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 교수• 혐차반모에 대한 반론- 이유 그리고 결론]

박온순
  • 1553
  • 2021-08-03 01:32:44
박경미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으로 앞서 2회차 쓴 글에 이어 본 글에서는 “이유 그리고 결론”이란 주제로 반론하고자 한다. 박교수의 주장이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 생각하기에 그 이유에 대하여 반론하고 결론적으로 그러한 이론은 이 시대에 심각한 이단사상들임을 논하고자 한다.

특히 첫번 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는 박교수의 논리만이 아니라 감리교회 안에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는 혐차반모 회원들과 퀴어신학 운운하는 자들의 논리도 한 뿌리요 같은 입장이기에 박경미 신학자의 주장을 들어 같은 입장을 가진 자들에 대한 반론을 겸하여 한다는 것을 상기하는 바이다.

3. 이유

1) 반성경적인 방향성

박교수가 성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갖게된 배경 가운데 또 하나(첫째는 2회 차에서 언급)는 지도하던 학생중 성소수자가 있었는데 그 학생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소수자들을 위해 이대에서 세미나도 개최하고 적극적으로 돕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학교측과 기독학생들의 반대가 극심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성사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 가운데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그 이름의 능력을 믿으며, 초대교회적이고 전통적인 성경관이 분명한 신학자인 교수라면 또는 목회자라면 그 학생을 어떻게 도와줬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렇게 돕는 길 밖에 없었을까?

왜냐하면 나 또한 성경대로 믿고 가르친 경험(박교수의 앞선 글에서 경험을 중시하는 듯한 논리를 전개함)에 의하면 박교수가 성경을 과학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하나 정신과 의사도 포기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온전해진 일이라든가, 삶에 절망을 느끼고 온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어 온 가족이 새롭게 된 일이라든가 과학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을 목회현장에서 현재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박교수가 말하는 성경은 역사적으로 오류가 많은 책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무능한 인간이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며 수용할 수도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언젠가 동해 바닷가에 갔을 때 아무리 거칠고 넘실대는 파도일지라도 뭍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를 성경을 읽으며 깨닫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5:22)

그러므로 박교수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화여대는 기록된 말씀으로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고자 만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졌고 복음의 씨앗을 뿌려 오늘에 이른 것이련만 그러한 이화여대에서 박교수는 성경을 경멸히 여기며, 동성애에 빠진 자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이단으로 규정한 임보라 등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이것이 과연 신에 대하여 연구한다는 신학자로서 할 짓이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그 여학생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당당하지 못했던 동성간에 연애가 당당해진 것? 아님 결혼까지 하도록 장려하여 함께 사는 것? 또한 성경을 멸시할 정도로 세상적인 해박한 지식(?)으로 신학자로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2) 반성경적인 이유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을 지적하는 부류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사실 해체주의자들이다. 그러한 해체주의 사상은 전통적으로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전통적인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며 자의적으로 해석을 한다.

한 예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를 인용하여 하나님은 전능자이기에 동성애자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러한 이론도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할 때 또는 위로가 필요하고 이론을 뒷받침 해줘야 할 어떤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그토록 경멸하는 문자주의적 해석을 차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을 ‘전능자’라 하지만 과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 땅에 오신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내신 하나님의 그 절대권위와 위엄을 인정하기나 하는가? 그들에게 있어 또 다른 상황이 되면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는 성경을 전혀 모르는 자도 웃을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없이 어찌 자신이 태어났다는 말인가? 또한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도 만드실 것이면 왜 콕 집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이 또한 문자주의적 해석이라고 변론하려나? 아~ 이 또한 그들은 앞부분만 차용한다. 뒷 부분의 말씀인 “남자와 여자를”삭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해석하고 차용하는 전형적인 방법들이다. 그러니 박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어찌 대화가 되겠는가. 너무 많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으나 그것조차 의미 없는 일인 것은 아무리 많은 근거를 제시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하여 눈 닫고 귀 막고 있으니까.

