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0회 아. 둘째 삽경인 힘센 천사와 작은 책Ⓑ(10:5-11)

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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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08 03:51:08
그 힘센 천사의 행동에 대해, 요한은 【5】[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라고 하였다.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는 다니엘 12:7의 가브리엘 천사장의 모습과 유사하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오른손을 드는 것은 맹세 또는 서약을 의미하였다(창 14:22, 신 32:40, 단 12:7). 여기서도 힘센 천사가 맹세하는 것을 의미한다.①
그 힘센 천사의 맹세에 대해, 요한은 【6】[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다.
[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으로 성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유일한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이다(R. H. Mounce).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종말에 구속과 심판의 역사를 행하실 능력을 소유하신 분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J. F. Walvoord, G. R. Beasley-Murray, R. H. Mounce).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그 천사가 저렇게 하나님의 만물 창조의 업적을 지적한 이유는, 그의 대심판이 그 지으신 만물에 미치지 않음이 없을 것을 암시하려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그 힘센 천사는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리켜, [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맹세하였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니]의 원문(χρόνος οὐκέτι ἔσται)을 직역하면 ‘시간이 더 없으리라’이다. 에브라드(Ebrard)는 “회개하게 정한 시간은 더 없으리라.”②로 의역했고, 플루머(A. Plummer)는 “(1)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2) 일곱째 나팔 소리 아래 전개될 마지막 심판의 고통에 있어서 더 이상의 지연이 없다는 의미에서 시간이 없을 것이다.”라고 의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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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A. Barnes, G. R. Beasley-Murray, G. E. Ladd, J. F. Walvoord, J. M. Ford, W. Hendriksen, A. Johnson, P. E. Houghes, 黑崎幸吉, 이상근, 김철손, 요한계시록.
2)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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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배경이 되는 다니엘 12:7에는 대환난의 중간기에 한 때 두 때 반 때의 여유가 있고, 그때에 적그리스도가 성도의 권세를 다 깨뜨리면 모든 일이 다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본서에도 순교자들이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호소했을 때에 아직 잠시 동안 쉬라는 권면을 받았다(6:10-11).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종말에 이르렀다. “불법자와 적그리스도가 횡포할 것이며(살후 2:3-8), 하나님과 사단이 마지막 대결을 할 것이다. 이때야말로 천사 미가엘(Michael)과 사단이 대접전을 할 때이며(단 12:1), 세상 미증유의 대환난의 시대(막 13:19)이고, 사단의 최후 발악의 시대(12:12, 17)라고 하겠다. 천사는 이 시기가 절박했다는 것을 경고한다”(김철손).③
이어서 요한은 【7】[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라고 하였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어 소리내는 날이라는 뜻이다. 그 날은 마지막 심판의 경고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종말의 때이다(참조: 살전 4:16, 마 24:31, 고전 15:51).④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는, 아모스 3:7의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를 연상하게 한다.
마지막 구원 역사와 마지막 심판을 행하시는 마지막 때(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1:20의 주석을 보라.)은 하나님의 ‘[종]’(둘루스, δούλους: 1:1의 주석을 보라.)인 신구약의 ‘[선지자들’(프로페타스, προφήτας: 2:20의 주석을 보라.)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은 것이다.
[전하신 복음](유엥겔리센, εὐηγγέλισεν)의 복음(유앙겔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준 보상(Homer, W. Hendriksen, 마경일)과 전쟁에서의 좋은 소식(E. Schweizer)을 뜻하였고, 여기서 왕자의 출생이나 황제의 즉위의 고지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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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철손, 요한계시록.
4) 필자의 데살로니가전서 4:16의 주석과 마태복음 24:31의 주석과 고린도전서 15:5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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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경우에는 하나님에게서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계시된 인류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음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원뿐만 아니라, 그분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도 포함되는 것이다.}(막 1:1의 주석).
특히,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은 죄와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복된 소식이다. 따라, {“그것은 인간의 철학 체계,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 그리고 어떤 생활양식의 형태에 대한 훌륭한 충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C. R. Erdman).}(갈 1:6의 주석).
{휴스(P. E. Hughes)는 “구약성경의 약속과 신약성경의 ‘복음’ 사이에는 참된 동질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본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취를 내다보고 있었고, 후자는 약속된 것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을 선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히 4:2의 주석).
