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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의 반성문
민관기
- 1256
- 2021-08-02 20:30:32
나는 착한 사람이다. 사람이 다치는걸 제일 싫어한다. 나의 동생이 불의의 사고 즉 산의 산소에 있는 비석을 어른들이 고정시켜 놓지 않아 그 비석이 쓰러지며 동생이 4살때에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하여, 난 의도치 않게 외아들로 자라났고 좀 외로움과 슬픔을 많이 타는 편이다.
= 내가 며칠전 엄마 젖을 먹었었는데 어느날 밥을 먹게 되었고 밥을 먹다가 가만히 앞을 보니 내가 먹던 젖을 먹는 어떤 애를 목격했다. 나는 아~ 저게 동생이라는 거구나하고 처음 깨달았다. 나는 시기/질투심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 나는 지금까지 많이 먹었다란 생각에 억울한 감정 같은게 안들었고 밥이나 할머니가 씹어주는 김치같은걸 먹다보니 젖은 싱거워서 먹는게 꺼려지더라.
아마도 동생의 죽음으로 나의 삶의 방향은 정해졌을 것이다.
하여, 난 학력고사를 본후 누구하고의 상의나 고민도 없이 감신에 가기로 결정을 했고 부모님에겐 그냥 알려드리기만 했다.
= 왜 그랬는지 몰라. 상의하면 어디가 덧나나.
내가 중2때 80년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TV에서 보았다. 전 해엔 민족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에 너무 놀라 엄청 울었다. 국모께서 서거하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너무나 슬펐다. 그리곤 웬 머리가 빛나는 사림들이 누가 뭐 잘못을 했다나 뭐라나하며 전면에 등장하는 걸 보았고 그러려니 했다. 그 때에 아버지는 그 폭도들이 난리치는거 보시며 저저~ 저놈들~히며 한탄을 하셨다. 그런줄만 알고 84년 감신에 입학하였는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는 100% 정반대의 진실을 접하게 되었다.
광주사태가 아니라 광주민주화항쟁=운동이었다는 사실과 이 학살극에 전두환 노태우 등의 군사정권이 국민학살을 하였다는 사실.
난 극도로 분노했다. 즉각적인 학살정권 타도투쟁에 나의 신명을 다 바치기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을 했다.
경찰서에 13번 연행/피체/투옥 당하는 88년까지의 삶.
헌데, 나는 군사정권타도에만 매물되어 민족의 미래에 우리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
민족에게 있을 86년 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저지하여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는 학살정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정권의 연장이 주어지게 하는 것일 뿐이므로 이 대회는 파탄나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나는 동지들과 함께 실제로 갖은 기획을 하여 이를 파탄내고자 했다.
학살군부독재를 종식시키는 것과 민족의 미래를 일구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여 일어난 우리 세대들의 참극이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저 쪽이하면 저들이 잘되는 일이기에 반대의 반대를 하는 현상은 사실 그 때부터 증폭되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양상은 구태정치로 지금도 횡행을 한다.
아주 고약한 버릇을 민족이 답습하게 하는데에 기여한 것이다.
하여, 이제야 나는 그 때의 일을 돌아보아 다시는 소의/소리나 당파(당파는 없지만)의 이해에 따라 판단과 실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오로지 역사의 정방향에서 이랬어야 한다.
학살정권타도하자~
아시안 게임저지하자~가 아니라.
학살정권에게 민족의 영광 아시안 게임을 맡길 수는 없다.
군부독재타도없이 민족의 미래는 없다.
군부독재타도만이 민족의 살길이다를 총화하여 이렇게.
"학살정권 타도하고 아시안 게임 빛내자~"
"학살정권 타도하고 아시안 게임 응원하자~"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하고) 학살정권 타도하자~"
"학살정권 타도하고 아시안게임 우승하고 가자! 바캉스~"
"학살장권 타도하고 가자 ~ 바캉스~"
"바캉스 피서는 농활로~"
*. 부정과 부정 그리고 부정과 긍정은 전혀 다른것이다.
좀 더 전략적이고 대중적인 전략전술을 펼치지 못하는 우민함으로 87년 6월 항쟁에 승리하고도 김현희 칼 사건 한방에 정권교체의 바람은 그렇게 사라졌고 그 후의 역사는 거개가 다 아는 바이다.
나는 87년 12월 19일 밤을 끝으로 구로구청과 구로경찰서에서 나의 학창시절을 마무리했다.
그 12월 19~20일 밤 나는 86년 건국대사태를 떠올렸다. 1500여 명의 공산혁명분자. 감신생 25명 구속.
