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51회 자. 셋째 삽경인 성전 측량과 두 증인Ⓐ(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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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3 23:38:53
자. 셋째 삽경인 성전 측량과 두 증인<11:1-14>

셋째 삽경인 성전 측량과 두 증인은 【1】[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로 시작된다.
[갈대]는 칼라모스(κάλαμος)이며 물건이나 건물 등을 재는 자로 사용된 장대를 의미한다(참조: 21:15, 겔 40:3, 5, 42:18).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한 대상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전후 문맥상 ‘힘센 천사’(10:1의 주석을 보라.)로 짐작된다(10:9, 11). 아무튼, 확실한 것은 천적인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지시 내용은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라는 것이다.
[성전]은 나온(ναὸν)이며, 마당과 행각을 포함한 성전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ἱερόν)과 구별되는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스러운 지성소를 의미한다(3:12, 7:15).
이 [성전] 곧 지성소에 대해 (1)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성소라는 설,① (2)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R. Tuck, 이상근), (3) 영적 성전인 그리스도의 교회(고전 3:16, 6:19, 고후 6:16, 엡 2:21, 벧전 2:5)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② 등이 있다.
다음 구절(2절)을 미루어 천적인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지상의 예루살렘 성전은 본서가 기록되기 전에 이미 로마군에게 함락되어 파괴되었으므로(주후 70년) (1)설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성전이 영적으로 교회, 또는 교인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는 점과(3:12) 예루살렘 지성소 안에는 제사장밖에 들어갈 수 없는데,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했다는 점과 하늘에는 성전이 없고, 오직 영적으로 칭할 뿐이라는 점(7:15, 11:19, 14:15, 16:1. 17) 등을 미루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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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A. Clarke, J. F. Walvoord, “Holtzmann”(in 이상근), 이상근.
2) M. Henry, H. Alford, R. H. Charles, A. Plummer, “Swete”(in 박윤선), R. C. H. Lenski, C. R. Erdman, C. L. Morris, G. R. Beasley-Murray, W. Hendriksen, A. Johnson, W. Barclay, H. Kraft, J. M. Ford, R. H. Mounce, R. Brooks, P. E. Houghes, 黑崎幸吉,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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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은 지성소에서 제사드리는 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의미하는 향단을 가리키는 것 같다.③
[척량하되]는 처벌을 받을 사람을 조사해서 유죄 판결을 내린다는 뜻(참조: 삼하 8:2, 왕하 21:13, 사 34:11, 암 7:7-9)과 확장 또는 확대하여 회복하거나 재건한다는 뜻(겔 40:3, 41:13, 슥 2:2-8)과 보존 또는 보호한다는 뜻(삼하 8:2, 렘 31:39, 슥 2:1-2)이 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는 환난과 핍박 아래서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존하거나 보호한다는 뜻이다. 찰스(R. H. Charles)는 영적 보존을 뜻한다고 하나, 꼭 그렇게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계속된 지시에 대해, 요한은 【2】[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라고 하였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예루살렘 성전의 뜰의 구조를 들어 교회를 설명하는 것이다. 헤롯 대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뜰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성전 안에 있는 뜰인 ‘제사장의 뜰’과 그 바깥쪽 뜰인 ‘남자의 뜰’, 또는 ‘이스라엘의 뜰’과 그 바깥쪽 뜰인 ‘여인의 뜰’이다. 둘째는 성전 밖의 뜰인 ‘이방인의 뜰’이다.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중간은 높은 담이 있었고, 거기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사형에 처한다고 헬라어와 라틴어로 쓰인 표지가 붙어 있었다(Jos., Ant. xv. 11:5; Philo, Leg. ad Gai, 212, by Bruce).}(행 21:28의 주석).
[성전 밖 마당]인 ‘이방인의 뜰’은 버림받은 회당이나(Swete)④ ‘남은 자’를 제외한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것(C. L. Morris, G. E. Ladd)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해 있으면서 불충하고 교회를 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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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 C. H. Lenski, R. H. Mounce, P. E. Houghes, W. Hendriksen.
4) in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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럽히는 가짜 그리스도인들이나 불신자들을 의미하는 것이다.⑤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는 하나님의 보존, 또는 보호 밖으로 쫓겨나 멸망하도록 버려두라는 것이다(창 21:10, 마 8:12, 22:13, 25:30, 갈 4:30).⑥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의 “[이방인](에트노스, ἔθνος: 5:9의 ‘나라’와 같은 말이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나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강한 세력권을 말한다. 실제로 에스겔 시대에도 이방인에게 성전이 유린당한 일이 있었다(겔 44:5-9). 계시록 당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로마의 학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오늘날 예루살렘 성전이 파멸된 그 자리에 모하메드 신전이 들어선 것도 거룩한 성이 유린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성전은 앞으로 종말적 시기에 이르러 또다시 침범을 당할 것을 암시해 준다(14:8, 16:9, 18:24). 이에 대해서 일찍이 다니엘서에도 예언한 바 있다(단 8:13-14)”(김철손).⑦
[거룩한 성]은 물론 교회 곧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1절의 주석을 보라). 종말의 때에 교회는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힐 것이다.