하나님께서는 신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일관되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전하셨고, 종말의 때의 그 최종적 성취를 전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다.
요한은 자신이 받은 하늘의 지시에 대해, 【8】[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라고 하였다.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는 4절의 주석을 보라.
그 내용은 요한에게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2절의 주석을 보라.)을 가지라]라고 하는 것이다.
요한은 자신의 순종과 그 힘센 천사의 말에 대해, 【9】[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이라고 하였다.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는 에스겔 3:1-3을 연상하게 한다.
힘센 천사의 말을 순종한 결과에 대해, 요한은 【10】[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라고 설명하였다.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는 작은 책의 내용과 요지를 충분히 파악하고 소화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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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는 에스겔 2:9-3:3을 연상하게 하나(참조: 시 19:10, 119:103, 렘 15:16), 거기에는 ‘쓰다’라는 말은 없다.
이 표현에 대해 (1) 본문(11:1-13)의 내용 중 지배와 구속을 말하는 1, 3-6, 11-13절 등은 달지만, 낙망과 죽음을 예언한 2, 7-10절은 쓰다는 뜻이라는 설(Ewald, Heinrici, Holtzmann),⑤ (2) 성도들이 위로와 복을 받는 것은 달지만, 적그리스도의 핍박을 받는 것은 쓰다는 뜻이라는 설(A. Clarke, C. R. Erdman, 박윤선), (3) 요한이 이를 받을 때는 썼으나, 입으로 전할 때는 달았다는 뜻이라는 설(Bede),⑥ (4) 예언을 받는 것은 달지만, 전하는 데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뜻이라는 설(W. Hendriksen, “Kiddle”,⑦ 박윤선), (5) 죄는 처음에는 달지만, 나중에 그 보응은 쓰다는 뜻이라는 설(Andreas),⑧ (6) 단맛은 따라올 많은 좋은 일들의 표상이요(11:1, 15 이하), 아프게 하는 것은 셋째 화로 인하여 뒤따를 나쁜 일들의 표상이라는 설(J. Wesley), (7) 신자들에게는 달지만,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것이므로 쓰다는 뜻이라는 설(J. F. Walvoord), (8) 단 것과 쓴 것은 메시지가 구원과 멸망의 심판, 복과 화임을 깨달음으로써 선지자에게 일어나는 두 가지 반응에 대한 언급이라는 설(G. E. Ladd, 黑崎幸吉), (9) 입에 달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자로 인정되어 말씀을 받는 일이 기쁜 일임을 의미하고, 배에 쓰다는 것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에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⑨ (10) 단 것은 이 책을 받을 만한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것과 그 구원의 내용을 뜻하고, 쓴 것은 책임감과 책대로 실천하는 어려움과 그 심판의 내용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엄청난 공포와 비애를 뜻한다는 설(김철손)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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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n R. H. Charles.
6) in 이상근.
7) 상동.
8) 상동.
9) “Origen, Moffatt”(in 이상근), R. H. Charles, A. Plummer, W. Barclay, M. Rist, H. Kraft, G. E. Ladd, C. L. Morris, 이상근.
10)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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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제일 많지만, 그보다는 (10)설이 더욱 그럴 듯하다.
끝으로, 요한은 【11】[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라고 하였다.
[저가 내게 말하기를](λέγουσιν μοι)의 정확한 번역은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이다. 이 복수형에 대해 (1) 지금까지 한 천사가 말해 온 점을 들어서 오기(誤記)라고 하는 설(C. L. Morris, H. Kraft), (2) 하늘의 음성이나 천사나 천둥들의 소리라는 설(R. H. Charles), (3) 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자주 나타나는 숙어로서 불확정 복수를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한 것이라는 설(J. M. Ford, 김철손⑪) 등이 있는데, (3)설이 적합하다.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은 5:9의 주석을 보라.
“임금(5:9, 7:9, 16:14, 17:10-11)은 이 세상에서 최고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당시 로마 황제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종말의 메시지를 정치적인 탄압자에게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김철손).⑫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에 대해 찰스(R. H. Charles)는 11:15부터 계시될 새 예언을 말해야 된다는 의미라고 하나, 11:1 이하의 말씀을 예언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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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철손, 요한계시록.
12)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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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4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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