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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이신 증거인 기적의 치유와 축귀 cf. 비신화화론
최세창
- 1137
- 2021-07-13 00:19:52
(누가복음 4:40-44)
40해 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니라 42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하시고 44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1. 시작하는 말
옛날이야기입니다. 호랑이 사냥꾼이 야생마 사냥꾼에게 호랑이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인정하지 않고, 제주도의 야생마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우겼습니다. 산 채로 잡아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밧줄과 재갈과 몽둥이를 가지고,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극구 말리던 호랑이 사냥꾼이 나타난 호랑이를 보고 일러주자, 살금살금 다가간 야생마 사냥꾼이 잽싸게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서 목에 밧줄을 걸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엉덩이를 몽둥이로 후려쳤습니다.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놀란 호랑이가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야생마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걸 깨달았지만 늦었습니다.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고수하여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고, 그 증거인 기적의 치유와 축귀를 허구라고 하는 대가와 지성적 교인도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는 이성으로 아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이 구주이신 증거인 기적의 치유와 축귀
예수님의 선교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각종 종교 행위로 구원받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주로 오신 자신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하는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병 같은 신들린 고통을 주는 귀신들을 쫓는 축귀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난치 또는 불치의 환자들을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치유와 축귀는 복음의 요소들입니다.
전도사 시절의 저처럼, 복음은 믿으면서 축귀와 치유의 기적은 부정하는 신학자들과 교역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서, 오신다고 약속된 메시아이시냐고 질문한 사실과 마태복음 11:5 이하의 예수님의 답변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의 기적의 행위는 메시아적 의미를 갖는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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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질 적에, 각색 환자가 있는 사람들이 다 환자를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님이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쳐 주셨습니다. “해 질 적”은 유대의 하루가 해 질 때부터 다음 날 해 질 때까지이므로, 안식일이 끝난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끝난 후의 치료는 율법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그 때를 기다려서 각색 환자가 있는 사람들이 다 환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병 고치는 은사가 없다고 그런 환자를 사랑할 방도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를 기적의 치유자로 소문이 자자한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들처럼, 사랑의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도 값진 사랑입니다. 어떤 신학자들과 교파에서는, 기적의 치유는 사도 시대까지 있다가 끝났다고 하는데 틀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없어지신 것이 아니라 부활‧승천하셨고, 은사를 받은 이들을 통해 계속 치유와 축귀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2016년 6월의 어느 오후에, 홍 집사님이 전화했습니다. 전도받아 교회에 잘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이 계속 어지러워하며 토해서 병원에 갔는데 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아파서 출근도 못했다고 하면서 기도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몹시 반가워했습니다. 홍 집사님에게 들었다고 하면서 얼마나 아프면 출근도 못했냐고 하고는, 조심스럽게 전화로 기도를 받겠냐고 했습니다. 좋다고 하여 간절히 기도하는데 치유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주일에 교회에서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2016년 6월 12일 주일 예배가 끝나자 반갑게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니 좋아했습니다. 안수기도를 끝내고, 늘 하던 대로 아내의 몸에 계시가 오는 대로 환자의 몸의 같은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가 통증이 없어졌다고 하면 떼곤 했습니다. 손가락을 대거나 누를 자리가 많아서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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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기도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어서, 오후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마무리하자고 하고는, 오후 예배 후에 아내의 몸에 계시되는 대로 환자의 몸의 같은 자리를 저와 아내의 손가락으로 통증이 없어졌다고 할 때까지 대거나 가볍게 눌렀습니다. 환자가 평소에 늘 몸이 무겁고 힘들었는데 가벼워졌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6월 19일 주일에, 출장 가는 남편을 공항까지 태워 주고,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기적의 치유에 대해 “저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의아해하던 그 남편의 생각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의 마음대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주님의 도구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온 환자들을 보시고,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쳐 주셨습니다. 환자들을 집단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각 개인을 일일이 돌보시는 지극한 사랑으로 치료하신 것입니다. 마치 사랑할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환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으신 것은, 부정한 환자에게 접촉하면 부정해진다고 하는 정결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주의 권위로 어떤 법이나 제도보다도 고통 중에 있는 인간을 위한 사랑을 더 중시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이끌려 온 환자들 중에는 귀신들린 자들도 있었고, 그들 역시 치유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귀신들이 나가며 붙잡혔던 환자의 입을 통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육이시자 약속대로 오신 영생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하는데, 어느 정도 영적 지각이 있는 귀신들은 알고 소리지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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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그러나 구주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시며 그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축귀와 치유를 행하는 기적 행위자인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지는 것을 막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 환자와 귀신들린 자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자들은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은 귀신들을 쫓아내심으로써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 두 종류의 환자들과 그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와 천국이 가까웠음을 선포하러 오셨으나, 그들은 다만 고통과 고난으로부터의 구조만을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주 예수님의 구주로서의 인간적 고독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주 예수님의 사람들은 고독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보잘것없어도, 신뢰하여 찾아온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기적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을 주 예수님께 인도해야만 합니다. 실상,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다 구주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영생의 구주 예수님이 존재하시는 한 인생에 절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날이 밝으매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의 자리를 떠나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아 만난 무리가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고 했습니다. 십중팔구 그 무리는 예수님에게서 복음을 듣고 믿기 위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소원 성취를 위해 예수님을 찾았고, 또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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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무리에게 예수님은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라고 말씀하신 후,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영생 구원의 복음보다도 기적의 치유를 더 바라는 무리와 달리,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다른 동네 곧 모든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ύ θεού)인 천국은 예수님의 교훈의 기본 주제이며, 핵심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현세이든지 내세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현세에서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은, 죽어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만큼이나 막중합니다. 최소한 우리의 마음이나 가정이라도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3. 맺음말
예수님의 기적의 치유와 축귀는 구주이신 증거이며, 그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기쁨과 감사와 감격은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병이나 노환이나 사고나 기타 원인으로 반드시 죽음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막중한 일은,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기적의 치유와 축귀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성령으로 인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답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복음 선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