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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감게’에 글을 올리는가?
오재영
- 1585
- 2021-02-09 20:03:36
날마다 되풀이되는 끔찍한 노동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매질을 견디다 못해 결국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도 목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로 화장되기 직전에 미 육군 3군단에 의해 구출된다. 그토록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곳에서 살아남은 위젤은 자신에게 씌워진 트라우마(trauma)를 신앙으로 극복하여 사람을 혐오하거나 은둔하는 대신 기자가 되고, 생생한 증언자로 희생자들을 기리며 세상에서 인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리기에 자신을 드렸다. 아래의 내용은 온갖 참상을 극복하고 올곧게 성숙된 인권운동가 엘리 위젤(Ellie Wisel)이 남긴 명언이다.
위젤은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아와 박해 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이고 핵전쟁 방지운동에도 힘을 쏟으며 폭넓은 사회활동을 펼쳤다. “희망은 평화와 같다. 이것은 신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다. 이 선물은 오로지 우리가 서로에게만 줄 수 있을 뿐이다.” “내 평생의 바람은 내 과거가 아이들의 미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젤은 나치가 저지른 잔학함을 세계가 잊지 않도록, 아울러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는 수용소에서 보낸 그 첫날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밤은 내 인생을 일곱 번 저주받고 일곱 번 봉인된 길고 긴 밤으로 이끌었다. 나는 조용하고 푸른 하늘 저편, 동그란 연기가 되어 사라져간 작은 아이들의 얼굴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내 믿음을 영원히 불태워버린 그 불꽃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내게서 사는 의지를 영원히 빼앗아 가버린 그 침묵하던 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느님만큼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더라도, 나는 결코 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엘리 비젤 재단을 설립해 차별과 불관용, 불의에 맞서 싸웠다.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에 힘쓴 공로로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노벨상 수락 연설에서 그가 한말이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그에게 그동안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이런 얘기를 되풀이 하는 게 맥 빠지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위젤은 그리 대답을 했다.
“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바뀌게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義로운 남자 하나가 인류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죄악에 가장 깊이 물든 도시 하나를 골랐다. 그 도시를 소돔(Sodom)이라고 하자. 남자는 갖은 궁리 끝에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다. 남자는 한 남자와 여자가 있는 곳으로 와서 ‘잊지 마라, 살인(殺人)은 나쁜 것이다!’라고 외친다. 처음에는 그 남자 둘레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귀를 기울였다. 남자는 이야기를 거듭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주 두주가 지났다. 사람들은 더는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해가 흐른 뒤 한 아이가 그 남자를 가로막으면서 “도대체 뭐하시는 거예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잖아요. 왜 거듭 외치고 있는 거지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에게 그 남자가 대답했다. “왜 그러는지를 알려주마. 나는 사람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그런데도 점점 큰소리로 외치는 건 그 사람들이 나를 바꾸어놓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야...” 오늘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계속해야할 正道를걷는 사역자마다 심비에 새길 가르침이다.
다양한 이들 중에 우리는 어느 부류들인가?
“송기숙 선생은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화남출판사)에서 사람이 모여서 ‘더불어’ 사는 최소 단위인 동네는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면서 다섯 부류의 사람이 어느 동네나 있는 사회의 구색이었다고 말합니다. 첫째,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동네 어른, 둘째, 늘 말썽만 피우거나 버릇없는 후레자식, 셋째, 일삼아서 이 집 저 집으로 말을 들어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 넷째, 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을 웃기는 익살꾼, 다섯째, 좀 모자란 반편(半偏)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 마을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말없이 품어 안았습니다”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김기석 목사 P54.재인용).
소박한 기대...
사역의 연륜과 함께 돌아보면 초년 목회에 품었던 그 거대한 야망들마다 대부분 주님의 거듭된 거절에 이젠 받아드림의 일상이 되고, 그 시선으로 주변의 선, 후배들의 말(言語)과 태도를 보노라면 현재의 그 품격(稟格)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과 함께 나 자신성찰의 기준이 된다. 오래전, 청파교회 신학생 전도사로 섬길 때 옆의 신광여고에 30여년의 교사로 계시던 장로님께서 여럿이 모인 사석에서 한 말씀이 생각이 난다. “당신께서는 앞에 걸어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과 걸음걸이만 봐도 그 학생의 학습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고...”
오늘 영혼들을 교도하는 우리목사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주님 앞에서 허세를 걷어낸 치열한 자기 도야를 거친 진실의 옹골찬 당당함과 神託을 전수받은 격에 맞는 인격이다. 어쩌다 요행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하여 속 알맹이가 제것이 아님에도 여유를 부려 잠시외양을 꾸며댄 것이 아닌, 그의 내면에 채움이 없다면 그 허상이 허물어지는 날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들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비로써 소중한 한 영혼이 거듭남의 의미를 보고 깨닫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 지난날 자신이 객기로 보낸 시간들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에 소름이 돋도록 부끄럽고 두려울 것이다.
이제는 관조하는 입장에서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矜恤)안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앞선 이들의 좋은 모습은 本으로 삼고 옳지 않은 삶은 ‘반면교사’로 삼아 주님은혜로 부여받은 남은 소중한 시간들을 성령님의 지혜(智慧)로 알뜰히 소비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