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황(정)금 같이 나오리라

관리자
  • 1214
  • 2021-03-10 00:34:11

*우선 위 노래를 클릭하신 후 글을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두 분의 목사님에게 간청의 글을 썼습니다.
어느 분이 내가 쓴 간청의 글은 나름 의미는 있겠으나 실현 가능성 0%라 하더군요.
좀만 인심 좀 써 주시지...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매몰차게 실현 가능성 0%라니.....

나는 실현 가능성 100%라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 것에는 제한적 조건이 있음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심이라면 실현 가능성 100%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과 타협을 하여 간청문의 실현 가능성을 10%로 봅니다.

벌써 오후 3시가 됐고 그 분들이 제 간청을 들어 줄 하등의 이유가 없음이라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이 오히려 화를 내실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 두분 가운데 진정한 목사님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실현 가능성은 적어도 30%로 훌쩍 올라갈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의 문제를 두고 제가 쓴 간청서를 본다면 저는 이미 100% 다 이루었다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게 울림이 된 감동을 쫓았고, 그 감동으로 간청서를 작성하여, 감게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게 온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울림이 진짜 성령의 감동이라면 이젠 실현 가능성 100%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선 단서의 조건에 부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게 왔다 했던 울림이 제 개인적인 감정의 굴곡뿐이었다면 실현 가능성은 1%도 안 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제 간청에 응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혹 어떤 분은 제가 던진 '똥'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좀 있지 않을까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두 분에게 똥을 던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던진 것은 제 자신이었으니깐요.

다시 읽어 보십시요.
어디 내가 똥을 던졌는지..... 오히려 글 끝에 제가 '나를 던짐'이란 의미로 노재신이라고 적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똥을 던지며 간청을 한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혹여나 그리 말씀들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분명 제 이름을 걸고 제 자신을 던지며 쓴 간청서이니 말입니다.

'니가 이전 글에 스스로 똥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 또한 똥을 던진 것이지... 뭐냐?' 할 분도 계실 것 같은데 다시 자세히 읽어 보십시요. '노재신 똥'이라 쓴 것이 아니라 '노재신 목사'라 썼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나는 목사로 글을 쓴 것이며 감리회 소속 목사의 신분으로 간청을 한 것입니다.

'에이 니가 그리 발뺌을 한다 해도 그 글의 당사자 분들이 모두 니가 똥을 던졌음이라 생각을 할텐데...'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으신 분이시라면 꼭 그 분들에게 똥이 아니라 목사 이름으로 글을 썼다는 사실을 말씀드려 주십시요. 그래야 제 글을 믿음 가운데 읽으시고 믿음으로 행하실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도와 주시는 분이 있다면 실현 가능성은 20%로 올라갈 수 있다 생각을 합니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하여도 하나의 글을 읽고 어떤 분은 똥을 던졌다 할 분이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목사가 신심을 담아 썼음이네 할 분도 계실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나는 후자처럼 이해하실 목사님, 장로님들이 감리회 안에 많아 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감리회가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떠 뭔 소리냐? 니 생각대로 되야 감리회가 바로 설 수 있음이라고? 어디 또 개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생각과 판단은 자유이나 이 말씀 만은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장운양 논객이 어느 댓글에서 쓴 내용인데 그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의 눈엔 목사의 글이 보일 것이고, 똥의 눈엔 똥으로만 보일 것이다."

두 분 중 진짜 목사님이 한 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광주 법원에서 벌레처럼 똥처럼 나를 대하신 그 분은 거의 가능성 5%도 안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다만 광주 까페에서 저를 목사로 대하시고 목사로 얘길 들어주신 그 분은 거의 가능성 90%라 생각을 합니다.
왜 90%냐? 그 분은 동생 장로를 설득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았으니 아깝지만 100%의 가능성을 드릴 수 없음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0%의 가능성을 좌우할 동생 장로님이 있으니 그 장로님의 경우라면 거의 1%의 가능성밖에 없음이라 생각을 합니다.

지난 번 글을 통해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분은 장로님이시만 목사에 대한 존경심 내지 경외감이 1%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분이 장로가 됐을 까요? 그것은 아마도 형님이신 목사님의 후광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 그 분 스스로 장로 다움의 신앙과 인품과 품위를 갖고 계신 분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대놓고 목사에게 화를 내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정말 그 장로님 스스로 장로다운 신앙과 인품과 품위를 갖고 계신 분이었다면 감독회장을 향하여 직무정지 가처분도 내지 않으셨겠지요.

