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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3회: 3. 일곱 인을…가. 첫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1-2)
최세창
- 1114
- 2020-11-30 18:58:45
요한이 일곱 인을 떼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고 기록한 이 부분은 첫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1-2), 둘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3-4), 셋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5-6), 넷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7-8), 다섯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9-11), 여섯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12-17), 첫째 삽입 내용인 구원받은 자들(7:1-17), 그리고 일곱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8:1)으로 되어 있다.
가. 첫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6:1-2>
요한은 첫째 인을 떼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1】[내가 보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레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로 시작한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은,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인봉된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자격이 있는 피조물이 없는데, 속죄 제물이 되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신다는 것이다(5:2-5의 주석을 보라). 이것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관자이심을 나타낸다.
[어린양]은 5:6의 주석을 보라.
[일곱 인]은 5:1의 주석을 보라.
[네 생물 중에 하나]의 [네 생물]은 4:6의 주석을 보라.
[우레 소리 같이](요 12:29)는 4:5의 주석을 보라.
[오라](에르쿠, ἔρχου)의 대상에 대해 (1) 저자인 요한이라는 설,① (2) 그리스도라는 설(H. Alford, “Swete”②), (3) 말 탄 자라는 설③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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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 Barnes, “Moffatt”(in 이상근), A. Plummer,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2) in A. Johnson.
3) G. E. Ladd, “Weiss, Bousset”(in 이상근), R. H. Charles, “Beckwith”(in 黑崎幸吉), C. L. Morris, “Robertson”(in 강병도 편), P. E. Hughes, A. Johnson, R. H. Mounce, C. R. Erdman, 黑崎幸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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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서 저자인 요한을 오라고 하는 경우에는 듀로(δεύρο)가 사용된다는 점(17:1, 21:9)과 2절 초두에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를 미루어 받아들일 수 없다. (2)설에 대해, 왈부드(J. F. Walvoord)는 “그리스도는 대환난이 시작되는 때가 아니라, 대환난의 끝에 정복자로서 지상에 오신다.”라고 반대하였다. 또, (2)설은 나머지 세 인과 관련된바 땅 위에 환난이나 고통을 초래하는 말 탄 자들의 역할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위의 반대 또는 비판 내용과 전후 문맥상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존슨(A. Johnson)은 “이것은 1세기의 원형 투기장이나 서커스장에서 ‘오라!’ 또는 ‘나가라!’라는 명령을 듣고 여러 병거를 탄 자들이 투기장으로 나가는 것을 비유한 것 같다.”라고 하였다.
요한은 오라고 하는 우레 소리 같은 명령이 들린 다음의 광경에 대해, 【2】[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고 하였다.
네 인들과 관련된, 말 탄 자에 관한 이야기는 스가랴 1:8 이하와 6:1 이하의 말과 그 탄 자들의 상징을 연상케 한다. “성서에서 말(馬)은 대체로 힘, 두려움, 전쟁, 정복 등의 의미와 관련해서 말해진다(사 30:16, 31:1, 욥 39:22-28). 계시록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와 관련지어져 이야기된다(9:7, 14:20, 19:11)”(W. Hendriksen).
흰색은 ‘승리’, ‘결백’, ‘천적 또는 신적 현상’을 나타내므로(1:14의 주석을 보라.) [흰말]을 [탄 자가] 승리자요 정복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에는 개선장군이 흰말을 타는 관습이 있었다.
여기의 [흰말]을 [탄 자]에 대해 (1) 로마 제국이라는 설(J. Wesley, “Spitta, Elliott”④), (2) 로마의 정복자라는 설(J. A. Bengel), (3) 로마를 위협한 팔티아라는 설,⑤ (4) 19:11에서처럼 메시아라는 설,⑥ (5) 넓게 퍼져 가는 평화라는 설(C. R. Erdman), (6) 복음이라는 설,⑦ (7)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설(“Augustine, Wordsworth,”⑧ G. E. Ladd), (8) 초대 교회의 복음 선교의 승리자들이라는 설(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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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n 이상근.
5) “Holtzmann, Bousset, Scott”(in 이상근), R. H. Charles.
6) A. Clarke, “Bede, Grotius, Weiss, Lange, Todd”(in 이상근.
7) H. Alford, “Zahn”(in 이상근), “Greijdanus, Newell”(in 박윤선), 박윤선.
8)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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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⑨ (9) 적그리스도와 악의 세력이라는 설,⑩ (10) 미래에 나타날 어떤 정복자라는 설⑪ 등이 있다.
(1)설과 (2)설과 (3)설은 과거적 해석법이므로 배격되어야 한다. (4)설부터 (8)설까지는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존슨(A. Johnson)은 “어린양은 인을 떼고 있으므로 그를 말 탄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천사가 그리스도나 그의 종들을 불러낸다는 것은 합당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드만(C. R. Erdman)은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셔서 책의 인봉을 떼시는 이요 결코 그 인봉을 뗄 때마다 전개되는 무대에 배우로 나타나는 이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전쟁, 기근, 죽음 등을 상징하는 기사들과 대등되는 입장에 섞여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왈부드(J. F. Walvoord)는 “그리스도는 대환난이 시작되는 때가 아니라, 대환난의 끝에 정복자로서 지상에 오신다.”라고 반대하였다.
남은 (9)설과 (10)설 중에서 (10)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흰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로 뒷받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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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철손, 요한계시록.
10) “Bruce, Swete, Caird, Beckwith”(in A. Johnson), A. Johnson, J. F. W alvoord.
11) W. Barclay, R. H. Mounce, C. L. Morris,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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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18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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