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동성애에 대한 장운양 전도사의 입장을 밝힙니다

장운양
  • 1616
  • 2021-03-12 17:13:42
이글은 앞으로 더 다듬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제 입장을 밝혀달라시는 분들의 요청이 계속되고 있어서 저도 이 싯점에서 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할듯하여서 밝힙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이 입장은 필립얀시의 입장과 거이 동일합니다. 몇 가지 다른 지점은 있지만 99% 동일한 입장입니다. 박형권님을 비롯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설호진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계속 대화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쉽지않게 올렸던 글들을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된 듯도 합니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기 전에 죄론에 대한 정리는 따로 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현학적인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우리의 삶의 나침반이라면 나침반을 적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야 지도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글을 읽고서 많은 분들이 놀라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열려진 복음주의적 입장에 서있는 신학도이지만 동성애에 관한 제 입장은 다음 글에서처럼 명확합니다. 저는 성서를 비틀어서 해괴한 논리를 만들고 예수님과 요한이 어떠하니 하면서 논지를 전개하는 모든 담론들에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으며 엄연하게 남성이시며 성서 그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동성애를 찬성하셨다는 한 터럭의 머리카락도 찾아 낼 수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현재 이상한 담론으로 이동환 목사를 지지하는 듯 하는 분들께 충심으로 말씀드립니다. 현재 님들께서는 잘못된 위치에 서계십니다. 그것이 이동환 목사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만 달달 암송하면서 외우고 자막대기를 들고서 쳐내는 것은 엄연하게 폭력이지만, 성서를 그저 인용각주 정도로 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시키는 모든 신학담론은 더 엄청난 폭력입니다.

저는 절대로 동성애를 용납할 수 없는 범죄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며 절대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창기와 세리들을 대하신 태도를 섬세하게 살펴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향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여인아~ 너는 아름답고 우아하니 매력이 넘치는 구나~ 당연히 많은 남성들이 네 몸을 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구나~ 여인아 이제 너는 해방되었으니 마음껏 사내들과 사랑을 나누거라~ "

이렇게 말씀하셨나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제발 성서를 오독하지 마십시다.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의 책 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리치 멀린스」가 우연히 여행길에서 만나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 남자가 "저기, 저는 게이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리치는 "아, 그러세요? 저는 크리스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저에 대해 아셨으니 차에서 내리고 싶겠네요?"하고 젊은 남자가 물었습니다. 리치는 "아니오. 당신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음, 하나님은 게이를 미워하잖아요? 게이는 지옥으로 가야 하나요?" 젊은 남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리치에게 물었습니다.

"게이는 지옥으로 가야 하나요?" 젊은 남자가 물었을 때, 리치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게이라고 해서 거짓말쟁이, 도둑, 인종차별주의자보다 더 지옥에 가야 마땅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은혜와 용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리치의 대답을 들은 젊은 남자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그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헤어졌습니다.

1974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병리 범주에서 제외한다고 선언함으로서 동성애를 이성애(異性愛)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한 형태로 인정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조금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동성애자의 결혼까지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동성애'를 유해매체 조항에서 삭제해 주기를 권고했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이를 수용함으로서 국가기관이 정식으로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한 형태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 정부에 들어서고 다시 문재인 정부에 접어들면서 소위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성애는 이제 더 이상 비정상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그저 개인마다 서로 다른 기호나 취향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욕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짓밟는 야만적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결연히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필자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혐오하지만 동성애, 그 자체는 분명히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자를 지옥으로 가야 할 괴물로 여기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글의 도입부에서 인용한「리치 멀린스」의 경우처럼 동성애자는 거짓말쟁이, 도둑, 인종차별주의자보다 더 지옥에 가야할 나쁜 죄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동성애 행위 자체는 분명히 죄악인 것입니다. 동성애를 이성애와 다를 것이 없는 정당한 행위로 여기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국가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스러운 일로서 현대인들의 윤리의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과거, 클린턴은 대선 공약으로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가 결국은 그 공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공약을 지켰다가는 이건 군대가 아니라 난장판이 될 것이며 그럴 경우,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강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이 아무리 진보주의자였지만 그것만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동성애를 긍정하는 미국의 입장을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정상적인 성적취향이라면 군대라고 해서 구태여 금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도대체 뭐냐고 묻습니다. 자신과 색다른 취향을 가졌다고 해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며 왜곡된 편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소외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표명합니다.