어떻게 장로가 감히 감리회의 영적 지도자이신 감독회장을 향하여 소송을 걸 수 있단 말입니까?
진짜 장로라면 사람이 무서운게 아니라 하나님이 무섭고 두려워 그리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저 같이 똥신학을 하고 감게(감리회)의 똥이 된 저 같으면 그리 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이미 전*구 감독회장 시절 직무정지 가처분을 청하였던 전적이 있는 똥입니다.
그러니 그 장로님도 저와 같이 똥이라서 그리 하셨겠지요. 똥은 똥을 알아 보는 법입니다.

제가 그런 의미에서 똥 이신 장로님께 간청의 글을 쓰지 않고 형님이신 목사님께 간청의 글을 쓴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제 글을 읽으며 목사의 글로 읽으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뭐 모르죠. 워낙 거짓말 잘하고 외식적인 목사가 많으니 그 분도 실제는 똥이었을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제가 말한 똥신학을 이해하실 것인데....

진실로 제 똥신학을 이해하고 있는 똥이시라면 제가 지난 글에서 얘기한 똥신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첫사랑과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성령의 충만을 알고 계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또 희망이 생기네요.
진짜 똥이시라면 똥신학을 이해 할 뿐 아니라 똥신학을 통한 신실한 믿음으로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똥신학의 믿음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믿음입니다.
그 목사님이 그리고 더불어 동생이신 똥 장로님도 제 똥신학을 이해하시고 첫사랑을 회복하시길 바라며, 그 첫사랑의 회복을 통해 성령의 가르치심을 쫓아 행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믿으면 할 수 있다.
"앞으로 될 줄로 믿고 구하지 말고 이미 된 것으로 믿고 구하라."

이것이 제 똥신학의 구호입니다.

똥신학은 트라우마가 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가 없는 분은 똥 신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검은 색은 흰색의 뜻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또 그와 같이 흰색도 검은색의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흰색이고 그래서 검은색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면 회색이 될 뿐입니다.

'회색분자'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아주 고약한 이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감리회의 보수 복음주의자들과 사회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회색분자들의 활동이 엄청납니다.

금권선거, 금권선거는 절대 안된다 안되다 해도 그렇게 돈을 요구하고 돈을 주려 합니다.
'아니 내가 받고 싶다 한 적이 있나, 주니 받을 밖에... 주는 것을 받은 것 뿐인데 뭔 잘못이야... 주는 놈이 베알도 없고, 믿음도 없고, 목사도 아닌게지...'

말은 그럴싸 합니다.
그러나 사회법에선 이미 주는 자도 나쁘지만 받는 자도 나쁨이라 정의해 두었습니다.
'거긴 사회고 여긴 교회니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지...'
아닙니다.
장정의 선거 규정은 사회규정을 고스란히 따릅니다.
이미 감독회장을 두고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간다고 설왕설래 하였습니까?

어느 감독회장 후보는 돈을 열심히 쓰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니 누가 얼마를 요구했네, 누가 얼마면 당선이 될 수 있다 했네 하며... 별 오두방정 쑈를 부리더니 정작 법정에선 그 어떤 증거자료도 제출하지 않고 증거 자료들을 스스로 봉쇄하지 않았습니까? 에구 그런 목사가 목사라고... 그런 후보가 감독회장 해보겠다고... 생난리를 쳤으니 감리회가 이 모양 이 꼴이지 말입니다.

이철 감독회장을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을 걸어놓고 벌써 다음 감독회장 직무대행의 선출을 위해 큰 금액의 돈이 오간다는 소문이 나돕니다. 사실이 아니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아주 못되고 고약한 분들입니다. 이 긴박한 시점에 직무정지 가처분 판결이 나기도 전에 벌써 전리품을 나누려고 분주하다니 말입니다.
아주 감리회를 말아 먹으려 작정하신 분들 같으며, 아주 죽지 못해 안달이라도 나신 분들 같습니다.

'아이고 그래도 그 분에게 이렇게 공적인 글을 통해 그리 말해도 되겠어? 너무 지나친 인신공격이고 너무 강한 표현 아니야? 그 분의 자녀들도 이 게시판 글을 볼텐데.... 그러다 또 명예훼손이라 고소 당하는 거 아냐? 후배 논객들이 너무 강하게 글 쓰지 말고 롱런 하라 부탁에 부탁을 하더구만....'

에구야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그게 무서워 말을 못 했다면 저는 이미 명예훼손과 모욕 건으로 고소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는 무혐의라고 검사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리 메너 있게 행동을 하였다면 사람들이 더럽다고 회피하겠습니까? 이미 똥으로 더럽힌 옷은 세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버리던지 그냥 입고 다니던지... 입던 거 입는 게 차라리 편합니다. 누구처럼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며 우상처럼 칭송을 받는 좀비 목사, 귀신 목사는 되긴 싫습니다.

