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 표명이나 감리회 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 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은 바로 삭제됩니다.
감리교회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임재학
- 2596
- 2021-02-21 04:29:49
「다윗과 밧세바」 1636-1637, 유화, 265.4×209.5 오하이오 콜롬버스미술관
# 1.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다윗과 밧세바」 성화입니다.
'다윗과 밧세바'에 대한 성화는 서양 미술의 단골 주제입니다.
수 세기동안 수 많은 화가들에 의해서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젠탈레스키의 그림을 올리는 이유가 있고 기독교미술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짐작했을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 주제를 그린 남성화가들의 수 많은 그림을 보면, 가부장적인 시각으로, 심지어 관음증적 시각으로 그린 작품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리회 게시판에 그림을 올리기조차 거북할 정도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 여성 화가이며, 주로 역사화와 성화를 그렸습니다.
당시 여성화가에겐 초상화나
꽃 정물화가 적합한 주제라고 여겨졌고 실제로 그 한정된 주제로 작품을 주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녀의 일생을, 특히 끔찍했던 성폭력의 경험을 이해해야 비로소 작품이 말을 걸어오고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가장 믿었던 스승 '타시'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고
그 이후에 재판과정에서 벌어졌던 2차 가해 경험은 그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강간이라는 폭력 행위를 통해서, 또 이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입증하기 위한 불합리한 재판과정을 통해서 또한번 가중됐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그 끔찍했던 기억과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 2.
성경 사무엘하 12장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사건'은 우리가 다 아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은 다윗 가문을 통해서
메시야를 탄생케 하려는
섭리를 가지셨지만
다윗의 범죄로 다 망가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십니다.
나단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다윗 왕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신탁을 '암양 새끼 한마리 비유'로 전하며 다윗의 잘못을 강하게 책망합니다.
그 때 했던 나던 선지자의 말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 입니다.
다윗의 범죄는 단순히 한 개인의 범죄와 문제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밧세바를 표현할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 기록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에도 다른 여인처럼 이름이 나오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에게서"(마1:6) 로 표기합니다.
이는 성폭력은 단순히 두 남여에게만 국한되는 은밀한 사건과 폭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의 불의한 범죄를 덮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공범으로 만들고 계속해서 2차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8장에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8:6, 8:14)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싸움에서 승리한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권한을 위임 받았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삼하8:15)
그리고 군사령관과 사관, 제사장과 서기관과 대신을 차례대로 임명합니다(삼하8:16-18)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군사령관이 된 요압 장군을 왕 개인의 사악한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적극적 공범자로 만듭니다.(삼하11:17)
또 무엇보다 충성되고 신실한 장수 우리아를 억울하게 죽게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무너뜨린 일입니다.
충성된 장수 우리아를 죽게 한 다윗의 잘못된 모습과 심리는 기독교 미술화가로 불리우는 렘브란트 반 레인의 「다윗과 우리아」란 작품에 잘 표현돼 있습니다.
(*첨부파일그림, 유화 127×117 1665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미술관)
짙은 어둠 가운데 있는 간음한 다윗의 눈은 인간의 욕정과 자만, 죄의식이 소용돌이 치고 있어 초점을 잃어 버린 초라한 모습이지만,
다윗의 각본대로 죽음이란 어둠의 길로 나서는 우리아의 모습은 밝은 핏빛 옷으로 표현하며,
뒤에서 바라보며 신음하고 근심하는 노인의 모습(렘브란트 자신)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의 간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약속을 파기한 범죄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11:27)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삼하12:9)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삼하12:14)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하고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은 일은 단순히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의 관계만의 문제만도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문제입니다.
사무엘서는 기름부음 받은 다윗의 간음행위는 개인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주신 권위(기름부은 왕)를 이용해서 벌인 전형적인 잘못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며, 살인이라고 고발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여호와를 업신여긴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일은 영호와의 원수에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일이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 3.
현재 서울남연회 전준구 목사 사건이 총회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서울남연회 재판에 이어서 총회재판위원회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그저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뿐입니다.
이번 판결은 감리교회가 전준구 목사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재판입니다.
감리교회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회복하고, 교회의 '공교회성'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에 총회재판에서도 이 문제를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하나님 교회의 도덕기준과 치리가
일반사회보다도 못한 수준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4월에 예정된 서울시와 부산시의 시장선거운동을 보면서
한국 사회 기준선이 높아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특히 연약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대해선 단호합니다.
아무리 수백억의 경제적 비용과 행정력의 낭비가 있어도,
가해자가 해당부서의 최고 수장일지라도 곧바로 '아웃'입니다.
왜냐하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는 이런 단호한 조치가 당장은 손해인 것 같고 힘든 일이지만,
길게 보자면 약자(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이런 공정하고 엄한 조치들이 사회 발전으로 연결되며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사회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성폭력 문제는 근절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요즘 체육계는 예전 같으면 그냥 덮어버릴 문제, 십대 때 있었던 학교폭력 문제까지 이슈화되고 있고 치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국사회 일반에서 감리교회의 재판이, 더구나 감리교회 최고 재판인 총회재판위가 만약에 미흡하고 편파적인 재판 결과를 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유투브나 포탈싸이트에서 이 사건을 검색해 보면 이미 수십만 명이 조회하였고, 지금도 매일 조회해서 보고 있습니다.
또 공중파(PD수첩)에서 방영돼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을 우리끼리 봐주고 가린다고 해결이 될까요?
그저 자기들끼리 서로서로 덮어주고 은폐한 면죄부 재판으로 보겠지요.
이런 명백한 성폭력 범과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감리교회가 앞으로 사회적 정의나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아무리 우리끼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가려지나요?
요즘 청년들이 한국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각 신학교는 교파와 상관없이 미달사태를 맞고 있습니다.
여러 원인과 진단이 있겠지만
교회 내에 만연된 성폭력 문제도 한 이유일 것입니다.
교회 봉사와 구성원의 절반이 넘는 사랑스런 딸과 누이들, 아내.
이런 평범한 여인들이
안심하고 다닐수 있는 교회,
목회자의 성폭력이 없는 교회,
억울한 여인들의 하소연과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감리교회는 비단 저만의 바램인가요?
이번 재판에서도 제대로 치리하지 못하면, 감리교회의 시간은 지나가고
사회(심판)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부디 감리교회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소한의 자정 기회인 이번 총회재판마저 유명무실하게 끝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총회재판위원들이 이번 재판의 역사적인 의미를 잘알고 하나님 편에 서서 올바른 판단과 공의로운 판결을 해주시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설령 감리교 재판에서 불기소 됐다고 끝난 것도 아니고, 더더구나 성폭력 범과(사실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는 지난번 서울남연회 재판결과는 저들이 옳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교회가 침묵하고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외쳐야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범과를 저지른 사람입니다"
만약 감리교회 재판위와 어른들이 잠잠하다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잠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겐 인간의 재판만이 아닌 하나님의 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저는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교회의 주인되시는 우리 주님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도 감리교회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다시 높은데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가장 원점에서 시작하는 옛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You are the Man!)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왕의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감리교회에게, 또 나 자신에게도 책망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주저앉거나
포기한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수천년 전 구약시대만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 계속돼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되겠지만
지금 감리교회를 사랑하며, 공교회성의 회복을 위해서 회개하며 기도하는 선한 이웃들이 모두 지치지 말고 힘내시길
서로를 위해 다시금 기도합니다.
사순절의 평화와 기쁨, 부활의 소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