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수탉

이주익
  • 1729
  • 2021-02-11 18:44:08
술 취한 수탉

우리 모두가 사모(思慕)하고 존경하는 헨리 게어하트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1858-1902) 목사님의 설교 한 편(요지)을 소개해 드리며, 감리교회 힘 있는 분들께 고언(苦言) 합니다.

- 용서와 화해 -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소 할 자와 함께 법관(法官)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官屬)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獄)에 가둘까 염려하라.”(눅 12:57-58)

“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거짓말만 하고 서로 다투기만 하고, 서로 믿는 사람은 어찌 이리도 없습니까?”라고 헤레이스 뉴톤 알렌(Herace Newton, 1858-1932) 공사(公使)에게 물었더니, 알렌 공사가 말했습니다.

유식(有識)한 하인에게 “칵테일”(cocktail=cock/수탉-tail/꼬리) 이라고 영어로 써주며 “쓰리 프리스”하고 셋을 손으로 표시하며 부탁했습니다. 사전(事典)을 한참 뒤진 후 이 유식한 하인은 뜰로 나가 성난 수탉(장 닭)과 한바탕 대 소란을 벌이더니 가까스로 닭 꼬리(털) 셋을 뽑아 대령(待令)했습니다.(알렌 저, Things Korean. 1908, 110쪽)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조선(朝鮮)에는 세 가지 신분의 사람들이 그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양반(兩班)과 중인(中人)과 천민(賤民)입니다. 신분이라는 벽을 사이에 두고 이들 간은 전혀 소통(疏通)이 없습니다.

소통이 있다면 지배하는 양반이 중인을 고발(告發)해 재산을 착취할 경우, 양반이 천민(종)이 짐승같이 일하지 않을 경우 잡아 고발하여 곤장(棍杖)을 맞게 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중인이 소작료(小作料)를 많이 받기 위하여 천민을 고발해 착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고발은 가진 자, 권세자 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권세 있는 자는 그들이 가진 권위만 믿기 때문에 아랫사람과 타협하거나 화해하거나, 용서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원하는 사람은 무조건하고 두 손을 싹싹 빌며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천민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백정(白丁), 노비(奴婢)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고발(告發)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불의한 일을 한 탐관오리(貪官汚吏)입니다. 이 일로 종래는 감옥(監獄)에 갈 자들입니다. 문제는 고발하는 그들과 함께 힘없는 종들도 함께 감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선량한 종이나 천한 백정들의 편에서 언젠가는 그들이 이 땅에서 용서와 화해를 주도하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감리회(Methodist/규칙 쟁이, 삶의 방법을 아는 이, 격식(格式)을 중요시하는 사람)가 이 땅에서 하루바삐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끝으로, 본문의 앞 성구를 씁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눅 12:54-56)

조선의 양반들은 노략질한 재물로 기생과 어울려 술을 먹고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그들 다수는 항상 취해 있고 어떤 고을의 수령은 취중(醉中)에 판관(判官)이 되어 송사(訟事)를 처리하기도 합니다. 취중이 아니고서야 어찌 사람이 무고(誣告)한 사람을 못살게 하고, 다투기를 멈추지 않아 세상을 이토록 시끄럽게 하겠습니까?(제 정신이 아니고는,...)
- 이상이 설교의 요지입니다.

감히, 고언(苦言) 합니다.

고소, 고발은 감리교인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세 가진 자가 취중에나 하는 일입니다. 고소, 고발자는 높은 자리, 즉 고소, 고발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우리 모두와 함께 낮은 자의 위치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창립자 아펜젤러 목사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가슴속에 담고 실천하여야 옳습니다.

“크고자 하려거든 남을 섬기라.” 아멘.

서로 고소(告訴)할 경우 이들 간에 화해나 용서, 평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정(法廷)에 잘 못 드나들다간 물 위의 거품같이 됩니다. 너무 늦으면 황사(黃沙)를 만날 것입니다.

최대명절인 설 연휴입니다.

설(신일/愼日)은, 겨울 추위 속에서도 멀리 떨어진 가족과 친지, 향우가 만나 차례와 세배로 화합하고 따뜻한 정을 나누고 덕담을 건네고 떡국을 함께하는 또 하나의 새해 시작으로 ‘가족의 힘’을 다짐하는 원단(元旦)입니다.

그러나 올해 명절(名節)은 코로나19 충격이 장기화하면서 서럽고 유약한 이웃이 너무도 많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의 영향에 발생한 고용 대참사는 일자리 100만 개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설은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우리 모두 설 명절이 더 쓸쓸하고 힘든 성도와 이웃들을 생각하는, 신중(愼重)한 명절 연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2021년 2월 11일


서대문교회 이주익 목사

이전 신동수 2021-02-11 나세남 프로젝트를 보며
다음 함창석 2021-02-11 만두 값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