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교수님, 주님을 만나긴 했나요? : 주님이 만나 주신 삭개오

최세창
  • 1583
  • 2021-08-03 00:37:24
(설교 동영상 : 유튜브)

<누가복음 19:1-10>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시작하는 말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좌우하는 데에 호조건이냐 악조건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공이나 승리를 위한 호조건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거나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악조건에도 성공하거나 승리한 인물도 있고, 악조건 중 악조건인 장애물을 뛰어넘어 성공하거나 승리한 인물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성공이나 승리를 위해 호조건인지 악조건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따져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전심전력을 다해 악조건도 무릅써야 하고, 장애도 뛰어넘어야 합니다.

2.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의 문제와 장애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나 승리를 위해서, 모든 사람이 반드시 만나야만 할 주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삭개오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으므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삭개오 자신은 내적 결핍과 공허함을 채우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유대교의 교리를 지키며 사는 유대교인이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한 자신의 가치와 존재 이유와 성취와 소유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주로 소문이 자자한 예수님을 만나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삭개오를 비롯한 모든 인간은 영육의 존재이므로 재물이나 지식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얻거나, 그 밖의 성취만으로는 충족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죄악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심전력을 쏟았기 때문에, 자기 상실이 심화되고, 내면의 폐허와 공허함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조차 없이,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정신없이 달려가면서 거짓과 위선, 사치와 연락, 허세와 허영, 음란과 방탕으로 자기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망가뜨리는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모든 사람, 특히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거짓과 궤계, 외식과 위선, 위조와 위장, 배신과 배약, 이기적 계산과 망상, 비방과 비난, 모함과 모략, 물욕과 지배욕, 전쟁 위협에 의한 이권 챙기기 등으로 폐허가 된 마음 밭을 제대로 가꾸어 덕스럽고 풍요로운 인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우선적으로 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야 하고, 늘 주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일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주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공허함과 내적 갈망 때문에, 주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보려고 시도해 오던 삭개오는, 주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실 때에, 만나기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섰습니다. 삭개오가 구주로 소문난 예수님을 그토록 만나 보고자 한 것은 구원받았다는 확신도 없었고, 내적 만족도 없었고, 불안과 죄책감과 소외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주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막는 장애가 있었습니다.
첫째 장애는, 키가 작은 것입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둘러싼 많은 사람들 너머 주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으며, 따라서 주 예수님을 보고 호소할 수도 없었습니다.
둘째 장애는, 주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삭개오에게는, 겹겹으로 둘러친 성벽과 같았습니다.
대개 성공할 호기회란 호조건들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성공할 호기회란 움직일 수 없는 장애나, 움직일 수 있는 장애를 동반하게 마련입니다. 그때, 우리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든가, 장애를 뛰어넘어 기회를 붙잡든가 하는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모든 장애를 포기를 위한 조건이 아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니라, 성공을 위한 조건으로 여겨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장애는 활용하면 되고, 움직일 수 없는 장애는 태도를 바꾸면 됩니다.
삭개오는 주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고귀한 뜻에, 장애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하나님의 뜻이, 이번 기회에 주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하면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기에는, 그 자신의 존재 의미와 성취한 것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포기하기에는, 그의 내적 문제가 너무 심각했고, 주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 역시 너무나 강력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결국 삭개오는 좋은 방도를 생각해 내게 되었습니다.

3. 장애를 뛰어넘은 삭개오를 만나 주신 주 예수님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는 예수님을 뵙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뽕나무”로 번역된 헬라어 쉬코모레안(συκομωρέαν)은 무화과뽕나무, 시카모오무화과, 애굽무화과를 의미합니다.
삭개오는 체면이나 위신보다 더 주 예수님을 뵙는 것을 최우선적이며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삭개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님을 만나려는 삭개오의 강렬한 열정과 강력한 의지를 꺾기에는, 체면과 위신과 부정적 생각 등의 내적 장애 요인들과 모든 외적 장애 요인이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리고 둘러싼 많은 사람들 때문에 포기하는 대신에 무화과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누구보다도 주 예수님을 잘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 막히는 것은, 더 좋은 새 길을 열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리가 바라는 것이나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장애가 있을 때에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잘 알고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에게는 움직일 수 있는 장애는 활용하라는 것이고, 움직일 수 없는 장애는 태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맡아 놓고 실패하는 사람은 악조건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장애가 되는 사람입니다.
1988년에 모 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31살의 화백이 안국동 백상기념관에서 32점의 그림을 전시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화백이 전신마비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군 복무 중에 전신마비가 되어 깊은 절망과 좌절감으로 원망하고 저주하며 죽기만을 바라던 그에게, 수도종합병원의 모 전도사님이 끈질기게 기도해 주고, 성경을 읽어 주며, 뒷바라지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부흥회를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주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주 예수님을 만난 그의 생은 새롭게 전개되었습니다. 손발을 쓰지 못하는 그는, 주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가 된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어떤 사람도 패배자로 끝맺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4:16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보다도 더 주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 순종하는 확고한 믿음으로 해내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을 만날 열정으로 자신과 모든 장애를 뛰어넘은 삭개오가 있는 무화과뽕나무로, 주 예수님이 일부러 찾아오셨습니다. 영혼 깊숙한 갈망은 주 예수님의 영과 공명하는 법입니다. 주 예수님은 그 나무 위의 삭개오를 우러러보셨습니다. 키가 작아서 늘 남들을 우러러보던 삭개오가 장애를 뛰어넘는 바람에, 주 예수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께 우러러보이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삭개오는 놀라운 감격에 휩싸였습니다. 그토록 주 예수님을 갈망하는 삭개오에게, 바로 그 주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삭개오는 신나서 주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삭개오는 이미 주 예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 교인들의 문제는 주 예수님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도, 순종할 마음도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설교를 건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님을 뵙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집과 삶의 현장으로 모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기 바랍니다.
복된 만남을 보고 본받기는커녕, 주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거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에는 본받아야 할 호기회를, 시기와 비난의 호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 세상 사람이 시기를 하든지 비난을 하든지, 박해를 하든지 핍박을 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나 삭개오는 만남의 기쁨과 만남의 복을 한껏 누렸습니다. 그 만남의 즐거움과 만남의 복은, 주 예수님의 사랑에 의한 근본적인 변화이며,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님을 만난 교인은 많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그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첫째,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소유의 의미가 사랑의 도구임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만일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토색한 죄가 있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공허한 심령은, 주님의 영으로 채워졌습니다.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회개하고 믿음으로 죄 사함과 죄 사함으로 인한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을 얻는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newrema.com(T. 426-3051)의 설교자의 저서들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설교집 28권/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다수의 논문들

이전 이경남 2021-08-02 폭염
다음 박온순 2021-08-03 [박경미 교수• 혐차반모에 대한 반론- 이유 그리고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