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진실유무(眞實有無)

함창석
  • 1071
  • 2021-07-13 15:47:20
<진실>

성경: 베드로전서 2장 22-23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진실성

그리스도는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거짓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욕을 당할 때도 욕하지 않고 고난을 당할 때도 위협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 아내 삽비라와 의논하고 땅을 팔아 그 돈에서 얼마는 감추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가져왔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째서 당신은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성령님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감추었소? 땅을 팔기 전에도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었소? 그리고 땅을 판 후에도 그 돈을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았소?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되었소? 당신은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쓰러져 죽자 이 소문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때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그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 묻었다. 세 시간쯤 지난 후에 그의 아내가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베드로가 그녀에게 "땅을 판 돈이 모두 이것뿐이오?" 하고 묻자 그녀는 "예, 이것뿐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째서 당신들은 서로 짜고 주의 영을 시험하려고 하시오? 당신의 남편을 묻고 오는 사람들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이번에는 당신을 메고 나갈 것이오." 그러자 즉시 그 여자도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죽었다. 그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여자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녀의 남편 곁에 묻었다. 그래서 온 교회와 이 소문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행 5:1-11)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내 주인은 나아만이 준 선물을 하나도 받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지만 나는 달려가서 그에게 무엇이든지 좀 얻어 와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나아만의 뒤를 쫓아갔다. 나아만은 한 사람이 뒤 쫓아 오는 것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그를 맞으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내 주인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며 에브라임 산간 지대에서 두 예언자의 생도가 왔다고 그들에게 줄 은 34킬로그램과 옷 두 벌을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은 68킬로그램을 받으시오" 하고 억지로 그 은을 두 자루에 넣어 옷 두 벌과 함께 그의 두 사환에게 주어 게하시 앞에서 메고 가게 하였다. 그들이 엘리사의 집 앞에 있는 언덕에 이르렀을 때 게하시는 그 물건을 받아 놓고 두 사환을 돌려보낸 다음 그것을 자기 집에 감추었다. 그러고서 그가 주인에게 나아가자 엘리사가 물었다. "게하시야, 어디 갔다 왔느냐?" "아무 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주인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가 영으로 그 곳에 있었던 것을 너는 깨닫지 못했느냐? 지금이 돈이나 의복이나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종을 받을 때냐? 이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너와 네 자손에게 옮겨 붙어 대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게하시가 엘리사 앞에서 물러나오자 그가 문둥병에 걸려 피부가 눈처럼 희어졌다.(왕하 5:20-27)

어원상 사도는 특별한 위임을 받고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신약의 '아포스톨로스'와 짝을 이루는 구약의 히브리어는 '솰리아'이다. '솰리아'는 바로에게 보냄을 받은 모세(출 6:11), 아합에게 보냄을 받은 엘리야(왕상 18:1) 등에게 사용되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사도라고 친히 말씀하셨다(막 9:37; 요 13:20).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서 자기의 사도로 12인을 선택하셨다(마 10:2-4).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기셨으나,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히 사도로 임명되었음을 진정으로 자각하게 된 것은 부활 이후였다(마 28:16-20). 12사도 가운데서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보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마 17:1), 베드로는 가끔 대표의 역할을 담담하였다(마 16:16). 사울의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교회들로부터 사도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부활하신 주께로부터 직접 사도직을 위임 받았다고 주장하였다(고전 9:1; 15:8; 갈 1:15-17). 그는 12사도들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으며, 그의 사역 또한 12사도들처럼 하나님의 자비로운 인도와 보호 하에서 이루어졌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도록 특수한 방법에 의해 선택된 마지막 사도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와(고전 15:7; 갈 1:19) 바나바도(행 14:4,14) 역시 사도로 불리었다. 고후 8:23에 나타나 있는 '형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자라는 의미를 지닌 '사도'를 가리키며, 이와 같은 호칭이 에바브라디도에게도 붙여졌다(빌 2:25).12사도들은 예수께로부터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마 10:1; 28:18-20). 또한 그들은 교회의 규범을 결정하고 교회를 치리하며(마 18:18),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요20:21-23) 권세를 예수께로부터 받았다(참조. 마 16:19). 더구나 그들은 성령의 인도와(요 14:26; 15:26-27; 16:13-15; 행 1:8) 아울러, '음부의 권세'로부터 보호될 것을 보장받았다(마 16:18). 그들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12지파를 대신하는 신약 교회의 대표자들이며, 지도자들이었다. 12사도는 모든 교인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파해야 할 임무를 맡은 교회의 핵심 구성원들이었다. 교회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문자적 용법으로는 사람과 동물 몸의 제일 윗부분을 가리킨다(예. 창 49:26. 마 5:36, 레 3:8. 왕하 6:25). 나아가 이 용어는 또한 무생물의 꼭대기 부분을 표현하기도 한다(예. 삼상 5:4, 시 24:7,9).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머리 보다 마음이 지성과 상상의 중추였다(참조. 단 2:28, 4:5,10,13 뇌). 하지만 여러 방식으로 머리는 인간 주체성의 상징 또는 초점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굴복시에는 머리를 숙이고(요 19:30, 삿 8:28) 우월감을 느낄 때에는 머리를 드는(시1 40:9) 것과 같은 동작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사람의 범죄 행위는 그의 머리로 돌아간다(예. 수2 :19, 행 18:6). 바울은 기도나 예언을 할 때에 남자는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아야 하며, 여자는 써야 한다는 당시의 관습을 지지하였다(고전 11:2-16). 은유적 용법으로 이 용어는 중요한 인물, 즉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서열이 높고 명예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예. 출 6:14,25, 사 7:8-9). 나아가 이것은 어떤 근원이나 출발점을 나타내는데(예. 겔 16:25; 참조. 출 12:2)이 의미는 특히 헬라와 영지주의 문헌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로 표현하고 있다(엡 1:22-23 골 1:18). 골 2:19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교회가 양식을 공급 받고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는 바로 그 근원이다. 하지만 바울이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 순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권위를 암시했는지(고전 11:3) 아니면 단순히 창조의 순서를 묘사(즉, 근원으로서의 머리)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자들에 따라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견해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는 상호 의존적인 것이다. M. Barth Ephesians4-6, AB 1974.

그 날 저녁, 곧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무서워 문들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었느냐?" 하셨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양손과 옆구리를 보이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이 용서를 받을 것이며 너희가 용서하지 않으면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중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주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 자국을 보고 또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며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일 후에 제자들은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고 거기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다. 그때도 문이 잠겼는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었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요 20:19-29)

아나니아나 삽비라 부부처럼 소유에 있어서는 그 절박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엘리사나 게하시처럼 서로 선물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에 대한 영적인 과제와 소유에 대한 육적인 과제가 때로는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갈등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거짓이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함을 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소유나 존재에 있어 문제를 삼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의 진실함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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