[마흔 두 달]은 묵시 문학의 날짜 계산법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묵시 문학의 날짜 계산법은 민수기 14:34과 에스겔 4:6에 의해서 1일을 1년으로 계산하고, 창세기 7:11부터 8:4(5 개월=150일)에 의해서 1월을 30일로 한다”(김철손).⑧
따라서 [마흔 두 달](13:5)은 삼 년 반이며, 일천 이백 육십 일(3절, 12:6)이다. 이것은 “삼 일 반”(11절)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14, 단 7:25, 12:7)와 같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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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 Johnson, R. H. Mounce, W. Hendriksen, G. R. Beasley-Murray, 黑崎幸吉, 김철손, 요한계시록.
6) 필자의 마태복음 8:12의 주석과 22:13의 주석과 25:30의 주석과 갈라디아서 4:30의 주석을 보라.
7) 김철손, 요한계시록.
8)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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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서는 이 기간이 거룩한 성인 교회에 대한 박해(2절)와 두 증인이 예언하는 때(3절)와 여자를 광야에서 보호하시는 때(12:6, 14)와 짐승이 자신의 권세를 행하도록 허락하신 때(13:5) 등으로 나타난다.
어드만(C. R. Erdman)은 “이 기간은 삼 년 반, 즉 일천 이백 육십 일을 말함이다. 삼 년 반이란 기간은 늘 고난과 압박과 소란과 파괴 등의 기간에 사용되어 왔다.”라고 하였고; 김철손 님은 “7은 완전수이며 충만수인데 대해서 3.5는 절반(broken number)밖에 안 된다. 그런데 이 숫자는 단순히 짧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세상 종말 시에 닥쳐올 고난과 환난이 극도에 달할 시기를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은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때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모운스(R. H. Mounce)는 마흔 두 달을 교회에 대한 짐승의 핍박 기간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기간이라고 하였고, 모리스(C. L. Morris)는 그때의 하나님의 보호는 결코 고난과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붙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경우처럼, 영광스럽게 순교하도록 보호하시기도 하신다(행 7:55-60).
그 기간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설명에 대해, 요한은 【3】[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라고 하였다.
[내가]는 1절의 화자인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R. C. H. Lenski, 김철손⑨) 또는 하나님(R. H. Mounce)으로 보아야 한다.
[두 증인]에 대해 (1) 에녹과 엘리야(I Enoch 90:11)라는 설(Tertullian),⑩ (2)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예언의 대표인 엘리야라는 설,⑪ (3) 베드로와 바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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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김철손, 요한계시록.
10) in A. Johnson.
11) “Jochanan ben Zakkai, A.D. 1세기”(in A. Johnson), “Seiss, J. B. Smith, Gundry”(in A. Johnson), W. Barclay. R. H. Ch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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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설(Bruce, Munck),⑫ (4) 교회 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대표들이라는 설(Mathias Rissi),⑬ (5) 마지막 때에 나타날 두 선지자라는 설(J. Wesley, G. E. Ladd), (6) 상징적으로 모세와 엘리야의 기능을 수행할 미래의 두 선지자라는 설,⑭ (7) 모든 예언자들을 대표한다는 설(Minear),⑮ (8) 다음 구절(4절)의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는 말씀이 스가랴 4:14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미루어 교회, 또는 주님의 증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⑯ 등이 있다.
(1)설부터 (3)설까지는 실존했던 인물들의 환생을 말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4)설부터 (7)설까지는 두 증인을 설명하는 다음 구절(4절)과 조화되지 않는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8)설이 가장 그럴 듯하다. 교회는 종말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더욱더 선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두 증인]의 [두](2)는 실제의 증인의 수가 아니라, 증인이 증거하는 증언의 진실성(신 17:6, 19:15, 요 8:17-18)을 나타내는 것이다.⑰ 또, 2라는 수는 협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박윤선 님은 “증인의 이수(二數)는 증거상 신실(信實)을 성립시키는 데 요구되는 수효이다(신 19:15).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에 두 사람씩 보내신 것[막 6:7, 눅 10:1]⑱도 이 뜻이다. 또한, 성경에는 두 사람을 가지고 협력의 의미로도 말한 바 있다(전 4:9, 11, 12).”라고 하였다.
[굵은 베옷]은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입던 소박한 겉옷이며(사 20:2, 슥 13:4), 주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 입었다. 특히, 베옷은 애곡과 회개(사 22:12, 렘 4:8, 욘 3:5, 욜 1:13)를 상징하였다.
[굵은 베옷을 입고]는 마지막 때에 사람들에게 최후 심판을 경고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두 증인인 교회의 사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는 2절의 “마흔 두 달”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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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in A. Johnson.
13) 상동.
14) J. A. Bengel, A. C. Gaebelein, “Beckwith”(in A. Johnson), 이상근.
15) in A. Johnson.
16) C. L. Morris, “Bruce, Minear”(in 강병도 편), A. Plummer, A. Johnson, W. Hendriksen, “Greijdanus”(in 박윤선), G. R. Beasley-Murray, C. R. Erdman, “J. S. Considine”(in R. H. Mounce), R. H. Mounce,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17) R. C. H. Lenski, P. E. Houghes,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18) 필자의 마가복음 6:7의 주석과 누가복음 10:11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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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48-253.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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