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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떠난 제자와 따르는 제자: 신학 교수, 교역자, 교인들
최세창
- 1277
- 2021-02-05 22:15:07
(요한복음 6:66-71)
66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70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1. 시작하는 말
알아도 해서는 안 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 남들에게 불평하고 악평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피해를 주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자기에게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돌아서서는, 자기에게 손가락질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사람이란 내일 달라질 수도 있는 자기의 기분이나 생각에 따라 불평하고 악평하지만, 그것이 자신과 남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초래하는지 모릅니다. 몰라서 하는 불평과 악평이 초래하는 가장 큰 상처나 피해는, 영생의 주 예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뜻을 모르면서 자기 뜻대로 안 해 준다고 불평하는 것은 주 예수님께 상처가 되고,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뜻이 주 예수님의 뜻이나 말씀에 안 맞을 때는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며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예수님을 떠난 자와 따르는 자
주 예수님은 귀로 듣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청중이 자신의 교훈의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알기 쉽게 해석해 주셨지만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유대인들의 영적 몰이해와 영적 몰지각이 그토록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그 영적 무지의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요한 사도는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제자들은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말씀을 좇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들고 찾아오신 주 예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열광적으로 따르며 함께 활동하던 제자들은, 주 예수님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을 듣고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불평하고 악평하며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제자로서 주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기적을 보면 잘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0:17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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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욕심에 끌려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교인들의 눈은 주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런 귀는 영생의 진리인 복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3:13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그의 구원의 복음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하여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하고, 그 성령을 통해 영의 눈과 귀가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9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11:15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귀가 달린 사람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설교는 귀나 가슴이 아니라, 영으로 듣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목적은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영으로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듣는 사람은 영생의 진리인 구원의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고, 순종을 통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주 예수님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잃어버리는 줄 모르고 떠나가는 많은 제자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주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제자들의 대표 격인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자체가 살아 있고, 영원한 생명의 주제를 다루며,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는 말씀이 주 예수님께 있는데, 누구에게로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는 메시아이시라는 뜻입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예수님은 그 자신이 죄 없으시고, 덕으로 충만하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특히 지극히 고귀한 과업을 수행하도록 기름이 부어졌거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메시아의 일을 위해 구별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시다.”라고 주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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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고백을 들으신 주 예수님은 자신이 열두 제자를 택했지만, 그 중에 마귀가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마귀는 주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 버릴 가룟 유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그 많은 유대인들이 아예 주님을 안 믿거나, 일단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가 떠난 사실을 볼 때, 열두 제자들은 확고한 목적의식과 투철한 목표 의식을 가진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복들을 받는 것은 이차적인 문제이고, 우선적으로 영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주님을 믿고 따랐는데, 뭐가 좀 달라졌다고 해서 목적을 바꾸거나 목표를 수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한 번밖에 없는 지상의 삶을 값지고 보람 있고 복되게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확고한 목적의식과 투철한 목표 의식을 갖춰야 합니다.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감정도 자존심도 체면도 위신도 체통도 비방도 멸시도 조롱도 천대도 다 무시해 버리고, 돈도 명예도 권력도 쾌락도 다 외면해 버릴 정도로 목적의식이 확고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 반드시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모든 장애 요소들을 오히려 성취를 위한 재료요 도구요 방편으로 삼을 정도로 목표 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은 목적의식과 목표 의식이 대단했습니다. 소년 시절에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서 철학과 정치학 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인터넷에 소개된, 왕자인 알렉산더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왕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무엇보다 소아시아를 정복할 것입니다.” “소아시아를 정복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정복할 것입니다.” “그럼 그 뒤에는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페르시아와 인도를 정복할 것입니다”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다 정복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그 때쯤이면 나도 죽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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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는 왕위에 오른 후 8년 만에 마게도니아로부터 인도에 이르는 2만 리나 되는 광활한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그런 그는 원정 중에 열병에 걸려서 주전 323년 6월 13일, 바빌론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이는 겨우 33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얻거나 얻게 하기 위한 목적과 천국을 목표로 삼는 대신에, 별 볼 일 없는 목적의식과 썩어 없어질 목표 의식이나, 수백만, 수천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을 죽이고, 겁탈하고 파괴하는 목적의식과 목표 의식을 가지고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헛수고를 했고, 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최우선적인 영생을 얻기 위한 목적의식과 주님이 정해 주신 푯대라는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주님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조건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님 곁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는 처음 제자로 부름 받았을 때에, 메시아로 믿고 생업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고 주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메시아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알고, 확신하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결단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확고한 목적의식과 투철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 목적 성취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해서 죄악이 아닌 한, 불행과 재앙을 비롯한 인생의 모든 것을 도구로 활용하고 있습니까? 또, 성취를 위한 지혜와 능력과 재료와 사람을 준비해 가고 있습니까? 어쩌면 마음이나 생활이 주 예수님을 떠나 있고, 일이나 생업이나 사업이 주 예수님을 떠나 있는 것이나 아닙니까? 주 예수님을 떠난 교인 가정도 있고, 주 예수님을 떠난 교인 정치가도 있고, 주님을 떠난 교인 사업가도 있습니다.
여기저기 썩었고, 기둥이 기울었고, 지붕이 새고, 구들장이 군데군데 내려앉은 집이 있습니다. 주인이 집을 뜯어고칠 목적으로 손을 댔습니다. 확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을 벌였습니다. 기둥을 드러냈는데 새 기둥이 없고, 새는 지붕 위에 올라갔는데 덮을 기와가 없고, 구들장을 다 들어냈는데, 채울 구들장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썩은 문짝을 뜯어냈는데, 목수가 없습니다. 집이 고쳐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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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닙니까? 각 나라의 정권마다 교육 개혁이니 의료 개혁이니 언론 개혁이니 경제 개혁이니 정치 개혁이니 사법 개혁이니 하면서 사정의 칼을 들이대고, 내 사람으로 바꾸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데도 부작용만 엄청나고, 국민 부담만 크게 늘어나는 이유가 말입니다. 개혁이나 개선의 목적의식과 목표 의식을 가진 각 나라의 어느 정권이든 간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갖춰야 할 것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3. 맺음말
온갖 고난과 재앙과 불행까지도 활용할 확고한 목적의식과 투철한 목표 의식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필요한 제반 조건들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주 하나님께서는 마음먹고 기도한다고 해서, 하늘에서 돈벼락 떨어뜨리듯이 복을 주지 않습니다. 목적과 목표 달성에 필요한 신앙 인격과 지혜와 능력과 조건들을 갖추게 하시고, 적절한 때에 성취의 복을 주십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적절한 때에 갖추는 길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하여 나날이 하나님의 영이시자 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해지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