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을 떠나는 고슴도치 호저 나무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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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2 21:14:36
오늘도 노래 하나 같이 들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렵니다.


유사복음,
한 목사님의 글로 표현된 말입니다. 말 그대로라면 짝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조심해야 할 복음이란 의미를 담고 있음이라 생각을 합니다.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에 관한 내용은 진실로 유사복음에 해당할까요?
"제 도끼는 금도끼도 은도끼도 아닙니다. 제 도끼는 쇠로된 도끼 입니다."
나무꾼이 말한 이 말이 진짜 조심해야 할 유사복음일까요? 아니면 또 하나의 숨겨진 복음일까요?

어쩌면 이 이야기는 복음이 이 땅에 들어 오기 전 하나님께서 우리 선조들에게 감동을 주심으로 전해준 숨겨진 복음일 수도 있다 생각을 합니다.

과연 성경의 말씀은 이 전래 동화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교훈(의미)과 전혀 다름일까?
과연 이 전래 동화의 이야기는 성경의 말씀을 파괴하려 함이며 성경 말씀을 대체하려는 사탄의 궤술이며, 박격해야만 하는 이교도의 가르침이었을까요?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믿기 나름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진실을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무조건적으로 배격하기 위한 신앙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면 자칫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위를 하게 될 수도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 땅에 선지자를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으로 내려 오셨으며, 성령을 선물로 허락하시어 진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그 진실을 분별하게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목사는 이러한 일로 부름을 받은 사역자 입니다. 진실(하나님의 뜻)의 분별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성경 말씀을 통해 이해하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들어 신앙인들에게 올바른 복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할 사명이 있음인 것 입니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앵무새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성구 사전이나 신학 사전(서적)이 아니며, 방대한 양을 기록한 주석도 아닙니다.
설교자는 살아 있는 성구 사전이어야 하며, 신학 사전(서적)이야 하고, 더불어 살아있는 주석이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살아 있는 세상의 문화이자, 세상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구 사전은 이미 존재하니 다 외울 필요가 없습니다. 신학 또한 그러하며 주석도 그러하고 세상의 문화와 역사 와 인생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필요에 따라 찾아 보면 될 것이며,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 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언자이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이어야 하며, 설교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들려지는 모든 소리들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 입니다. 그 나머지는 필요에 의해 찾아보고 알아보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전래동화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면 비록 전래 동화라 할지라도 그 이야기 속에는 지금도 우리가 반드시 들어야 할 복음이 있음을 듣고 보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쫓아 설교자는 보이는 것을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복음이며 이 시대의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과연 누군가 내게 금도끼와 은도끼와 쇠도끼를 보여 주며 '무엇이 니것이냐?' 묻는다면 무엇이라 말을 해야 할까요? 과연 우리가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 가운데 어느 모습이실까요? 과연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된다면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하게 하실까요? 무엇이 유사복음이며 무엇이 참된 복음인지 우리는 진실로 구별할 수 있음일까요?

제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12명이 한 가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의 세태라면 엄청나게 많은 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남원교회를 스스로 나올 때, 제 가족은 11명이었습니다. 당시 막내였던 하울이가 100일도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6살이 되어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준 것이 고맙고 아무 탈 없이 돌봐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울이는 '하나님의 울림', '하나님께 울부짖다.'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울이의 별칭은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10번째 딸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딸이 이제 4살이 되어 장난꾸러기가 되었습니다. 튼튼하게 태어나 건강하게 자란 것에 감사하고 아내에겐 미안하기도 하며 고맙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

아리는 '알'을 의미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아리랑 함께 신실한 믿음의 가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아리의 별칭은 '생명'이며 '사랑'입니다.
저는 아이들 하나 하나에 의미를 담으려 했고 그 의미를 살려 별칭을 부여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홀로아리랑'이란 노래를 좋아 합니다.