동성애는 과연 죄가 아닌가?

동성애는 사회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가?

동성애는 죄가 아니며 단순히 색다른 성적 취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어느 날, 웬 낯선 남자를 데려와서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라고. 아마 펄쩍 뛰면서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제로 결혼을 하고 아기까지 정식으로 입양하였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래서 그 아기가 한 남자를 아빠, 라고 부르고 또 한 남자를 엄마, 라고 부른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런데 입양한 아기가 엄마라고 부르는 남자가 하필이면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 해괴한 광경을 바라보는 당신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당신은 아마 세상에 이런 비극은 없을 거라고 한탄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절망하여 쓰러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두 남자를 아빠로, 엄마로 나누어 불렀던 아기들의 성 정체성은 어떻게 될 것이며, 누가 책임을 질 것 입니까? 과연 동성애가 아무런 사회적인 해악이 없단 말입니까?

동성애는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왜곡되고 잘못된 성적 취향입니다. 그것은 '다름' 이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호' 나 '취향'도 아닙니다. 동성애는 그저 죄악일 뿐입니다. 간혹 동성애자를 일종의 장애인으로, 소수자나 약자로, 나아가서는 피해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을 마치 장애인을 혐오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몹시 격앙된 반응을 보입니다. 만약 장애인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혐오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동성애는 장애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 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태어납니다. 칼 바르트는 그것이 원죄라고 로마서 주석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우겨서는 안 됩니다. 알고 지었던 모르고 지었던 죄는 죄일 뿐입니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이 말을 하는 필자에게 화를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필자가 그렇게 정의를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세대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영원한 도덕법입니다.

동성을 향하여 음욕이 생기는 변태적인 성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연스런 욕망이 크게 왜곡된 것입니다. 소나 양이 고기를 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자나 호랑이가 풀을 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소나 양이 입에 피를 묻히고 고기를 씹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괴한 일일 것입니다. 사자나 호랑이가 풀을 보고 미친 듯이 달려들어 뜯어먹는다면 그 또한 기괴한 일일 것입니다. 필자는 그런 일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음식에는 관심이 없고 쇠 덩어리나 나무 조각을 보고 군침을 흘린다면 그는 분명히 이상한 식욕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는 여자에게,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성욕을 느껴야 한다. 그게 정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같은 남자에게, 여자가 같은 여자에게 성욕을 느낀다면 그것은 누가 뭐래도 비정상입니다. 그것을 정상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마디로 억지일 뿐입니다.

필자는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그들만의 비애에 깊은 동정심을 갖습니다. 일반인들의 냉대와 혐오감으로 말미암아 동성애자들이 갖게 될 소외감과 상처는 엄청나게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합니다. 동성애적인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한 분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존경스러운지 모릅니다.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존 화이트」는 자신이 저술한 <성(性)- 그 더럽혀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책에서 자신도 과거 한 때, 동성애를 경험했지만 신앙으로 극복한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필립 얀시」의 유명한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는 동성애자 친구의 애환이 절절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얀시는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 친구를 이해하고 되고 동성애자들이 느끼는 아픔과 고민에 동참하여 그들에게 깊은 연민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얀시는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로 인해 둘 사이의 우정에 한동안 금이 갔지만 얀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얀시는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은 간음하다 끌려온 여인에게 깊은 연민을 품으셨습니다. 그러나 간음, 그 자체를 용납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간음은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간음인가? 둘이 서로 좋아서 성관계를 맺었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치 않는 성관계가 간음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간음죄를 폐지하였지만 하나님은 간음죄를 폐지하지 않았슶니다. 사람들이 면죄부를 주었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서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고 규정하였더라도 동성애는 분명한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면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마치 동성애자들에게 무슨 큰 시혜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찮아, 괜찮아" 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도 연민도 위로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에게 결코 이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주님이 창녀와 세리의 친구였듯이, 주님은 동성애자들의 친구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들의 죄까지 용납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죄라고 지적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면서 그들의 행위를 죄로 지적할 때 비로소 동성애자들도 진정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필자 역시 그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참고
http://www.newspower.co.kr/2149
https://changmoolee.tistory.com/80
http://eyagi.blogspot.com/2012/06/by.html
그리고 필립얀시의 모든 저작

일산동지방
이웃감리교회 담임목사 최철
장운양 전도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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