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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온순 목사님의 역제안에 대하여-요:3:16, 합3:17~18-로 응답
남재영
- 1708
- 2021-06-15 17:48:36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목사님의 열정이 감리회공동체를 위한 충정이라는 점은 충분하게 이해를 합니다. LGBTQ에 대하여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저는 그 다름도 충분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길에선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입장을 경청하겠다는 자세와 태도를 기대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박목사님이-토론을 하자면서-제시하신 역제안에 대해서 저는 토론을 위해서는 최소한 필요를 수정해서 제시 했습니다. 제가 제시한 토론을 위한 필요는 우리가 <왜?> 토론을 하고 <무엇을?> 위해서 토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토론자들이 함께 난장판 같은 감리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얼굴을 마주해보자는 충정에서 수정 제안을 드렸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박목사님의 처음 역제안과 두 번째, 세 번째 글을 써 주셨으나, 세 번에 걸친 박 목사님의 글 내용은 처음 역제안과 똑같은 동어반복이었습니다. 박목사님의 글은 토론이 아닌 토론을 빙자하여 뭔가 보여주기를 하자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나무와 열매>에 관해서 신앙관과 목회관은 토론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면 됩니다. 그런데 목회자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교인들까지 끌어대고, 게다가 그 교인들도 거짓을 말할 지도 모르니 유튜브로 생중계를 하고 심지어 토론자의 가족들까지 진실게임에 동원해야한다는 제안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저는 교인들의 만남이 필요하면 다르게 동성애를 주제로 친교의 자리를 마련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리를 만드는데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상검증 하듯이 목회를 검증하자는 목사님의 글 태도는 토론을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감리교회를 위하여 동역자로 한발씩 다가 가보자는 토론의 선한 목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토론을 통해서 상대의 흠을 잡고 망신을 주고자하는 과도한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이것은 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론 재판이나 심판을 하자는 것이지요. 박 목사님은 토론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한 번도 그렇게 토론을 해본적도 없고, 그런 토론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참 안타깝네요.
<나무와 열매>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동성애 문제와 관련하여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나무와 열매>에 대해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아래 글은 이동환 목사와 관련하여 당당뉴스에 올렸던 제 글의 일부분입니다. 아마도 박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나무와 열매>에 관한 앞으로 대답이 될 걸로 생각하여 여기에 그 글 중에서 관련된 부분을 일부를 삽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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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경 성소수자 활동단체인 <무지개예수>로부터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무지개교회가 되겠느냐는 요청을 받았다. 이성애자인 내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사실 <무지개예수>도 몰랐다. 그래서 검색을 해본 결과 “<'무지개예수>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및 성소수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으로서, 성소수자 인권이 교계 안팎의 다양한 영역에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지개예수>로부터 요청을 받고 난 다음 나는 몇 주간을 생각하다, 이 사안은 담임목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2018년 7월22일 주일에 교인전원회의를 소집했다. 빈들공동체의 교인전원회의는 입교인 전원이 참여하는 임시당회로 보면 된다. 이 교인전원회의에서 <무지개예수>로부터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무지개교회’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음을 알리고 교인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인들의 판단의 근거는 명확했다.
우리 빈들공동체 교인들은 모두 이성애자들이다. 교인들의 분별은 동성애자들을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혼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개, 돼지 같은 존재로 봐야할 것인지가 판단의 근거였다. 교인들 모두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은 그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죄악이라는 사실을 함께 공유했다. 하나님은 교회에 동성애자들을 차별할 권한을 주신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영혼을 가진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로 그 어떤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되며, 비록 우리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우리 빈들공동체의 일원으로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환대해야 한다는데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들도 빈들공동체에서는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영적 동반자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빈들공동체 전원회의의 결의였다.
