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이슈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 웨슬리안 타임즈 변영권 목사님 글을 공유합니다.

김경환
  • 1767
  • 2021-06-22 22:27:50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감리회 모임>에서 웨슬리안 타임즈에 실린 변영권 목사님 글을 공유합니다.


성소수자 이슈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

▶건강한 토론문화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창간 정신에 맞춰 감리회 안에서 갈등 요소가 되고 있는 '성소수자'(동성애자)에 대한 이슈를 자율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장을 마련하기로 한다. 이동환 목사의 인천퀴어축제 축도를 계기로 감리회 안에서 뜨거운 공방이 일었지만 정작 신학적인 논쟁이나 이론의 '주고 받음'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얕은 성경구절이나 감정으로 대립의 구조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건강한 토론문화를 통해 상호 신학적 입장이나 성경해석에 대해 충분히 '주고 받음'으로서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높이고 '이해와 존중'의 틀에서 일정부분 합일된 입장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뜻을 품고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모임>에서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주 1회)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기로 했다. 이에 대한 반론을 환영하며 기다린다. 비록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글을 통한 토론'이지만, 한층 발전적인 토론문화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줄로 믿는다. 특별히 <거룩성 회복을 위한 모임> 측의 적극적인 반론 제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오늘은 첫 번째로 변영권 목사의 글을 게재한다.<기자 주>


저는 몇 해 전 우연한 계기로 성 소수자와 관련한 이슈들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 지향은 질병이 아니며, 치료 대상도 아닙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국가들, 각 분야의 의료단체들은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점을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 왔고, 전환치료 같은 비과학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들을 점차 제도적으로 금지해 가는 추세입니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APA)의 “정신 장애진단 및 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에서 동성애가 정신장애 분류에서 제외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관련 단체들의 동일한 입장표명이 있어 왔고,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에서도 동성애는 제외되었습니다. 최신의 DSM-5에서도 동성애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고, 2016년 3월 우리나라 정신의학회도 소속되어있는 세계정신의학회(WPA)는 최종적으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논란을 종결지었습니다.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동성애 단체들의 로비로 인해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구들을 몇십 년 동안 배후에서 조종할 수 있는 권력이 성 소수자들이나 단체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황된 음모론적 시각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성 소수자들의 건강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은 동성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성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나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 소수자들을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그들을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게 만들며, 일반적인 의료 시스템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AIDS(또는 HIV) 같은 질병은 현재 당뇨나 혈압과 같이 약물 복용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게이들의 항문성교가 에이즈 전파 경로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동성애자들이 항문성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성애자 중 상당수가 항문성교를 한다는 점에서 정확한 지적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 문제는 피임구를 사용하는 안전한 섹스, 정기적인 건강 진단 등으로 예방해야 할 문제이지 항문성교 자체를 정죄할 일은 아닙니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주요 감염 경로가 이성 간의 삽입 섹스라는 이유로 성행위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동성애의 원인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 만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믿어서인지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동성애를 후천적이고, 개인의 선택이며, 일종의 변태 성욕이기 때문에 치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모두가 이용하는 국내의 유명 대학병원, 종합병원 중 동성애 치료를 하고 있는 병원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사실 선천적이라고 해서 치료 불가능하거나 후천적이라고 해서 치료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장애나 질병은 선천적이지만 치료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후천적이지만 치료 불가능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은 동성애의 발생 원인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현재는 과거에 비해 그런 연구가 비교적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려던 과거와는 달리, 동성애는 일정 비율로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치료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그 원인을 밝힐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성애의 발생 원인을 연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 들은 바로는, 동성애는 한두 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다양한 유전정보의 복합적인 작용 때문에 발생한다는 정도까지 밝혀졌다고 합니다.

둘째, 법과 인권의 차원에서 개인의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보편 인권에 관한 의식과 제도가 발달하고 민주주의가 깊이 뿌리 내린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에서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제도적으로 금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신념이나 교리가 다른 사회 구성원의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만일 국내의 이슬람교 신자들이 돼지고기를 금지하자는 운동을 벌이거나, 삼겹살 축제에 와서 난동을 부린다면 어떨까요? 아무도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같은 사적인 영역은 타인에 의해 침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인권 문제는 여전히 논의 중인 부분들이 있고 발전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한때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습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은 백인들이 만든 법과 제도에 의해 차별받아 왔습니다.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은 요즘도 여전합니다.