1, 아벨, 별칭은 믿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아벨은? 믿음이예요. 믿음이 아벨은? 아빠, 엄마 아들이예요. 아빠, 엄마 아들은? 멋쟁이예요. 멋쟁이 아들은? 우리 집을 바르게 지켜줘요."
2, 하영, 별칭은 맑고 깨끗함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하영이는? 맑고 깨끗해요. 맑고 깨끗한 하영이는? 아빠, 엄마 딸이예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이 딸은? 우리 집을 맑고 깨끗하게 해요."
3. 소영, 별칭은 미소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소영이는? 미소예요, 미소짓는 소영이는? 아빠, 엄마 딸이예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 달은? 우리 집을 웃음 짓게 해요."
4. 기쁨, 별칭은 가득함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기쁨이는? 가득해요. 가득한 기쁨이는? 아빠 엄마 아들예요. 아빠 엄마 아들은? 멋쟁이예요. 멋쟁이 아들은? 우리 집을 가득하게 해요."
5. 사랑, 별칭은 든든함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사랑이는? 든든해요. 든든한 사랑이는? 아빠, 엄마 딸이예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 우리 딸은? 우리 집을 든든하게 해요."
6. 단비, 별칭은 달콤함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단비는? 달콤해요. 달콤한 단비는? 아빠, 엄마 딸이예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 딸은? 우리 집을 달콤하게 해요."
7. 이슬, 별칭은 반짝임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이슬이는? 반짝여요. 반짝이는 이슬이는? 아빠, 엄마 딸이에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 딸은? 우리 집을 반짝이게 해요."
8. 아침, 별칭은 상쾌함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을 합니다. "아침이는? 상쾌해요. 상쾌한 아침이는? 아빠 엄마 아들이예요. 아빠 엄마 아들은? 멋쟁이예요. 멋쟁이 아들은? 우리 집을 상쾌하게 해요."
9. 하울, 별칭은 감동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하게 하려 합니다. "하울이는? 감동이에요. 감동인 하울은? 아빠 엄마 아들이에요. 아빠, 엄마 아들은? 멋쟁이예요. 멋쟁이 아들은? 우리 집을 감동있게 해요."
10. 아리, 별칭은 생명 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답하게 하려 합니다. "아리는? 생명이예요. 생명인 아리는? 아빠 엄마 딸이에요. 아빠 엄마 딸은? 예쁜이예요. 예쁜 우리 딸은? 우리 집을 행복하게 해요."

아이들이 제가 담아준 의미대로 자라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리 될 줄 믿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벨이 올해 25살인데 아직도 중 2병을 갖고 있습니다. 얼굴에 온통 불만과 불평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아벨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 "나는 아빠처럼 그렇게 못살아... 아빠는 친구도 없이 그게 뭐야? 나 좀 그냥 내버려 둬!"라고 하였다니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기도 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주 혼내기도 합니다만 그게 잘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습니다.
잘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도 행하는 것이 아빠,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저와 아내를 향해 "아빠 엄마는 뭐야! 아무것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애들은 많이 나았어? 창피해 죽겠어. 이게 뭐야!"하고 원망의 소리를 하진 않을까 염려하기도 합니다.

막내 아리랑 우리 가족이 함께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려 한다면 비록 홀로라도 외롭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주님 안에서 '홀로 아리랑'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민관기 목사님과 장운양 전도사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며 가끔 감신 출신 목회자들이 위로의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그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협성 출신 목회자로는 도현종 목사님과 오세영 목사님이 자주 위로와 격려를 하여 주셨습니다. 그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안타깝게도 그 동안 제게 연락을 준 목원 동문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홀로 아리랑이었습니다. 최근 이현석 목사님이 친구가 되어 주셨으니 이젠 아무도 없음이 아니라 벌써 1명이나가 되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 분들과 모든 의견이 일치 되거나 뜻을 함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서로 안부를 묻고 의견을 나누기도 했으니 그 자체가 내게는 너무도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휴직 목사가 뭐라고.... 감게의 똥이 뭐라고... 모두 감게를 통해 알게 된 고마운 분들입니다.

최근 저에 대한 또 다른 별칭이 있다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감리회의 고슴도치'라 하였습니다. 왜 고슴도치냐 하니 '가시가 돋혀 도저히 품어줄 수 없는 목사'란 뜻이라 하였습니다. ㅎㅎㅎㅎ

감리회의 고슴도치라,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고슴도치는 고심이 돗친(많은) 동물 같습니다. 그래서 고심이 바짝 서면 그 어떤 동물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제가 어느덧 감리회의 똥에서 감리회의 고슴도치가 된 듯 합니다. 고슴도치는 건드리지 않으면 가시를 세우지 않는데 말입니다. ㅎㅎㅎㅎ

고슴도치 중 '호저'라는 동물이 있더군요.
엄청난 가시를 자랑하는 고슴도치인데... '내가 좋다.'란 의미를 갖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겸손도 한 '내가 좋다.' 그래서 '호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 했는데......
저도 아이들이 예쁨니다. 그래서 이름에 의미를 주고 세뇌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아빠, 엄마 아들, 딸이라고 말입니다. ㅎㅎㅎ 다 저를 위한 고단수의 세뇌교육 입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제 당분간 또 다시 제 도끼를 들고 산행을 하려 합니다.
제 도끼는 금도끼, 은도끼가 아닌 바로 제 가족 입니다.

요즘 제가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자 불안해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저 때문에 감게의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습니다. 최근 장*양 전도사의 글을 읽고 무슨 일이냐 깜작 놀래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하지 말라 하였지만, 제 아내는 반가와야 할 목사들의 전화나 방문을 극히 꺼려 합니다.

"아니 왜? 왜 온데? 뭐 때문에 그러는데... 뭐 갖고 또 그런데... 아니 맨날 전화해서 뭘 그리 염탐이라도 하려 한데, 우리가 진짜 걱정되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참 너무들 하시네..... 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을 빌미로 위협을 해서도 안됩니다.
'세상은 사랑을 볼모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 가족이 감게의 우물에 빠트려 잃어 버릴 뻔 하였던 제 쇠도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슴도치 호저 나무꾼-

이제 산행을 떠나며 노래 한 곡 더 들으려 합니다.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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