똥신학은 '회색분자들'을 위한 신학이 아닙니다.
똥신학은 하나의 색인 것 같지만 실상은 여러 색이 거듭남으로 하나의 색을 띤 것입니다.
다양한 색의 음식들이 어울려 소화의 과정을 거치고 하나의 색으로 이뤄진 것이 똥입니다.

입 신학은 색이 다양하고 화려하지만 그 색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되어 입까지 왔음인지 훤히 보입니다.
그래서 고상한 것 같고, 품위 있는 것 같고, 깊이가 있음인 것 같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그 색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더럽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 입니다.

그러니 기독교 사에 다양하고 많은 신학적인 흐름들이 있었지만 그 생명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신학의 색깔은 수시로 바꿔 나타 났습니다.
조금 있으면 동성애 신학도 나타날 것입니다. 이미 토착화 신학, 여성신학이란 분야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 여성신학이란 말은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할 수 있으나 그 반대 개념인 남성신학이 있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이미 그 표현 자체에 구별과 차별이 있음이며, 기존의 신학은 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니 이 시대엔 새로운 신학운동을 하자는 것이겠지만 결국 하나님을 여성화 시키고 예수님도 여성화 시키고 성령님도 여성화 시킬 것입니다.

성경엔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증거도 없고 여성이라는 증거도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성경엔 하나님 아버지란 표현이 있으며, 아들 예수란 표현도 있잖아.. 그러니 남성 우월적인 시선에서 성경이 씌여진 것은 분명해 보이는 데...'

성경을 눈으로만 읽으려 하니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강동으로 된 것이라 했으니, 하나님의 감동 즉 성령의 감동으로 읽어야 합니다. 눈으로만 성경을 읽으려 하니 성경이 왜곡되고 오해되고 온갖 세상의 잡설을 통해 해석하려 하고 철학과 이성적 사고로 이해하려 하니 성경이 성경이 아니라 유대인의 잡설을 모아둔 책으로 이해하려 함이지 않습니까?

아이러니 하게 기독교 신학은 스스로 성경의 권위를 끌어내려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는 파렴치한 지적 활동이 된지 오래입니다. "신학 너 대체 어디서 왔니?"
현대의 입 신학은 부모 없이 태어난 사생아 신학이거나, 부모를 버리는 폐륜아 신학 입니다.

비록 성경은 유대인에 의해 씌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유대인이 썼으니, 유대인의 눈으로, 유대인의 역사관으로, 유대인의 생각으로 읽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성경엔 아버지라 씌어 있지만 때론 어머니 때론 형, 동생, 누나, 언니 등등 다양한 감동으로 읽혀지는 것입니다.
성경엔 아들 예수라 씌어 있지만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의 자녀로 읽혀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읽혀지고, 선지자, 또는 선생, 또는 구원자, 때론 메시야로 읽혀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이러한 성령의 감동을 통해 세상에 전하려 함은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입니다. 즉 '임마누엘 하나님'을 고백함인 것입니다. 이것이 '똥신학'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똥신학은 모든 입의 신학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으로 먹고 소화시켜 뒤로 내보내 소생케 함입니다. 이것이 똥신학이 하는 일입니다. 똥신학은 세상의 모든 잡설과 종교의 가르침을 배척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을 통해 입으로 먹소 소화시켜 동일한 색으로 변화된 똥으로 배출하여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로 살려 하는 이들에게 유익을 주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선입견, 편견이 있습니다. '똥은 더럽다.'
그러나 우리의 몸에서 만들어 내는 똥 만큼 유용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의원에겐 약이 될 수도 있고, 농부에겐 아주 훌륭한 거름이 되기도 하며,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선 아주 귀한 향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똥신학은 이러한 선입견, 편견을 통해 배척을 받고 외면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퀘변에 있음이며, 똥을 보면 오히려 그 사람의 건강 상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똥의 색깔은 황금색 입니다. 일명 황금똥 입니다.
황금똥을 눈다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의 증거가 되고 황금똥은 모든 건강을 추구하는 이들의 이상과도 같습니다.

입으론 다양한 색깔을 갖고 있는 야채, 육류 등의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나 들어올 땐 제각각의 색이지만 나올 땐 한 가지 색으로 바뀝니다. 외식이나 가식이 없으며 속임이 없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사상과 철학과 생각과 뜻이 다 제각각이지만 성령의 은혜 가운데 하나의 색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제일은 황금색 입니다.

똥신학은 황금똥을 위한 영의 운동을 의미 합니다.
똥신학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황금똥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각 양 각 색의 색깔을 갖고 각 종 트라우마의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색인 황금똥(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려 함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황(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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