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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愛)그 신비한 단어...
오재영
- 1505
- 2021-03-18 17:56:33
젊은 부부가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남편은 고학생 출신입니다. 촉망받는 엘리트였습니다. 부잣집 딸을 가르치기 위해서 가정교사로 있다가 그 부잣집 딸하고 결혼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이 고학생의 생활수준이 급상승했습니다. 처갓집에서 사주는 좋은 집에, 자동차를 타고, 장인어른 회사에서, 예전에 비해서 정말 호의호식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인 집에 들어가서 장인의 재산으로 사는 순간부터 아내와 그 패밀리가 이 남자에게 갑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부 관계가 갑을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면 아내가 친정에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장인 장모님이 사위를 야단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손위 처남이 달려와서 자기 매제, 이 여인의 남편 뺨을 때리면서 우격다짐을 했습니다.
그런 남자가 기를 펴고 살겠습니까? 가정에서 그렇게 주눅 든 사람이 장인회사에서 좋은 직책에 좋은 직급에 있었지만 사회생활이 괜찮겠습니까? 그래서 두 사람이 미국 이민을 계획했습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가난한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아니지만 그 가난한 시부모에 대해서 때마다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게 귀찮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국 가서 처갓집 돈으로 자동차사고, 처갓집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아내와 갑을 관계가 그대로 계속된 것입니다. 그 남자는 오십도 되기 전에 미국 땅에서 죽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그 자매가 저를 만나더니 마치 친정 식구를 만난 듯이 제 앞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나서 남편의 일기장을 본 겁니다. 자기의 갑질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 자기가 전도유망했던 한 젊은 남자의 인생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죽였다는 죄책감에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도 지금 다 성인이 되셨지만, 어릴 때, 10대 20대를 지나면서 부모로부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은 만큼, 여러분 자식도 여러분으로부터 상처받으리라는 생각은 왜 못하십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는 사랑을 모르지 않습니까? 사랑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기심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재철 목사. (말씀, 그리고 사색과 결단) P.68-70인용).
겸손한 사람.
많은 크리스천들이 기억하고 있는 중국이 낳은 탁월한 신앙지도자 와치맨 니(Watchman Nee)그는 쓰기를, 우리의 영혼은 깨어짐의 정도에 따라 해방된다. 규율(規律)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잘 섬기는 사람이다. 많이 깨어질수록 그는 더욱 민감해 진다. 스스로를 변호하려는 욕망이 클수록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영적으로 못쓰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고 변명할 때마다 우리는 영적인 민감함과 성령의 공급을 빼앗기게 된다.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상상을 버려라 이 기본적인 규율을 무시하지 말라.
몇 줄 더 내려가면 니(Nee)는 이렇게 쓰고 있다. “섬김의 길은 깨어짐과 성령의 규율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섬김의 척도는 규율과 깨어짐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고든 맥도날드,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P242인용).
영혼을 교도하며 치유하고 인도하는 목사로서 우선 갖추어야할 기본적으로 체질화 시켜야 할 품격(禀格)은 많은 사람과 사귀고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그는 먼저 자신을 죽이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동시에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하며,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배워야한다. 그와 같은 과정의 절차를 통하여 점차 외적으로 조화가 이루어지며, 그처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가는 그 사람의 삶 속에 주님으로부터 늘 새로운 미래가 공급되어 담긴다.
생각 속에 한동안 머물렀던 글이다. 월레스 해밀턴(Wallace Hamilton)이 한 사람의 자연스런 내면 상태를 표현한, “우리 각자 속에는 고삐를 풀고 싶어하는 야생마(馬) 한 떼가 있다.”
사랑, 그 신비한 단어...
유월절 전날 밤, 날이 밝으면 자신들에게는 영광의 날이 도래할 것으로 착각하여 기대에 들떠있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그 사랑을 오랜 후에 깨달은 사도 요한도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아침 가정예배시간, ‘하늘양식’에, 우동혁 목사님의 ‘거룩한 성품을 품으라’의 예화와 말씀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황만근 은 이렇게 말했다⌟동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하면서도 어수룩하여 무시당하는 농사꾼의 존재이지만, 다른 이들은 일주일, 한 달씩 집을 비워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황만근 은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도 모든 사람이 그의 부재를 알았다는...
“지금 주님께 필요한 사람은 사리분별이 확실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며, 이해에 밝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미 그런 사람은 세상에나 교회에나 차고 넘칩니다. 정말 주님께 필요한 사람은 바보처럼 사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체면이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주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무게입니다...”
글을 마치며...
지금, 크리스천이든 이교도들이든, 모두가 위기라 하는 이때에 그래도 명색이 神託을 받아 영혼을 인도한다는 목회자들로서 고작 하는 일이 “곧 침몰할 배에서 갑판위에 있는 의자나 정돈하고 있는 모습들이 정상인가?” 은혜와 사랑을 말하는 이들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가엾은 모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