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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신학과 트라우마
관리자
- 1281
- 2021-03-08 20:28:54
첫사랑은 감성적인 그리스도인의 완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신학(지)적인 첫사랑 입니다.
성령은 첫사랑을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확증이 됩니다.
그러므로 첫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성령은 하나님 안에서 일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잃고 성령을 잃으니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사후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화' 또는 '영화'와 혼돈을 하기도 합니다.
'그게 뭔 소리냐! 누가 그런 소리 하데 난 그런 얘기 처음 듣는데... 어디서 개똥 철학같은 얘기를 갖고와서 주접떨고 있어.....'라고 하실 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민관기 목사님은 혹 제 얘기를 이해 하시려나? 아마 이해 못하실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어쨌든 제 얘기는 개똥 철학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고 싶다면 '개똥 신학'이라 하고 싶고 더 나아가 개자는 빼고 '똥신학'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ㅎㅎ
과거에도 어찌 하다 똥파리 얘기가 나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내 신학은 '똥신학'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그 때 부터 저는 똥이었던가 봅니다. 그런 것을 나 혼자만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니 너무 오래 걸렸는가 싶군요. 그래도 좋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는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하였다는 데 언제 주님이 부르실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고 싶군요.
그러나 솔직히 아직은 죽고 싶진 않습니다. 돌봐야 할 애들도 많고 해서 ㅎㅎㅎ
물론 주님이 데려가시면 어쩔 수 없지만 사나 죽으나 주님의 은혜라 믿고 살려 합니다.
제 신학은 '똥신학' 입니다.
그러니 멋진(입) 신학을 하신 분들은 이 '똥신학'에 대하여 병적인 거부감을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요. 입으로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과 뒤로 싸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을 비교해보면 아마 싸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일찍 죽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뭐든지 입으로 잘 먹고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잘 싸고 뀌는 것이야 말로 진짜 하나님의 복이 됩니다. 먹는 것과 싸는 것, 이것은 입장의 차이 이고 선입견과 편견에 의해 갖게 되는 차별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알지 못하며 듣긴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는 이가 복된 자요,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은 자가 진정 복된 자인 것입니다.
진실로 신실한 믿음의 사람은 똥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법입니다. 이것이 제 '똥신학'의 출발입니다. ㅎㅎㅎ
벌써 또 어떤 분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로 그게 뭔 신학이냐고 무시하시고 비웃으시며 또 나무라실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저와 글로 논쟁을 해도 괜찮고, 대화를 해도 괜찮고, 싸움을 해도 괜찮으니 언제든지 글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무조건 적으로 무시와 무조건적인 주입과 무조건적인 조롱과 비하는 사양을 하고 싶습니다.
워낙 그런 것들에 데인 것이 많다 보니 그런 것은 아직 받아줄 실력이 되지 않습니다. 다음 제가 그런 실력이 된다면 무조건적인 무시와 비하와 주입과 조롱도 받아 들이겠습니다.
저는 감게를 통해 트라우마가 갖게 되었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일종의 자기 보호입니다. 이것은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과 어떠한 조건을 만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자기보호 입니다. 그래서 겁을 먹기도 하고, 그래도 떨리기도 하고, 그래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하며, 가끔은 누군가 다가와 헤칠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갖게 되는 자기보호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인 공포증과 같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는데......대인 공포증과 다른 것은 무조건적인 대인 기피가 아니라 상대적인 대인 기피입니다.
감게에 글을 쓰면서 험한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목사가 맞나... 정말 장로가 맞나.... 목사라면 정말 장로라면 어떻게 저럴 수 있지....'하는 생각이 있었으며 '에이 말이 그런 거지 설마 그러겠어?'라고 생각을 하며 애서 무시하려 했는데.... 댓글을 통해서 인신공격을 하고, 협박을 하고, 겁박을 하며, 반드시 너를 찾아가 다리 몽뎅이를 부러트리겠다는 말이 단순히 말로만 끝날 것이 아니란 사실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전화가 옵니다.