그리고 난 다음 혹여 우리 안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그 때 가서 우리가 기도하고 토론하면서 해결책을 찾자는 것이 우리 교인들의 결론이었다. 남선교회와 여선교회 그리고 동성애자를 위한 제3의 선교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서 우리 빈들공동체교회는 기쁜 마음으로 무지개교회가 되었고, 이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예배를 위하여 교인들이 받아든 주보 표지에도 우리가 무지개교회라는 표식으로 작은 무지개를 넣고 있다.-<“이동환 목사는 두고 차라리 내 목을 쳐라” 당당뉴스 2020년 7월1일자 기고 글 중에서>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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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으로 기준을 세운다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우리 교우들이 LGBTQ 문제를 가지고 함께 토론하며 결론을 내릴 때 교인들이 분별했던 성경 말씀은 요한복음3장16절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이 성경 구절에서 [누구든지]에 LGBTQ가 포함 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교인들의 분별은 명확했습니다. LGBTQ도 우리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고귀한 존재라는 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LGBTQ에게도 문을 열고 환대해야 한다는데 누구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게 무지개교회가 되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누구든지]에 LGBTQ를 넣겠습니까? 아니면 빼겠습니까? 그게 궁금합니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그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박 목사님! 제가 섬기는 교회는 장로님이 네 분 계십니다. 한분은 원로 장로님이고, 세 분이 시무장로이십니다. 뭐가 무서워서 교인들을 못 데리고 오느냐고요?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박 목사님의 수준 이하의 역제안에 대해 응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교인들의 자존감을 위해섭니다. 감리교회가 동성애 토론을 박 목사님이 세 번씩이나 역제안하는 그런 수준 이하로 한다는 것을-우리 교우들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토론이 아닌 목회를 검증하고 망신을 주자는 그 판에 담임목사가 나서는 것에 대해서 우리 교인들이 얼마나 창피해 하고 굴욕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감리교 게시판에 껴들어서 막말의 글을 올리는 장로들의 수준이 감리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감리교단의 장로들의 수준이 감리교게시판의 얼쩡거리는 그런 수준이라면 감리교회는 절망입니다. 그 장로들에게 부화뇌동하는 목사들도 자신을 봐야 합니다.
열매 없어도 존경스러운 이들이 있습니다
“합3:17~18)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오늘 감리교회의 현실은 미자립교회가 절반이 넘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교회를 개척해서 자립교회로 성장시킨다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만성적인 영구 미자립교회가 넘칩니다. 목회자의 이중직을 허용하게 된 것은 이들 목회자들의 생계를 공교회가 책임지지 않고 미자립교회 목회자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지방은 70%가 미자립교회입니다. 저도 감리사를 지냈지만 십 수년째 미자립교회를 지키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열매 없는 목회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서도 불러주지 않고, 연줄도 빽도 없는 목회자들이 겨우 몇 명되지 않는 교인들의 영혼을 보살피며 힘겹게 목회를 하는 그분들을 저는 존경합니다.
제가 전도사시절입니다. 제18차 총회에서 저는 선후배 목회자들과 함께 총회단상점거를 하면서 마지립교회의 목회자 생활비를 교단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총회에서 미자립교회 목회자 생활비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통과된 법에 의해서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시행규칙도 제정되었습니다. 교회가 우선 미자립교회를 위해서 1% 특별부담금을 걷어서, 지방회 차원에서 심의하여 지원하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특별법은 시행되기 전에 폐기 되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대형교회들이 미자립교회를 위해서 1% 부담금을 내는 것을 반대해서 이 법은 시행되지 못하고 폐기됩니다.
