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 복음을 못 들은 사람들의 구원

최세창
  • 1415
  • 2021-03-10 20:17:33
(설교 동영상 : 유튜브)

(갈라디아서 3:6-9, 이사야 43:11)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신학대학 시절에, ‘예수 오시기 전의 구원’에 대해 교수님께 질문했는데, 국내외의 신학에서 정립되지 않았고, 종교철학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라고 답변하셨습니다. 목회하는 중에도 이 주제로 진급 논문을 썼는데, 심사하시는 목사님이 문제를 깊이 빠뜨려 놓고 제대로 건져 올리지 못했다고 평하셨습니다. 계속 이 문제로 씨름을 하던 중에, 1981년에 출간한 갈라디아서를 집필하다가 3:6 이하를 주석하면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신약 교수님과 구약 교수님께 내용을 말씀드렸는데 인정하셔서, 교계 신문사에 연락했더니 좋아하면서 해당 논문을 실어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설교 동영상을 유튜브에 등록했습니다.

2.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인한 의인 구원의 복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구원 방도에 대해 이방인은 양심 행위이고, 유대인은 속죄 제사를 비롯한 율법 행위라는 주장들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4 이하에는,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속죄 제물의 피는 속죄의 효력이 없는 동물의 피이지, 예비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성막은 성막이고, 성전은 성전이지, 예비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신학자들도 있습니다. 다 틀린 주장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 같은 국가들에서는 남자나 여자가 여러 배우자와 사는 것은 비양심적인 행위이고, 불법 행위이고, 부도덕한 행위이지만, 일부다처나 일처다부인 종족과 국가들에서는 양심 행위이고, 합법 행위이고, 도덕 행위이고, 종교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대와 장소, 해당 전문가와 권력자에 따라서 양심과 도덕과 법의 선과 악, 옳음과 그름, 정의와 불의가 뒤바뀌기 때문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둘째,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 행위나 종교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주장은 원죄의 교리와 모순되고, 전적 타락의 교리와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에는,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고;로마서 14:23 후반에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23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셋째,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 행위나 종교 행위로 구원 곧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천국의 영생을 얻는다면, 주 예수님이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 곧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안 하셨을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간 세상에는 구원자도 없고, 구원 방도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구원자나 구원 방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이 오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구원 방도는 믿음입니다.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 행위나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율법서의 한 책인 이사야 1:18을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죄를 해결하고 오라는 것이 아니라, 죄 있는 그대로 오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3:11에는,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자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님에 대해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약인 율법과 헬라의 종교와 사상에 정통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아브라함을 들어 복음의 진리를 증언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유대교인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선행이었고, 선행으로 의 곧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창세기 15:6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논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곧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받은 할례는, 구원받은 방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은 표증입니다.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것은 할례를 받기 전이고, 율법이 있기 전 430년입니다.
아브라함이 울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 행위나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곧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 시대인 복음의 시대 이전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유대교 신학자들은, 아브라함이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때보다 430년 전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던 율법을 행함으로 의 곧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틀리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거역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던 아버지 데라와 같이 살던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기근을 만났을 때에도 계속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했지만, 자기 뜻대로 양식이 풍부한 애굽을 의지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게다가 아내 사라를 애굽인들이 데려가게 하는 잘못도 범했습니다. 끌려 간 아내 사라로 인해 아브라함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막아 주셨기에 망정이지 더 큰 고통을 당할 뻔했습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따르지 아니하고, 아내의 말을 따라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는 죄를 범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러므로 율법 행위로 보나, 양심 행위로 보나, 윤리․도덕 행위로 보나, 어떤 종교 행위로 보나 아브라함이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틀린 주장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곧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찬란한 빛을 발한 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각을 떠서 태우는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행위입니다. 창세기 22:12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구원받을 만한 믿음에는 행위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술김에 나오는 행위나, 홧김에 나오는 행위나, 원한에서 나오는 행위나, 물욕이든 권세욕이든 명예욕이든 간에 탐욕에서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가 있습니다. 이성이나 감정이나 의지를 좇아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좇아 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행위’입니다. 야고보서 2:22을 보면,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행위는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는 완전무결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동기와 목적이 되는 행위입니다. 의 곧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에는, 믿음의 행위인 사랑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아브라함에게 의 곧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7절을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믿으면, 아브라함이 얻은 의 곧 구원의 복을 얻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곧 구원을 받게 된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혈통상의 후사로 오셔서 속죄 제물이 되실 주 예수님이십니다. 이 주 예수님은 구원자 하나님의 성육이십니다. 루터(M. Luther)는 “모든 과거의 약속은 오신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족장들의 믿음도 그분 안에 포함되므로, 족장들의 믿음은 우리의 것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족장들의 믿음은 약속대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데 비해, 우리의 믿음은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약속의 의미는 약속의 성립 이후부터 약속의 성취 이전까지에 있는 것입니다. 가게 주인과 엄마가 초하룻날, 말일에 갚기로 하는 외상 거래를 약속하면, 그 기간에는 돈을 안 내도 돈을 낸 것과 똑같은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도, 약속의 의미도 모르는 아이도, 가게에 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면 준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가면, 돈을 안 내도 월말의 결제 이전까지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님을 근거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후의 믿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구원 효력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아브라함은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 도덕 행위나 종교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곧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 효력에 근거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설사 주 예수님을 모르더라도,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처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이 일상생활과 복음의 일과 복음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이전 유은식 2021-03-10 제34회 총회 감독회의, 한국감리교회 개혁의 싹 틔워!
다음 장병선 2021-03-10 배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