성 소수자들은 어떨까요?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성 소수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이 철폐되는 중이고, 아시아 최초로 대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최근 관련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 소수자에 대한 대표적인 차별이 결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부부가 결혼하면 담당 행정기관에 혼인신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개인 간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자신들의 결혼 사실을 신고하는 것입니다. 그 신고에는 별다른 조건이 없습니다. 성인들 간의 합의된 관계면 인종이나 나이 차이, 질병 유무, 기타 어떤 것으로도 그 결혼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다만 단 한가지 제한이 있다면, 그것은 이성 사이의 결혼에만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동성 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은 출산과 자녀 양육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동성 간의 결혼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재 수많은 사람이 자녀 없이도 가정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만일 출산이 결혼의 중요한 조건이라면 생식능력이 사라진 노년의 결혼이나 재혼 또한 금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반동성애자들의 논리입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이 파트너를 자주 바꾸며 문란한 성생활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결혼이라는 법적 구속 관계를 허용함으로 그들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백년해로하도록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 중에는 동성애, 또는 동성결혼을 허용하면 수간, 소아성애, 근친결혼, 일부다처제 등도 허용될 것이라는 선동적인 주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들의 상호 간에 합의된 사랑과 감정의 교류, 그리고 성적인 기쁨을 기반으로 하는 동성 간의 사랑을, 그러한 합의 관계가 가능하지 않은 수간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13세 미만의 아동 대상의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소아성애와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습니다.

근친혼의 경우, 사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인류는 태초부터 근친혼 관계였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몸 일부로 만든(유전적 일치) 하와와 결혼했고, 카인은 누구와 결혼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여동생 중의 하나와 결혼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복 남매 사이였습니다. 근친혼은 문화에 따라 상당히 허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많은 경우 남성 가족이 여성 가족에게, 연장자가 연하에게 행하는 성폭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금기시하고 법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부다처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허용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성서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고 허용된 풍습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평등의 관점에서 중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수간, 소아성애, 근친혼, 중혼의 문제들을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십여 년 동안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서구사회에서 수간이나 소아성애, 근친혼, 중혼 등이 차례로 합법화된 경우는 없으며, 오히려 성 소수자의 인권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동물이나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수간이나 어린이 대상 범죄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저는 법이나 의학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이상의 더 깊은 공부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오랜 역사 동안 이런 사회의 변화나 다양한 발전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뜰 때마다, 그 새로운 지식과 성서를 바탕으로 한 교회의 전통이 충돌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지구의 역사는 6천 년이 아니며 인간은 오랜 진화를 거쳐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교는 성서를 포기하거나 반대로 과학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더욱더 성서를 깊이 연구하고 새로운 해석의 길을 찾아냄으로서 과학과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우리의 신앙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부정하면 지구가 평평해질까요? 우리가 빅뱅 이론을 부정하면 우주가 팽창을 멈출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성서 앞에서 우리 지식과 이해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전통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풍성하게 하면서도 교회 울타리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새롭게 펼쳐 나갈 책임이 있습니다.

동성애 문제도 같은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고,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성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할까요? 성서에 명백하게 쓰여 있는 동성애 금지에 관한 본문들은 어떤 다른 해석이 가능할까요?