저는 대형교회의 개 교회 이기주의는 동성애보다 더 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가 가진 엄청난 재물은 교인들의 헌금에서 나왔고,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당연히 공교회 안에서 가난하고 작은 교회를 보살펴야 하는 것이 대형교회가 해야 할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감리교공동체 안의 심각한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제가 본부 기독교타임즈에서 편집부장으로 일할 때는 감독이 되고자하는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내 논 공약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감독이 되면 미자립 생활비는 반드시 공교회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권선거를 막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터진 입으로 약속한 것을 실천한 감독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감독을 하겠다는 자들의 입에서 미자립교회는 사라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2016년 1월 14일 선한목자교회에서 열린 제31회 총회 임시입법의회에서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이중직 허용법’이 통과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감독이 되고자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의 삶의 고통에 대해서 입을 다물게 되었습니다. “이제 늬들 문제는 늬들이 알아서 하라” 이게 ‘미자립교회 목회자 이중직 허용입법’의 본질입니다. 그 때부터 감독에 출마하는 이들과 대형교회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은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가운데 더 외롭고 극심한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목회자의 심각한 양극화는 우리 감리교회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동료에 대해서-얼마나 인간적 예의를 상실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리교회 안에 감춰진 이 기만적인 태도에 대해서 저는 지금도 예언자적인 신명으로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교회에서
더 분노해야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금권선거 실상입니다. 수십년 전부터 우리 감리교회는 최고지도자인 감독이 영적인 지도자가 아닌 돈으로 세워졌습니다. 지금도 감독이 되고자하는 이들의 입에서 계속되고 있는 레파토리는-이러다 감리교회는 망한다-는 말입니다. 수십년 전부터 감독선거가 끝나고 당선된 감독들이 첫 번째로 한말은 이러다 감리교회가 망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당사자들의 입에서 이 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감리교 최고지도력인 감독회장 두 사람이 금권선거와 연루되어 자리에서 낙마를 했습니다. 감리교 역사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참사였습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감리교공동체는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동성애 수준의 아닌 그 이상의 수준으로 분노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려야 마땅했습니다.
저는 우리 감리교회공동체를 생각하면 이율배반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립니다. 지난 번 2019년 10월 29일 꿈의교회에서 제33회 총회 입법의회에 참석한 총대들은 금권선거를 막기 위한 제비뽑기선거를 입법안을 거부했습니다. 감리교회공동체가 계속해서 돈봉투를 주고받는 선거를 하자는-감리교회공동체의 의지를 천명했다고 봅니다. 교회가 망하든지 말든지 우리 감리교회는 감독선거라는 ‘수익모델’을 그대로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총대들의 결정은 감리교회공동체의 수준이겠지요. 박 목사님이 그렇게 주장하는 거룩한 교회를 지키려면 저는 동성애보다 이런 금권선거가 순서상 먼저였습니다.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금권선거의 실상으로 보면 이미 우리 감리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난 것이 아니라 목사들과 장로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여기 감리교게시판에 얼쩡거리면서 열을 내는 목사들과 장로들 가운데는 그런 분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미자립교회의 양극화 현상으로 보면 우리 감리교회는 인간적인 연민도 없습니다. 금권선거의 현실로 보면 우리 감리교회가 영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체인 교회에서 거룩함 지키겠다는 목사님의 의지는 높이 사나, 목사님이 열을 내는 방향은 번지수를 잘 못 잡고 있습니다. 방향이 잘 못된 길은 열심히 가는 그 만큼 돌아와야 할 길이 멀어집니다. 저는 감리교공동체의 개혁을 위하여 그냥 침묵해온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동성애 문제로 열을 내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에게만 하는 말만은 아닙니다. 동성애 반대에-살기를 느낄 만큼 전투적인 이들 모두에게-과연 그 살기가 주님의 사랑과 어떻게 연관되어있지를 성찰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평신도 교부인 락틴타우스(260~330?)는 인간의 조건으로 인간애(humanitas)를 들었습니다. 고통에 아우성치고 슬픔에 몸부림치는 이웃에게 연민과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범죄자요 살인자이며, 인간을 억압하고 혐오하고 착취하거나 온갖 형태의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이미 사람됨을 상실한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평신도였음에도 그는 함께 울어줄 능력마저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무관심 자체가 범죄 행위 임을 일깨워준 초대교회의 교부입니다.
지난 2천 동안 교회에는 수많은 죄악과 범죄적인 일탈이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오늘 날까지 교회가 지켜온 한결같은 [본질]은 거창한 신학체계나 법과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 사랑이 우리를 다 채우고 이웃을 향해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죄악 되고 문제 많은 우리 감리교회공동체를 다시 푸르게 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박온순 목사님! 목사님과 다르게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저의 토론 제안에 관심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떠나서 참 감사합니다. 목사님을 보면서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부분도 있습니다. 비록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해도, 서로가 충분하게 할 말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역제안이 나올 때부터 토론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이쯤에서 제가 글을 접어도 목사님께 결례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우리 교우들과 LGBTQ도 환대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들의 영혼을 축복하는 목회적인 과제를 다 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도 내내 목사님의 목양현장에서 평화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남재영 목사 드림(대전 빈들공동체교회,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교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