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의 신학자의 업적을 무시만 할 수는 없다. 그분의 수고도 인정하나 거기에 머물지 말고 더 나아가자

현종서
  • 1346
  • 2020-12-08 07:53:40
논리는 그럴듯하고 아귀가 맞는데, 현실 세계에서는 맞지 않는 맑스의 유물사관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논리는. 인간의 논리적 서술방법의 한계입니다. 서론 본론 결론, 기승전결의 논리가 훌륭한 논문일지라도 현실 문제의 바른 진단도 바른 해법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인간 삶의 현장에서는 우리가 미쳐 예상 못한 일반적인 법칙을 깨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속에는 그러한 일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학은 때로 초 합리적인 사건과 초 논리의 기록인 성경을 기반으로 합니다.
신학자들의 신학이 타종교나 타 철학과 대화 하느라 그들의 논리 기록을 읽다가 성경의 논리를 잃거나 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의 논리를 떠나면 이미 그것은 신학세계를 떠나 종교학이나 철학세계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며 기독교신학을 그들의 눈으로 읽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게 성경의 진리를 피상적으로 간단히 정의 하고 현대철학이나 타종교의 이론을 이해 하노라 그들의 논리를 따라 가다가 영적인 존재를 자연스럽게 포함시켜 묘사하며 설명하는 성경의 독특한 논리에 접하여 초 이성적인 것은 신비적인 것이라 치부하여 제외 시켜 놓고, 합리적으로 이해 되는 것만을 다룬다면 기독교의 진수가 되는 진리를 빼놓고 진술하게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술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속의 수많은 단편적인 진리들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구성하려 하는 것이 조직 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신론, 그리스도론, 인간론, 구원론, 윤리론, 종말론이라는 제하에 신구약 66권 각 권에 있는 구절들을 종합하여 그 제목대로 체계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을 새로이 발전되어 나오는 철학과 대화하여 그들의 철학과 개념으로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려고 할 때, 기독교의 신학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새로 만들어져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철학도 정확히 이해 할 때, 그들의 철학의 개념과 용어로 기독교 진리를 손상함이 없이 해석해 낼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 신학을 한 이가 타종교를 연구하여 할 수도 있고 본래 타 종교를 믿던 이가, 성경을 읽고 그속에 담긴 진리를 이해하되 이론의 단계를 넘어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 자기가 익숙한 종교나 철학과 비교하면서 비교를 넘어 기독교진리의 절대성을 잘 설명하게 된다고 봅니다. 한편 기독교 진리를 이론과 체험적으로 깨달아 안 사람이 타종교난 철학을 공부하여 그것을 이해하여 그 세계(종교와 철학)속에 그 세계관과 개념을 이용한 기독교 진리의 변증이나 해설을 할 수 있을 터인데, 그들에게 잘 설명하노라 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조금도 허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그 방면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이 있거나 사명감이 있는 이들이 전문적으로 다를 수 있는 분야 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그러한 이들의 전문연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인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연구가 성숙되지 못한 단계에서의 연구성과를 내 놓게 되면, 어느편에도 도움을 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이 들여놓지 않은 분야에 뛰어 들었다면 하다가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미쳐 다 못하면 바톤 터치를 하여 후학들이 이어서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혼합종교나 짬봉종교, 철학도 아니고 신학도 아니고 종교학도 아닌 잡종 학문을 만들어 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불교도에서 기독교도가 된자의 기독교이해, 기독교도가 선교를 위해 불교를 연구한 후 불교도들이 납득하도록 해설한 기독교 진리의 글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타종교를 연구한다면서 내가 믿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허무는 일이 생긴 것이 타종교 연구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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