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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61회 a. 바다에서 나온 짐승II cf. 하나님을 훼방하는 신학자,교역자
최세창
- 1269
- 2021-05-16 01:19:27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의 [큰 말]은 다니엘 7:8의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참조: 단 7:20). 그리고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는 다니엘 7:25의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짐승] 곧 적그리스도는 사단에게서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케 하는 큰소리를 치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는 입을 받고, ‘[마흔 두 달’(11:2의 주석을 보라.) 일할 권세를 받]는다. 이 기간에 짐승 곧 적그리스도는 사단에게서 받은 권세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인들을 핍박하고, 사람들을 미혹케 한다(11:2, 9).
짐승의 입술의 범죄에 대해, 요한은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의 [훼방하되]는 1절의 “참람한”의 주석을 보라.
데살로니가후서 2:4에는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그의 ‘이름’](오노마, ὄνομα: 2:3의 주석을 보라.)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이름과 본체를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금했다(10계명 중 제3계명 신 5:11 참조). 하나님에 대한 칭호는 다만 기호 ‘YHWH'로 표시했을 뿐이다(출 3:15). 그래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그 본체를 모독하는 것이다”(김철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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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김철손, 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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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의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은 하늘나라에 이미 들어간 성도들이나(7:15, 12:12. 黑崎幸吉), 천사들(H. Kraft)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한다.② 성도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빌 3:20),③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엡 2:6.④ 참조: 골 3:1).
한동안 기세를 부리는 짐승 곧 적그리스도에 대해, 요한은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라고 하였다.
[권세를 받아 ‘성도들’(하기온, ἁγίων: 3:7의 “거룩하고”의 주석을 보라.)과 싸워 이기게 되고](11:7-10의 주석을 보라.)는, 다니엘 7:21의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를 연상하게 한다.
존슨(A. Johnson)은 “계시록의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 ‘싸운다’는 것은 군사적인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멸하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다(2:16, 11:7, 12:7, 17, 16:14, 17:14, 19:11, 19, 20:8, 고후 10:4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의 육신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마 10:28). 엘리오트의 ‘사원에서의 살인’(T. S. Eliot, Murder in the Cathedral [New York: Harcourt, Brace & Co., 1935])에서처럼, 그들이 짐승에게 패배당하고 짐승이 승리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성도들이 승리하고 짐승이 패하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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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 Barnes, C. L. Morris, G. E. Ladd, P. E. Houghes, 박윤선, 이상근.
3) 필자의 빌립보서 3:20의 주석을 보라.
4) 필자의 에베소서 2: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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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는 적그리스도가 용 곧 사단에게서 세계를 지배하는 권세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상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사단)에게 시험받으신 내용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눅 4:5-7).⑤
세계를 지배하는 권세를 받은 짐승 곧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들에 대해, 요한은 【8】[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라고 하였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의 원문(οὗ οὐ γέγραπτα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ύ ἐν τῷ βιβλίῳ τής ζωής τού ἀρνίου τού ἐσφαγμένου ἀπὸ καταβολής κόσμου.)은 문법상 [창세 이후로](ἀπὸ καταβολής κόσμου)가 [녹명되지 못하고](οὐ γέγραπτα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ύ: 그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를 수식할 수도 있고,⑥ [죽임을 당한](ἐσφαγμένου)을 수식할 수도 있다.⑦ 전자를 취하면,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때부터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뜻이 된다. 후자를 취하면, 창세 이후에 속죄 제물이 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뜻이 된다. 전자는 믿고 구원받는 자와 믿지 않고 멸망당하는 자가 창세 때부터, 혹은 창세 전에 예정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후자는 어린 양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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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필자의 누가복음 4:5-7의 주석을 보라.
6) J. A. Bengel, “De Wette, Hengestenberg, Moffatt, AV”(in 이상근), 이상근, 박윤선.
7) H. Alford, R. H. Charles, A. Plummer, “Vincent”(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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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하여 생명책의 특성인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강조한다는 점과 3:5에서 사람이 적당한 때에 응답하지 못하면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는 점과 창세 때부터나 창세 전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당할 자가 예정된다면, 어린양의 대속 죽음의 의미가 반감되거나 무의미해지거나 불필요해진다는 점과 하나님은 편애하시지 않고 어린양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구원하시는 공정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참조: 요 3:16, 벧전 1:19, 20, 딤전 2:4-5) 등으로 미루어 후자를 취해야 할 것이다.
[생명책](τῷ βιβλίῳ τής ζωής)은 3:5의 주석을 보라.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는 속죄의 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를 신으로 여겨 숭배한다는 것이다.
요한은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9】[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2:7의 주석을 보라.
끝으로, 요한은 【10】[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에 대해 (1) 사로잡히게 된 성도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박해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라는 설(“Bousset”,⑧ A. Barnes, RSV), (2) 사로잡는 박해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박해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칼에 죽을 것이라는 설,⑨ (3) 박해자를 사로잡는 성도는 사로잡혀야 할 것이요, 박해자를 칼로 죽이는 성도는 마땅히 칼에 죽어야 할 것이라는 설(C. L. Morris, R. H. Mounce, G. E. Ladd), (4)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로잡히게 된 성도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임을 당할 성도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라는 설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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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n 이상근.
9) A. Clarke, “Weiss”(in 이상근), 박윤선, 김철손, 요한계시록. AV.
10) A. Plummer, A. Johnson, R. H. Charles, J. F. Walvoord, “Lohmeyer, Moffatt”(in 이상근),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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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문맥상 (4)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4)설이 본문의 배경으로 믿어지는 예레미야 15:2의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와도 통한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의 [인내](휘포모네, ὑπομονὴ)는 1:9의 “참음”의 주석을 보고,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은 2:13의 주석을 보라.
마지막 환난의 때에 성도들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순교가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고, 인내와 믿음으로 받아들여 승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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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91-295.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난해 성구 사전 I, II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