반갑게 받습니다. 그러나 전화의 내용은 겁박이며 협박이며 욕설입니다.
누군가 찾아 옵니다.
반갑게 맞이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호구조사를 합니다. 그리곤 별 말 없이 그냥 인사 차 왔다며 돌아갑니다. '별 시덥잖은 사람이 다 있네...' 하였지만 곧 등꼴이 오싹해 집니다.
가끔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전화를 걸어 가족의 안부를 묻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또 있었습니다. 나를 고소한 분이 그러했고, 나를 정직시키고, 휴직 시킨 이가 그러했으며, 나를 개처럼 대한 이도 그러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호의가 때론 호의로 느껴지지 않고 은근한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아이고 노목사님, 자녀들도 많다던데... 몇이라 하셨지요? 아 그래요 그렇게나 많이... 참 훌륭하시네... 힘드시겠네요. 그러면 이젠 자녀들을 위해서도 그리 하지 마셔야지요. 자녀를 생각해서라도 이젠 다 내려 놓으셔야지요. 다시 목회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고 노목사, 너 애들도 많다며.. 몇 이라고... 하...그렇구만... 그건 됐고 니 애들 많은 거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고 다만 애들이 그리 많다면 이젠 애들 생각을 해야지... 그러다 애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쩔건데... 너 참 겁도 없구나... 너야 그렇지만 너의 그 경거망동으로 인해 니 애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되잖아! 애들 자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생각을 해봐.... 아직 내가 거기까지 손을 안쓰니까... 니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 같은데.... 너 그러다 큰 코 다친다..... 너 그러다 진짜 후회하게 될거야.... 그런 후회 하지 않도록 정신 좀 차려... 애처럼 굴지 말고....언제까지 철부지 처럼 그럴거야!'라고 해석되어 들려집니다.
O 전관리자가 그러했고, S 전감리사가 그러했고, 후임으로 온 4가지 없는 후배 놈도 그러했고, 새로운 관리자가 된 C 관리자도 그러했고.... Y 관리감독 직무대행도 그러했습니다.
K 장로는 전화를 걸어 만삭이던 아내에게도 겁박적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4가지 없는 후배 목사는 예배시간 설교를 하기 앞서 성도들 앞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협박을 하였습니다.
"노 목사가 지금이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고소하여 감옥에 집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연회에서도 그런 과정 중에 있으니 정신 차리고 지금이라도 빨리 회개하시라 하십시요. 내가 지금 참고 있으니 노목사와 그 가족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나올 생각을 마십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나오려 한다면 바로 고소할테니... 노목사에게 그리 전하십시요."
예배를 마치자 마자 아이들은 울면서 교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로서는 마음이 찢어지고 또 찢어졌습니다.
"해도 해도 참 너무하는 구나... 나 한테는 그럴 수 있다고 해, 그런데 왜 아내와 아이들에게 까지 그렇게 해야 하는 거지... 그리해야만 속이 시원했냐....정말 양아치가 따로 없음이네..."
목사인 내 입에서 목사를 향해 양아치란 말이 너무도 쉽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이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 불에 던져질 죄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니 주님, 제가 너무도 화가 나서 나도 몰래 그런 말이 나왔기로서니 그게 지옥 불에 들어갈 죄라 하시면 저 놈은 어쩝니까? 저 놈들은 대체 뭡니가? 내게 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 까지 못된 짓을 행한 저 넘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외치면 주님은 아무런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 침묵이 어느정도 지나고 나면 어렴풋한 작은 목소리로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였습니다.
"야 노목사, 너 내일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런데 뭐라고? 너무 하다고.... 니가 그렇게 미워하는 녀석들은 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넌 니가 할 일이나 잘해.... 그러다 너 정말 지옥 불에 간다.... 이번 한 번 만이다.... 더 이상의 용서는 없어... 그러니 조심해... 알았지... 명심해...."
나는 답답하였습니다.
