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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목사와 尹장로 행보를 멈추시라...
오재영
- 2168
- 2020-12-23 18:38:56
우리가 소유한 경전(經典)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정확히 말씀하시기를, 당신을 따르며 섬기는 일이 위험하고 불편하다고 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전보다 본인들의 舊習과 신념을 앞세우면서 요행까지 포함한 심정으로 자신들이 소속된 교회와 조직이 안전하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땅에 존재하는 진정한 교회는 언제나 깨어있어 말씀으로 재정비하고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를 또다시 나가는 반복의 삶이다. 늘 마음과 생각 속에 “저에게도 듣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이제는 대부분의 생각들이 그러려니 하지만, 위 제목에 거론한 이들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여러해 전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한 전국 명승사찰의 주지승들이 자기 자리보존을 위해 각목 들고 휘두르며 뉴스마다 온 국민들 냉소적인 조롱과 자기종단 불자들의 탄식도 상관없이 갖은 포악 쏟아 붓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자신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眞理위해 그리 했을까? 아니다. 불도(佛道)와는 전혀 상관없이 계율(戒律)을 깨뜨린(破戒僧)사판들이 욕망을 따라 자기 처자식 먹여 살리려는 몸부림임은 본인들도 알고 일반 대중들 모두가 안다.
오늘 우리들의 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일부 인사들의 모습들은 어떠한가?
이들이 추구하는 진리를 위하여 서로 자신을 희생하려는 다툼인가?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목사의 영성과 성숙의 깊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는 시간의 길이와 비례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선구자(先驅者)는 늘 등에 박힌 화살을 보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워렌 위어스비 표현대로 ”메달은 많으면서도 상처는 없는 이들이 너무 많다.“
우리를 실망시키는 사람들...
고단한 삶을 이어오면서 나름의 사람 보는 감(感)이 있다. 물론 틀릴 수도 있다.
언젠가 위에 등장한 이를 거론하여 그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면 교회를 바꿔 주도록 하라 말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은 대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다른 이의 잘못을 감시하고 지적하는 이들은 그가 누구이든 어느 자리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 길은 언제나 현실의 칭송보다는 고독한 길이며 온갖 예상치 못한 오해를 동반한 외로운 길이다. 그러하기에 언제나 자기성찰에 마음을 쓰며 긍휼(矜恤)의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하지 못하면 한낱 주구(走狗)일 뿐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선택한대로 갖은 유언비어 양산하드니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2월경으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떠도는 소문으로 직대에게 물은 적이 있다.
대부분 상식대로 본인은 자격이 안 되니 앞선 이의 실패를 교훈삼아 깨끗이 직무대행의 임무를 마치겠다고 선언하라고, 그러면 신앙의 소신대로 잘 마무리 할 수 있다했다. 그러나 이미 딴생각을 굳힌 것을 보고 후회 할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사람들의 의혹과 口舌에 시달리드니 초라한 퇴장을 했다. 사람마다 비슷한 성향이 있지만 자신을 별개로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들이 안쓰럽다. 아인슈타인의“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건 미친 짓이다.”정곡을 찌르는 말 아닌가?
때마침 감독들의 성명서가 나왔다. 잘하겠다는 말에 시비할 생각 없지만, 하나의 눈금 정확한 자(尺)를 드린다.
당신들은 지난 선거에 봉투 들고 다닌 적은 없는가? 만남에 동반되는 다과(茶菓)정도는 모르나 선(線)을 넘음은 본인도 자멸이다. 내 알기에 연회 감독 중에 어떤 이는 앞에서 지지한다며 뒤로는 자기 패거리들 동원한 이의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이다. 그리 말하는 이도 있다. 언제나 눈에보이는 이익을 따라 오고가는 이들의 흔적으로 인해 혼란들 오지만,” 사실 아니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수단방법 가라지 않고 자리에 올라 자주색 가운 입으면 거룩해 지는가? 누군가는 행정을 이끌어야하지만 정도의 차이다. 받은 이나 전달 한이나 모두가 가련하고 불쌍한 이들이다.
오늘의 스탠리 존스 목사를 기다리며...
1928년 미국 감리교회 총회가 “스탠리 존스” 목사를 미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감독에 선출했다.
어찌 보면 성직자로서 최고의 영예이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지는 監督職에 선출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다음 날 감독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은 선교사라며 자신이 사역하던 인도로 돌아갔다. 인도의 최하층계급 ‘불가촉’ 천민들과 함께한 그는 인도에서 비로써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 1959년 미국 감리교회는 스탠리 존스를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선교사”로 인정하였다.
인도 선교를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와서도 열심히 모임을 이끌다 69세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가 중풍으로 보스턴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간호사에게 부탁했다는 말, 나에게 아침마다 굿-모닝이 아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그렇게 명령해 주세요. 바라던 대로 다시일어나 인도로 돌아가 20년 동안 선교사의 사역을 마치고 89세에 인도에 묻혔다. 그때 그가 받은 은혜를 책으로 기록하였다.(The Divine Yes). 그가 한 말 나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예스”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 땅의 나그네 생활을 마치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과 함께 주님 나라에서 함께 할 기대에 부풀어 있는가?
거울을 보며...
주변을 보면 너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빠른 성공에 안달들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출세를 바라는 것 소인배들이 갖는 최고의 바램이다. 그래서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 자꾸만 시계를 본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정점에 서면 비로써 알게 되는 것이 시계보다 필요한 것은 나침반임을 깨닫는다. 진정한 삶의 성공이란 퍼즐의 마지막 피스를 채웠을 때 판가름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하기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가 훨씬 중요하다. 거기에 나침반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울이다. ‘지금 자신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수시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울보다는 나침반을, 나침반보다 시계를 더 선호하며 찾는다.
평생을 영혼 구원을 위해 알뜰하게 살다간 우리의 교조(敎祖)존 웨슬리목사에게 누군가 그의 시간 사용의 비결을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첫 만남에서 그 사람이 다시 만나야 될 사람인가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때로 죽고 싶도록 힘들거나 좌절하며 원망할 때 기억할 것이 있다. 내가 소홀히 여기는 그 일상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하루라는 것을...목사와 장로 그들은 진리를 어디에 담는가? 그의 심령 속에 담긴다. 그 심령의 맑기와 크기에 따라 다르며 담겨있는 그 내용에 따라 주님께서 쓰시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소요리 문답 제1번, 인간의 제일 되는 目的은 무엇인가?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리되기를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