만들지 않았으면 따먹는 죄를 짓지 않았을 것 아닌가?”라고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죄는 원죄에서 비롯된 이차적인 죄이며, 선악과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원죄는 복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배해야 할 사단의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유혹의 소리를 복종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 파괴는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자 지배해야 할 피조물에 대한 복종입니다. 한마디로, 원죄는 교만이자 자기 비하입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웃기는 이야기(편저) / 눈솔 예화집 I, II. (편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