2) 반기독교적인 이유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을 지적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과 본체와 영광이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육욕이 충만한 동성애자로 본다. 심지어 가롯 유다와 예수님은 삼각관계였다고 한다. 그래서 가롯유다가 예수에게 삐진 것이라고 한다.

믿음이 전혀 없는 드라마 작가도 양심상 그런 구상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유치찬란한 발상을 신학이랍시고, 또는 대단한 진리인냥 낭설을 퍼트리는 자들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목사들이요 신학교 교수들이다.

대체 그러한 사람들은 어떤 구조를 갖고 살기에 그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손주세대가 겪게 될 참담한 상황을 한 번 쯤이라도 생각을 해보고 차별금지법을 속히 제정하라고 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불가한 족속들이다.

3) 반 신학적인 이유

이들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신론과 기독론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다원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인 까닭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죄론을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죄의 근원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간음, 탐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이 땅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선언과 같이 뼈 속 깊이 물들어 있는 죄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러한 죄에 대한 언급과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인간적인 측면에서 성경을 해석하여 마음대로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질문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죄목들이 있고 부조리한 것들이 있는데 왜 동성애만 가지고 그러느냐? 동성애에 대해서만 물고 늘어지지 말고 다른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 관심을 가져라“

핵심적인 것은 이것이다.

창세기에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동성애가 죄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목사나 신학교 교수의 이름으로 위와 같이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이며 반 신학적인 가르침을 통해 시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다 죄인데 유일하게 동성애만 죄가 아니다”라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동성애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요, 동성애의 문제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드러내는 그 결과물인 것이다.

또한 사회와 개인의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것들을 들먹이며 동성애자들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죄가 아니라 창조의 질서대로 사는 동성애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에 의해 고난 받는 종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더우기 성경을 왜곡한 것도 모자라 국가의 법까지 바꾸려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들의 불의함을 보면서도 침묵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들은 잠시 동성애에 빠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자신들의 소견으로 미혹하여 복음을 차단하고 있다. 그 결과 소경된 인도자의 꼴이 되어 자신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보고 어찌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글을 쓰고 광화문에서 월요일마다 32회 동안 집회를 하며 말씀을 선포한 것은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 자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또한 거짓된 가르침에 속고 있는 자들을 향해 생명을 살리는 참된 복음이요 참된 진리인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4 결론

이 시대의 심각한 이단은 외부에 있지 않다.
바로 신학교 안에, 감리교회 안에, 이 감리교게시판에 득실대고 있다.

이들은 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태어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사람들, 천국과 지옥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방자할 수 밖에. 뿐만 아니라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고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그룹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온갖 궤변으로 복음을 혼잡하게 하는 리워야단과 같은 사람들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서 결국 향방없이 방황하는 그룹들이다. 오죽하면 그들을 산발랏과 도비야에 비유했을까?

그들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자신의 정체를 가리며 난삽한 이론으로 복음을 매우 혼잡하게 하는 부류들이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기본이고 참된 진리와 복음을 논하면 아주 괴로워 한다. 자신들도 예수의 은혜를 입었다고 말은 하나 진짜인지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거짓말은 기본이고 자극적인 댓글을 통해 허탄한 말로 미혹하며 온갖 의구심을 자아내도록 유도 한다. 지금까지 행한 일들을 보면 어쩜 거짓의 아비를 그대로 닮았을까?

아무리 자신들은 아니라고 하나 한 분 성령 안에서 결코 연합할 수 없음은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섬기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고백과 삶을 보면 그가 누구든 괴로워 못 견디겠기에 스토커처럼 댓글을 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하니 어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주의 종들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은 어린 아이들이라도 알아 들을 수 있고 믿어 구원에 이르기에 충분하도록 성령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역사하신다. 어찌보면 매우 진부할 정도로 복음은 그러하다. 그러나 그 단순한 듯한 복음이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그 누구든지 기회를 잃어 버리기 전에 진심으로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동성애 자들도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얻고 누림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목사든지 교수든지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도록 성령님을 구해야 한다. 이는 마땅한 것이다.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생명을 살리고 죄와 환경을 이기며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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