'나보다 더 한 것들은 지금도 목사라 장로라 감리사라 관리자라 감독이라 저러는데.... 대체 내가 뭘 그리 잘 못을 했다고.... 내가 글을 쓴 것이 그리 잘 못 한 것일까? 정말 내가 잘 못한 일이라면 말씀이라도 속 시원히 들려주십시요. 내가 아주 나쁜 글을 썼음이라고....'
이런 답답함에 주님은 또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아무런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는 내게 '잘못이 아니니 괜찮아! 걱정하지마!'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내가 그렇게 반대하였던 사회법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이건 내가 아니라 했던 일인데.... 이렇게 나도 해야만 하나?'
그러면 작은 소리가 위로부터 들려 옵니다.
"잡아 먹으라. 내가 거룩하다 한 것을 속되다 하지 말아라."
목사들과 장로들이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장담을 할 순 없지만 사회법으로 찾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아치 같은 목사와 장로들은 아직도 권세와 힘을 자랑하고 또 가증스럽게 자신이 대단한 의인인척 글을 써대는 모습을 보면 속이 뒤틀립니다.
분명 사회법원을 통해 호선연은 재판을 할 수 없는 선교연회임을 판단 받았지만 교권을 갖고 있는 이들에 의해 거짓과 속임으로 사람들의 귀와 눈을 막습니다. 오늘 이평구 목사님의 글(ㅎ0000회 0목사, p목사, c목사를 형사 고소하며)이 전부라 할 순 없지만 그런 답답함이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라 생각을 합니다. 나도 이평구 목사님의 그 답답함에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법원을 통해 O 전관리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적인 글이 아니었음을 인정을 받았지만 나는 여전히 2년차 휴직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답답함이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갑갑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때론 울분이 속구치기도 하고 울컥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다 화병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 이미 화병에 걸려 있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목사가 화병에 걸리면 참 좋겠다... 너 아직 그것 밖에 안돼.... 그러니 니 문제가 해결되겠어? 하나님이 너를 위해 움직이시겠냐고.... 먼저 니 자신을 다스려... 먼저 니가 온전해져야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움직이시지 않으실거야. 그리고 니 놈이 그들보다 낫다는 보장이 어디 있냐!'
그렇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내 신학은 '똥신학' 입니다.
그래서 내가 쓴 글과 댓글들은 궤변이고 개똥 철학이라 말하며 감게의 목사와 장로들이 회피합니다.
"그래 지금은 '똥신학'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중이라도 '태극 신학'(K-Theology)이 될 수 있을 지도 몰라!"
전 아직도 휴직 목사입니다.
전 아직도 '똥신학'을 갖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리고 전 사람들에게 똥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피하고 그래서 외면하고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누군 퀴어 축제에 가서 축도 한번 했다고 전국적인 스타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난 그 목사가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쌍해 보입니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사, 자신의 속을 시원하게 드러낼 수도 없는 목사, 사람들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목사,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 집중 조명을 받는 스타 목사가 되었으나 소수자들의 우상이 되어 쇼윈도우에 걸려있는 마네킹 같은 목사....
이 말이 그 목사를 비하하는 것처럼 들려질지도 모릅니다. 또 그 목사의 사정도 다 모르면서 그렇게 판단한다고 꼰대같은 목사라 핀잔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눈엔 그리 보입니다. 그래서 한 없이 불쌍해 보입니다.
'목사가 되어 우상이 되었구나! 살아도 살아 있지 못하게 될 것이고 죽어도 죽은 것이 되지 못할 것 같은데... 좀비 목사가 그의 진짜 꿈이었을까? 귀신 목사가 진짜 꿈이었을까? 분명 아니었을텐데... 세상의 풍조는 그를 가만 두려 하지 않는구나....'
저는 감게의 글을 쓰면서 사상 검증을 제대로 했습니다. 아니 제 모습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사상으로 말하면 '똥신학'이고, 모습으로 말하면 그냥 '똥'입니다.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목사들은 이 '똥'을 가장 싫어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똥'을 뿌려 주려 합니다.
제가 '똥물'을 급하게 뿌려줘야 할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