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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진급심사 절차는 범죄자 신문이 아닙니다.
신동근
- 3035
- 2021-05-01 23:19:05
연회 자격심사는 목사안수를 받기 위해 진급 중인 서리와 준회원 전도사들의 평소 목회활동을 점검하고 목회자의 소양과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실시하는 감리회의 전통적인 목회자 양성 절차입니다. 이 자리는 준회원들의 목회자적 자질을 보다 긍정적으로 향상키 위한 지도와 권면의 자리이지, 준회원 개개인 - 이미 기본적인 신학적 소양을 충분히 갖춘 - 의 사상을 검증하거나 범과의 혐의를 갖고 범인을 추궁하거나 신문(訊問)하는 식의 고압적인 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답정너”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해”라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격심사라는 절차를 통해 특정 개인 심사위원의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신학적 견해를 모든 준회원들에게 사상검증 하듯이 질문하고 원하는 답변을 유도, 강요하는 행위는 연회 자격심사의 본질을 흐리고 고압적이고 강권적인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리와 장정』의 1405단 제5조(벌칙의 종류와 적용) 제3항 ‘교역자에게 적용되는 범과’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삼남연회에서의 모 심사위원의 행위는 마치 내가 원하는 답을 하지 않을 경우 위 장정의 조항에 근거해 해당 준회원을 범죄자 취급하고 필요한 경우 징계를 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는 관용과 대화의 전통으로 서로 다른 견해들을 조화하고 다양성 속에 일치를 추구해온 존 웨슬리의 감리교 전통과 에큐메니칼 정신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 부끄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회원이 되어 우리와 단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교리적 시험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중요한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함과 그를 따르려고 결심하는 것이다. 웨슬리 선생이 연합속회 총칙에 요구한 바와 같이 우리의 입회 조건은 신학적보다 도덕적이요 신령적이다. 누구든지 그의 품격과 행위가 참된 경건과 부합되기만 하면 개인 신자의 충분한 신앙 자유를 옳게 인정한다. (“교리적선언”, 『기독교조선감리회 제1회 총회 회의록』, 1930, 62.)
위의 기독교조선감리회 ‘교리적선언’의 정신처럼, 이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연회 자격심사도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인습과 강권적 문화를 극복하고, 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관용과 포용, 소통과 대화가 가능한 공간으로 우리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습니다. 감리회의 자랑인 목회자 진급과정과 자격심사 제도가 건강한 목회자 양성을 위한 전통과 문화를 수립하기보다 오히려 경직, 편향, 획일화된 개인적 견해를 주입하고, 감리회의 미래인 준회원들의 사상을 통제하는 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동성애’와 관련한 신학적인 견해들은 아직도 전 세계 교회가 토론하고 논쟁하고, 상호 간의 다양한 입장들을 존중하며 씨름하고 있는 현대 교회의 숙제입니다. 세계교회사의 각 시기마다 교회는 당대 시대정신의 변화와 새로운 문화 및 사상의 도전 앞에서 이를 신학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수많은 내적인 갈등과 토론, 숙고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공교회적인 진리와 윤리의 결론들을 도출해 왔습니다. 노예제, 인종차별, 여성, 노동, 전쟁, 교파주의, 이념 등 다양한 교회와 사회의 문제들을 성숙한 신앙과 신학의 조화 속에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응답해 왔습니다. 과거에 성서를 근거로 진리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 했던 불의와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시대정신의 변화 속에서 낡은 언어의 틀을 깨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전진의 발걸음으로 새로운 신앙고백들을 교회사 속에서 내어놓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교회사의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이제 동성애 문제는 ‘자격심사위원 개인’이 ‘준회원 심사자 개인’에게 강권하고 윽박질러 대답을 얻어내는 것으로 결코 해소되거나 해명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 아님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모든 구성원들(목회자, 신학자, 평신도, 청년학생 등)이 공식적으로 열린 만남의 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토론하고 예수정신과 존 웨슬리의 신학에 비추어 현대의 첨예한 신학적, 윤리적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공개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숙고하는 공간과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역사의 자격심사를 받아야 할 전환기일지도 모릅니다. 세계교회와 한국사회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이 쉽지 않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과 그 결과를 바라보며 미래 세계교회와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을 기독교대한감리회에 맡기고 기대할 수 있을지 판단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지난 삼남연회에서의 준회원 유급조치를 철회해 주시고, 이를 계기로 감리회 안에서 건강한 토론과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시기를 강력히 요청 드립니다.
2021년 4월 30일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 모임"
공동대표 이경덕, 이영우, 차흥도 총무 신동근 외 회원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