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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축제에서 축도한 이 아무개가 말하는 ’평등’의 성경적 의미]
박온순
- 2014
- 2021-05-15 19:00:17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전도사가 무슨 돈이 있다고 때마다 이리하느냐 그리하지 말아라”
이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목사님께 받은 은혜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이 청년을 만난 것은 8년 전 쯤의 일이다. 해외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과중한 학업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상태였다.
귀국하여 “행복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학사조의 흐름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였고 학업을 계속해야 하나 중단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누군가 날 소개해 주었다고 찾아왔다.
그러한 상황을 들은 나는 내가 만났고 변화되었으며 새로운 인생 길로 인도해 주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매주 성경을 가르쳤다. 그는 점점 변화되어 갔다.
처음에 찾아 왔을 땐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여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집중하는 일도 힘들어 하던 청년이었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니 성경을 배우는 중 자연스레 그는 악습도 끊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이제는 그를 힘들게 했던 부분들이 치유되어 주님 앞에 바른 길을 가기 위해 거룩한 근심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받은 바 은혜와 사랑은 어떠한가.우리의 형편을 공감해주고 성경을 가르쳐 주는 정도인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앞두고 생명을 다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유언설교를 하셨다. 그 때 주님께서는 예수님과 제자와의 관계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한복음 15:13-15)
“평등”을 말할 때 “친구”라는 호칭 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티끌에 불과한 인생들을 향해 예수님은 “너희를 친구라”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죄악 덩어리인 인간이 예수님의 그 낮아지심과 겸손하심에 대하여 만홀히 여기면 되겠는가? 그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감히 그 분의 사랑을 멸시한단 말인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다. 죄가 전혀 없는 분으로서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리고 모든 인생들이 받아야할 저주와 형벌을 우리 대신 받으시고 죽으셨다.
그런데 퀴어축제에서 축도한 이 아무개는 축도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고 성결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동성애자라느니 입에도 담지 못할 망발로 천벌을 받을 짓을 하고 있는 자들의 이론이 무슨 새로운 지식인냥,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혼들을 미혹하는 양아치 같은 종교장사꾼들을 초청하여 무슨 세미나를 열지를 않나, 이게 정신이 온전한 목사가 할짓인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리는 단순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는 것 만큼.
복음은 자유를 누리게 한다. 어느 상황과 환경에도 얽매이지 않는 하늘의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오직 “예수는 그리스도” 라고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으나 그곳에서도 침묵할 수 없어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의 외침을 들어보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이것이 복음을 간직한 자의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구 삼아 주셔서 평등을 누리는 자의 삶이다.
그런데 이 아무개의 행보는 어떠한가? 다음은 2021년 05월 11일 자 경향신문에 난 기사의 일부다.
“이 목사는 재판 장기화에 따른 정신적 고통도 호소했다. 이 목사는 지난 3월 인권위에 이 같은 이유로 진정서를 제출했고, 인권위는 관련 진정을 조사하고 있다.”
내용인즉 감리교회의 총회재판위원회에서 빨리 재판을 하지 않아 이 아무개가 피로감을 국가 인권위원회에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피로감의 회복은 재판이 빨리 진행이 되고 혹여 목사 직에 복귀 된다고 할지라도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권을 인정해 드릴 때 인권도 회복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낮추어 믿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그 은혜를 힘입을 때 임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하늘의 평강으로 충만한 것이다.
이 아무개는 동성애자들의 ‘평등’을 위해 시대적 소명을 받은 것처럼 착각하는데 그 평등은 동성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가르쳐 주고 그들이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을 때 진정한 평등의 의미를 알고 누리고 나누게 된다.
진정한 평등을 통한 자유함은 영원한 스승이신 보혜사 성령님께서 회개한 심령에 임하실 때 가능하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믿는자들을 친구 삼아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에 대한 사랑이 믿어지도록 도와 주시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등은 목사가 무슨 “운동”이나 무슨 “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일하신 성령 하나님이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회게하게 하시는 은혜를 힘입을 때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를 알아 이웃도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내 힘이나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니 인간은 자랑할 것도 없고 고통 받을 것도 없다.
왜냐고? 감히 세상 만물의 주가 되시는 거룩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영으로 함께하시는 영광을 누리게 하시고 때마다 거룩한 의의 병기로 사용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우니까.
2021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나의 영원한 어버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영원한 스승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리며, 감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 된 자가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가장하여 미혹자는 자들을 보며 견딜 수 없어 바치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