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신학도 수련에서 가장 존경하는 교수님에 관한 귀한 글

장운양
  • 1676
  • 2021-02-18 20:31:09
이주헌 목사님의 귀하고 반갑고 흐믓한 글을 접하고 함께 나누고자 감리교소식란에 옮겨 봅니다 .
이주헌 목사님 참 고맙습니다. 조만간 제가 따스한 밥 한끼 대접하겠습니다. 목원 이호운 목사님 이원규 교수님으로 이어지는 기감의 신학교육의 역사는 정말 소중한 보배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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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야곱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면 어김없이 얍복 강가에서의 야곱의 심정을 떠올리게 되었다. 절박함과 두려움 속에서 그는 홀로 얍복 강가에 있었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 한 사람이 나타났고, 야곱은 그와 씨름한다. 야곱은 그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고 축복해 달라고 떼를 쓴다. 그 끈질김에 그 사람은 항복하고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며 사라진다.

이 말씀을 보면서 예전 생각이 났다.

군(軍)에서 12월초 전역한 후에 내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경험은 IMF로 부도난 우리집이었다. 그 때부터 어렵고 힘든 상황이 많이 왔었다. 특히 신학교 2학년에 복학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갈림길에 섰다.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복학할 것이냐?

친척 어르신 한 분은 부모를 도와야지 어떻게 공부를 계속하려고 하느냐는 핀잔을 주셨지만, 나는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심하였다. 어차피 내가 도와드리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2학년 1학기는 문제가 없었다. 군대 가기 전에 미리 등록를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두 번째 학기부터는 참 어렵고 힘든 일들이 다가왔다. 가난한 신학생의 주머니는 금새 빈털터리가 되었고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절박함을 아셨을까? 하나님은 모교회를 통해서 100만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금액을 마련 할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가난한 신학생들을 위해 분활납부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학기 중간고사까지 시간을 끌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마련이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풀뿌리라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마냥 흘러가서 분할납부 시한의 마지막 날까지 갔다.

130여만원 중에 100만원은 있는데 나머지가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풀뿌리 잡는 심정으로 그 당시 교무처장 교수님께 편지 한 통을 썼다. '꼭 학년말에 갚을테니 받아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곤란한 말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어떤 수단과 방법도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100만원을 들고 교무처에 갔다. 교무처장 교수님이 안 계셔서 교무실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꼭 학기 끝날 때까지 내겠다고 하며, 납부를 시도했다. 딱했는지 받아주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연락이 왔다. 교무처인데 교무처장 이원규 교수님이 찾으신다는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던 교수님이기에 낯설었다. 그리고 "행정적으로 안되네!" 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불안감으로 뛰는 가슴을 부여 잡고 교수실로 향했다. 교수님을 만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우선 백만원을 받아 주시면 학년말까지 나머지 금액을 내겠습니다.”

그 때였다. 교수님은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시더니, "모자란 등록금을 이것으로 내게" 하며 부족한 금액을 주셨다. 순간 얼어붙어 있었던 나는 어벙벙한 상태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며 받았다. 그 날 나는, 분할납부 마지막 날에 등록금을 다 낼 수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빌려주셨다는 생각을 했던 나는 어떻게든 갚겠다고 생각하고 얼마 뒤에 십만원을 들고 교무처에 갔다. 교수님께 감사하다고, 나머지는 다음 달에 갚겠다는 편지를 쓰고 돈을 맡겼다. 그날 오후 다시 전화가 왔다.

"이주헌 군, 걱정말게. 나머지는 이주헌 군 장학금으로 생각하게"

그 후로도 이원규 교수님과 친해질 시간은 없었기에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남았지만 내 마음의 한 구석에는 잊지 못할 은혜로 남아 있다.

절박함 속에서 만난 이원규 교수님은 마치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만난 한 사내와 같은 여운으로 내게 남아서 내 삶의 어떤 전환점처럼 작용하고 있다.

출처 : 웨슬리안타임즈(http://www.kmc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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