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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모순 그리고 위험성]
박온순
- 1681
- 2021-07-28 13:24:27
1.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는 이들의 모순과 위험성
박교수는 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이해함에 있어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혐오와 차별을 하는 것은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있다고 한다. 박교수가 말하기를 “다양한 견해를 인정한다 해도 토론의 공통적인 기준점을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로부터의 탈피”라고 주장하면서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매여 있는 한 실질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라고 전제를 한다. 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며 모순적인 발언인가?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어떠한 것이어도 수용할 수 있는 넉넉함으로 받아들여야지, 자신들이 정해 놓은 틀을 깨면 문자주의고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들은 적이며 비상식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이야말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타자에 대한 차별이고 혐오 아닐까? 이러한 모순에 대하여 지적하면서 그의 주장은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것 같지만 신학자로서 얼마나 진리에서 벗어난 논리이며 위험한 것인지 다음과 같이 반박하는 바이다.
박교수가 주장하기를 “성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도 탄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화학당은 어떻게 세워진 학교인가? 복음을 들고 이 땅에 찾아온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 아닌가? 그들의 희생과 사랑의 수고를 통해 세워진 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학자라는 사람이 성경에 대한 기준도 없으니 그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도 심히 우려 하지 않을 수 없다.
박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성경은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인간이 누구를 구원한다는 말인가. 인간은 뼈 속 깊이 죄에 물들어 있다. 그러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대체 누구를 구원한다는 말인가. 성경은 전적인 타락을 한 인간은 스스로의 구원을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선포하시고 그 언약들을 성취한 책이다. 그러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한 책이기도 하다.
또한 “성경은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라고 하는데 박교수는 그렇게 오류가 많은 책을 가지고 그동안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왔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또한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성경이 절대 진리라면 그 진리를 저버리고 자신의 소견을 따라 가르친 그 결국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도 묻고 싶다.
만일 박교수의 논리가 진리라면 나는 기독교인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종교,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기독교가 이러한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면 꼭 기독교인이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언제라도 필요할 때마다 가감해도 되는 것이라면 왜 꼭 성경이어야 하는가 말이다.
박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해도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만큼은 분명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목사요 신학자들이라면 이해를 넘어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안에 누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신학’이란, ‘신에 대한 학문을 연구’하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기준은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나? 성경이어야 하는 것은 기본인 것을 그 기본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없이 내가 원하는 것만을 취하고 불편한 것은 문자주의라 하고 성경을 난도질하는 것이 신학인가? 이러한 방법들이야 말로 이단들이 취하는 방법 아닌가?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한다. 그 선언 속에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존하심과 영원한 존재임에 대한 계시를 성경 처처에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과 속성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론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무엇이라 밝히고 있는가? 본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교제가 가능하였으나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된 전적인 타락을 말한다면 이 또한 문자주의에 갇혀 있어 대화 할 수 없다고 말하겠는가?
흙에서 지음 받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의 최종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의 유전을 이어 받아 하나님을 알만한 능력도 상실하고 스스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구원 계획을 말한다면 이 또한 신화라고 하겠는가?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진리의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는 성경은 전혀 이해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 갈 수도 없다고 하신 말씀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회개케 하시는 은혜를 입을 때 가능한 것이다. 거듭남도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 가장 큰 복은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존재(죄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믿어지는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말씀을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고 박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문자주의에 갇힌 것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며 살게 된다. 이는 기록된 말씀이 실제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은혜를 입고 보니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하여 LGBTQ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도 그 생명 길로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성경을 모른다 하고 성소수자들을 차별한다고 하며 혐오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베푸시는 그 은혜를 입지 못한 자가 아닐까 싶다. 높아진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멸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한 자들에게서 나오는 말은 목사요, 신학자일지라도 성경을 말하나 사람의 소견일 뿐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망의 길을 가면서도 알지 못하고 모순된 삶을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니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아니겠는가.
더우기 이러한 자들이 목사일 때, 신학교 교수일 때 생명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그 위험성을 그 무엇으로 표현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