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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국적인 감사 예배 cf. 맥추감사절
최세창
- 1631
- 2021-06-28 21:52:56
(역대하 5:11-14)
11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차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12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이십 인이 함께 서 있다가 13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14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 시작하는 말
탈북민 모자가 굶어죽고, 기업들이 힘들어 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먹고 살기 힘들어 하고, 대학 졸업 후에 재수, 삼수, 수십수를 해도 취직이 안 되어 고민하고, 취직을 포기한 채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주거 문제와 자녀 양육비 문제로 결혼도 못하는 이때에 감사절 설교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평과 원망의 조건이 있으면 맘껏 불평하고 원망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많이 하면 할수록 조건이 나아지기는커녕, 우울증이나 화병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꿀 생명을 주시고, 불신앙과 죄로 멸망할 인간들에게 믿기만 하면 구원받도록 메시아 약속을 하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2. 거국적 감사 예배와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
범사가 잘되어 좋은 일들과 유익한 일들이 생기면 감사하기가 쉬운데, 반대의 경우에는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감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생에 감사 거리보다 불평과 원망 거리가 훨씬 더 많은 것을 잘 알고, 복음을 전하느라 핍박과 환난을 많이 겪은 바울 사도는 놀라운 말씀을 전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피조성과 죄성, 유한한 가능성과 자율성, 상대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을 지닌 인간 위주와 인간 본위가 아니라,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위주와 하나님 본위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삶의 기본이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조건에 따라 기쁨과 감사, 혹은 불평과 원망을 하던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체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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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모든 성구를 만든 후에, 다윗 왕이 하나님께 바친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성전 곳간에 두었습니다. 그런 뒤에, 모든 제사장과 온 백성을 소집하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 모셨습니다. 그리고 거국적인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특별한 거국적 감사 예배 때에는 제사장들이 차례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이 거국적인 감사 예배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좋고 유익한 일들이 생겼고, 범사가 형통했기 때문에 드린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솔로몬 왕 때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느라 물질을 바쳤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온갖 기술 등을 바쳤고, 또 성전에서 쓸 모든 성구들을 만드느라 남은 것들마저 바쳤습니다. 주머니가 비고 심신이 탈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백성이 총동원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감사 예배였습니다. 모든 제사장들이 다 스스로 정결케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노래하는 레위인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의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았고, 나팔 부는 제사장 120명이 함께 서 있다가 성가대와 더불어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했습니다.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자비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우리가, 기쁨과 감사를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선과 자비를 힘입어 영생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기뻐하며 감사를 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장차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우리가, 현세의 일시적인 가난과 고난과 불행 때문에 감사를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죄 사함과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우리의 삶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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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사랑이 아닌 야욕인 성공과 출세를 위해 거짓과 위선, 모함과 아부, 뇌물 공여와 공금 남용 등의 죄악 수단을 동원하다가 뜻대로 안 되면 불평과 원망을 하고, 남 탓이나 부모 탓을 하지 않습니까? 생각이 다르고,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낳아 길러 주신 부모를 적대시하는 자녀들도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기쁨과 감사를 모르는 인생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복을 세어 보는 문제이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믿는 우리는 점점 더 기쁨과 감사를 잊어 가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면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좇아 기도하고, 말씀을 순종하여 받은 은혜와 복, 재능과 소질, 지식과 지혜, 기술과 정보, 몸과 마음, 뜻과 정성을 다해 보은의 심정으로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가난한 인도 여인이 선교사를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선교사에게 자신의 외아들이 중병에 걸려 있다고 하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살려 주시면 자기 소유 중 가장 귀한 재물인 보석 반지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에, 인도 여인이 다시 선교사를 찾아와서, 그 보석 반지를 선교사 앞에 내어놓으면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교사는, 밝은 얼굴로 물었습니다. “아들의 병이 나았군요?” 여인의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 아들은 어제 죽었습니다. 하지만 이 반지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우리 아들의 육신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아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 이 반지를 바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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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의로는 원망할 수밖에 없지만, 믿음으로는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기쁨은 기쁨을 부릅니다. 불평은 불평을 부르고, 원망은 원망을 부릅니다. 이유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선하시고 자비로우신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지 않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3:37을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느라 바빠지니까 시간이 아깝다고 예배를 빠지고, 풍성한 복을 받느라 수입이 많아지니까 재물이 아까워서 헌금을 줄이는 교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날개 아래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시험과 환난으로 한가해지고, 재물이 날아갈까 걱정입니다.
솔로몬 왕과 모든 백성은 온 영과 전심전력을 다해 성전 건축과 성구 제작을 마치고, 거국적인 감사 예배를 드리며 온갖 것을 동원하여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능히 서서 예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전에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구름이란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온갖 것을 동원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열정적인 찬송을 하며 감사하는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한 것입니다.
한 40년 전에, 분식집에서 벽에 붙은 재미있는 글을 읽었습니다. “어제도 오시더니 오늘도 오시는군요 내일도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낮 예배에도 오시더니 오후 예배에도 오시는군요. 수요 예배에도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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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아니고는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세상의 어떤 대가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결정적인 만남은, 우리가 주님이 머리이신 교회에서 온갖 것을 총동원하여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며 감사 찬송할 때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온 영과 전심전력을 다해 예배드리는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생명에 활력과 생기를 더하는 신령한 양식이고, 지혜와 능력이고, 문제 해결의 열쇠이고, 영원한 천국행 인생길의 빛이고, 영적 싸움에 절실한 성령의 검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순종하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쁨 위에 기쁨, 감사 위에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하고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말씀을 받지 못했다면, 웅장한 교회에 앉아 있었다고 해도 제대로 예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온 영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맺음말
모든 사람, 특히 지도자와 위정자와 공직자들은 거짓과 위선, 사리사욕과 당리당략, 이념과 사상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피조성과 죄성, 가능성과 제한성, 상대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국민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인생의 기본인 감사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마음가짐입니다. 기쁨은 기쁨을 부르고, 감사는 감사를 부르고, 불평은 불평을 부르고, 원망은 원망을 부릅니다. 우리 모두 온갖 것을 동원하여,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 예배를 드림으로써, 선과 자비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받고, 새로운 은혜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