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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독 이런 감리사 이런 목사들
이경남
- 2869
- 2020-12-15 23:57:25
몇해 전 수십억을 들여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기까지 하였는데 새벽마다 웅장한 예배당의 붉은 카펫 위에 엎드려 기도하노라면 자기가 어쩌다 예수 믿고 또 목사까지 되어 이런 복을 받았나 그에게 베푸신 신의 은총이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예수를 믿지 않고 또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그런 그에게 최근 한가지 고민거리가 생겼다.
새벽마다 이런 신의 은혜에 감격해 젖어 있노라면 새로운 사명으로 그를 부르시는 음성 때문이었다.
신은 그에게 이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좀더 크게 쓰도록...다시말해 한 교회를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수백 교회의 수장이 되어 그를 위해 충성하라고 부르시는 것 같았다.
이런 음성을 들을 때마다 그는 고개를 내 저으며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고 부정하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모세를 책망하고 바울을 강권하던 노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신을 이길자 누구며 그의 명령 앞에 굴하지 않을자 누구인가?
그는 드디어 자기의 겸손을 접고 이런 신의 소명 앞에 담대히 나설 결심을 굳히며 길을 찾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그가 신이 쓰시고자 하는 신실한 택하신 바 된 종임을 알릴수 있을까?
또한 그가 이런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서는데 반드시 나타나게될 경쟁자는 어떻게 따돌릴 것인가?
이런 결심이 선 순간부터 그의 모든 열정은 여기에 바쳐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신은 그에게 신비한 지혜와 능력을 주며 돕기 시작하였다.
하루는 그가 이런 고민을 하는데 그를 책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신의 지경 내에 고생하는 종들이 많은데 그가 언제 이들을 염려하고 돌아본 적이 있느냐 이제라도 그들을 생각하고 그의 관대함과 자비로움을 나타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제껏 아둥 바둥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그를 책망하는 놀라운 계시였고 또한 지혜이기도 하였다.
그는 정말 자기의 모습을 뉘우치며 사르밧 과부처럼 ,아니 어린 나귀를 바치거나 그의 묘실을 내어줬던 요셉처럼 자신의 것을 드려서라도 신의 음성에 순종해야함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아낌없이 자기 소유를 처분했고 그것으로 지경 내의 수많은 종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성껏 선물을 마련했고 그 속에 두툼한 봉투를 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그의 선행이 소문 나지 않도록 그야말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 조차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해나갔고 ,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영광을 얻으면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없어진다며 드러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그의 이런 변화는 의심스러운 것이었으나 선물 속에 담긴 그득한 봉투는 사람들의 이런 의구심을 잠재우기에 넉넉했고 냉담하던 마음조차 그에게 기울어지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을 행하는 그의 역량을 칭찬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의 무능을 질타하기도 했고 또한 그의 주변에는 목숨이라도 바칠듯이 충성을 다짐하는 이들이 모여 들기도 하였다.
비록 그의 때가 될 때에 좌우편 한자리를 바라는 똥파리떼들이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싸움의 대세는 서서히 기울어져갔다.
이런 한심한 세태 앞에서 평생 독립 운동사를 연구하며 올곧기만한 선의의 경쟁자 는 서서히 밀려나야만했다.
드디어 그의 은밀하고 지혜로운 선행이 위력을 나타내 그가 역사와 전통에 빛난다는 신의 왕국-기독교대한감리회 XX 연회의 대가리가 되던 날 그 화려한 다간의 신전에서는 그들의 신을 찬양하는 노래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봉투는 나의 힘이요...
감독도 이런 감독 감리사도 이런 감리사 목사도 이런 목사들이 있는 한 선량하고 정직한 평신도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사태의 자초지종을 모르고 섣불리 꾸짖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