알다시피 성서에는 동성애, 정확하게는 동성 성행위를 명확하게 금지하는 몇 개의 구절들이 있습니다.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사건, 레위기 18장과 20장에 나오는 규정들, 그리고 로마서 1:17, 고린도전서 6:9, 디모데전서 1;10, 유다서, 그리고 경우에 따라 구약에 몇 번 언급되는 '남창'(신명기 23:17, 열왕기상 14:24)을 동성애를 금지하는 본문들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해당 구절들은 문자적으로 볼 때 동성 간의 성행위를 금지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서를 해석할 때 언제나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비유로, 어떤 것은 상징으로, 어떤 것은 성서 저자의 특수한 상황에 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해당 본문들은 어떨까요? 문자적인 해석 외에 다른 해석은 전혀 불가능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면 관계상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몇 가지만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이지 동성애자들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란 동성애를 안 하는 이성애자가 아니라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온 천사들을 영접하고 보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에스겔 16:49>에서는 소돔의 죄를 "네 동생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다. 소돔과 그의 딸들은 교만하였다. 또 양식이 많아서 배부르고 한가하여 평안하게 살면서도,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라고 지적합니다. 마태복음 10장과 그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10장에서도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관한 문맥 속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할 뿐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사사기 19~20장의 어느 레위 사람과 첩에 관한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집 나간 첩의 친정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소돔과 마찬가지로 동네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을 (성)폭행하려고 합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내보냈고, 불량배들은 밤새 그 여자를 성폭행하여 죽게 만듭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베냐민 지파는 거의 멸망에 가까운 패배를 당합니다. 만일 소돔의 멸망이 천사(남자?)를 성폭행하려던 소돔의 동성애자들 때문이라면, 베냐민의 멸망은 레위인의 첩(여자)을 성폭행한 기브아의 이성애자들 때문이라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베냐민 지파의 패배 역시 나그네를 돌보지 않았던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레위기의 구절들은 성서를 기록한 고대인들의 다양한 풍습과 함께 나옵니다. 레위기를 읽어 본 분들은 알겠지만, 레위기에는 현대인들이 문자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들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비롯한 각종 식자재에 관한 규정, 혼합 작물이나 머리 모양에 관한 규정 등이 담겨 있으며, 그것은 고대인들이 가졌던 자연/부자연, 정결/부정결의 문제와 연결된 관습들이지 현대인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은 아닙니다. 그 수많은 규정 중 오직 동성 간의 성행위 금지에 관한 구절만을 수천 년을 뛰어넘는 불변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구약에 여섯 번 정도 나오는 '남창'("카데쉬", 신 23:17, 왕상 14:24, 왕상 15:12, 왕상 22:46, 왕하 23:7, 욥 36:14)은 주석이나 사전을 찾아보면 이방 종교의 신전에서 행해진 성적인 행위와 관련된 단어라고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 역시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23:17에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창'과 함께 등장하는 '창기'라는 단어는 '성전의 창녀, 또는 창녀'를 의미하며, 마찬가지로 이방 종교의 신전에서 행해진 성적인 행위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남창"을 동성애를 금지하는 단어로 해석하려면 "창기"는 이성애를 금지하는 단어로 해석해야 하는 난관이 부딪히게 됩니다. 저는 이 단어들이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이방인들이 행했던 음란한 행위에 대한 금지 규정이지 일반인들의 성생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신약 바울서신의 본문들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과 디모데전서 1:10에 나오는 "여성 노릇"(말라코스), "동성애"(아르세노코이테스)라는 단어는 오직 바울만 사용한 단어라서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이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1:27에서 언급한 구절은 로마서 자체에 관한 전반적인 해석의 문제-로마 시대의 문화와 가치관, 황제 숭배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포함합니다.

아마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로마서의 난해함에 관한 제 이야기를 대부분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복잡한 논증들을 떠나서, 바울은 1세기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주몽과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던 전설의 시대와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그런 고대인이 특정 시대의 특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쓴 편지, 즉 특정 지역 특정 인물들을 향한 가르침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바울서신을 읽어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편지에는 1세기,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부장주의, 남성, 유대인, 종말론적, 그리스도인이라는 복잡한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내포되어 있지만, 바울이라는 인간의 성향과 기질 또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 중에는 여자들은 잠잠하라, 남자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 남자는 머리 기르지 말고, 여자는 쇼트커트 하지 말라, 장신구 많이 하지 말라, 될 수 있으면 결혼 안 하는 것이 좋지만 성욕을 견딜 수 없으면 해도 된다는 등, 바울 자신의 인간적인 편향이 담겨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는 바울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하면서도 그런 세세한 규정들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어떨까요?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바울이 일생을 걸고 선교 여행을 했던 목적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동성애(해당 구절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면)는 그가 생각한 불의한 세상의 한 단면이었을 뿐입니다. 사랑 없고, 폭력적이고, 신분과 계급으로 착취하는 성행위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구절들을 근거로 현대의 동성애-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삶을 함께 계획하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를 정죄한다면 그것 역시 불의한 일입니다.

최근에 저는 기회가 되어서 미국 성공회 주교인 존 쉘비 스퐁의 저서 두 권을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90세를 바라보는 노 주교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쓴 그 책들의 중요한 주제는 성서 문자주의의 폐단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스퐁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미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 인종 차별, 여성 차별, 성 소수자 차별, 타 인종 간의 결혼 반대, 백신 반대, 낙태 반대 같은 문제의 근원에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성서 문자주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성서를 읽어야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이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소중한 가치들을 전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그것을 자신의 성서 해설에 담았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과 관련된 인종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차별과 혐오의 문제도 두드러진 사회 갈등 중의 하나입니다. 거기에 차별금지법과 성 소수자 문제까지 더해졌습니다. 아마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성서가 인종 차별적인 책, 여성 차별적인 책, 반 지성적인 혐오와 선동의 근거가 되는 책으로 사용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답들을 찾아야 합니다.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모임에서 제안하고 웨슬리안 타임즈에서 열어준 이 소중한 지면들을 통해 지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설익은 저의 생각을 글로 전합니다.

황기수 기자 hwang-gi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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