날은 새벽이 되어 3시경 이 일을 떠올리며 난 결심했다. 그 자리엔 감신 학생들이 [민족예수 애국 감신]의 깃발을 들고 50여 명이 있었다. 마지막 학살정권의 부정선거 숨통을 끊겠다는 결심으로 말이다. 헌데,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다시 50여 명 구속의 길을 가게 할 수는 없었다. 나야 4학년이니 그러타쳐도 1, 2, 3학년이 그중에 48명이었고 4학년은 나와 전시형 밖에는 없었다.
나와 전시형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적들의 침탈이 곧 있을 것인데 어찌하겠느냐?
이 금쪽 같은 후배들 48명을 감옥살이 시켜야 겠느냐?
아니다. 역량을 보전하여 후일을 도모하라. 내가 혼자 남겠다했던 그 날이었다. 전시형은 무녀독남 외아들. 나는 그래도 여형제라도 있는 집.
하여, 전시형은 모든 학우들을 이끌고 현장을 이탈했다.
이는 내 인생에 있어서 제일 좋은 판단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 그 때 나와 전시형이 딱 한 학우를 놓쳤다. 그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고 3층인가에 따로 있다가 함께 학우들과 나가지 못하고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그가 정영구 목사이다.
세월이 하~ 흘러 오늘 날이 되었다.
군부독재는 궁극적으로 타승되었고 양대통령이 감옥을 살고 그 양대통령을 이었다는 양대통령도 감옥에 있고, 민주정권이 들어섰으며 민족은 그 학살정권이 세운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의 영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아이러니의 세상을 우린 살고 있다.
모든것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 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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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내가 작년 11월에 썻던 반성문이다.
생각나서 한 번 퍼왔다.
언젠가 강원도 평창 봉평의 조화순 목사님 댁을 방문하였다.
하니, 거실의 문갑 위에 무슨 상장 같은 것이 있어 보니 국민훈장 모란장? 동백장? 인가 서훈장이 있었다.
이 게 뭐에요? 하니 김대중 정부에서 포상한 국민훈장증이시라며, 나는 그 동안의 공헌이 있다하여 이런 것도 받았는데
나를 안내하고 지도해주신 오글 목사님에 대해선 훈장 드리게 할 수 없나? 하신다.
왜 안되겠어요. 몇 몇이 나서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하고 답을 하고 노력해보마 약속도 하였다.
2005년 본부 명의로 감리교회 독립 유공자 인명록을 발간하며 독립운동 공적이 있으나 아직 훈장을 추서받지 못한 분들도 명단을 작성하여 발표하였기에 후일 이 분들에 대한 추서 청원을 하기로 결정을 하였기에 독립운동가 훈장 추서 청원과 민주화 공로자 훈장 서훈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결정.
이런 저런 준비하던차 시간을 흘러~
왜 시간이 흘러? 내가 혼자 추진할 수는 없으니.
그리곤, 2008년 감독회장 사태 맞이.
아무것도 못하고 지금껏오니 정부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올해 조지 오글 목사님을 비롯 십 수명에게 국민훈장 등을 추서하였다.
그리곤 며칠 전 오글 목사님은 서거하셨다.
목사님께서 생전에 수행하신 일과 그것의 공로를 먼저 우리가 찾아 추서를 받으시게 하여야 했음이 마땅했으나 그러하지 못했다.
아쉬움과 안타가움 속에 2020년 11월 24일 11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제홀에서 추도예배가 있었다하니 다행이고 당연한 일이다.
조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글 목사님은 당신에게 필요한 말을 못하는 분이야. 그런 분은 김근태 의장도 그렇지만 속에 병이 나게 되어 있어.
김의장이야 고문을 받아서 더 심하지만 목사님도 아마 지금 파킨슨병과 같이 몸에 떨림이 오는 질병이 계실거야.
우리가 병을 낳게 할 수는 없어도 그 분이 바라시는 일은 이루어 드려야 그나마 그 분의 병이 호전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가하니 니들이 나서서 그 일을 해라가 곧, 국민훈장 추서와 같은 일이었다.
하여, 뒤늦게 서훈된 점을 반성하고 앞으로 감리교회사에 잊어서는 안되는 분들에 대한 훈/포상을 추진함에 있어 제인들과 성심를 다해 보고자 한다.
*. 추서 : 서거하신 국가 유공자에게 드리는 훈장을 서훈할 때 "추도하여 서훈한다"라고 추서라 한다.
서훈 : 살아계신 국가 유공자에게 훈장을 서훈할 때 그냥 서훈한다라고 한다.
서거 : 국가 유공자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로 붙이는 용어이다. 국가 유공자 ???가 서거하셨다.
서거 00 주기 추도식 등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