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24-27(동성애)의 문자적 해석이 아닌 주경신학적 해석(다자대조연구) II

최세창
  • 1269
  • 2021-08-02 01:16:16
사실상 진리는 하나님의 속성이며(요 17:3, 요일 5:20, 계 3:7), 하나님의 말씀(법) 및 복음이다(시 30:9, 86:11, 119:43, 142, 160, 요 8:40, 17:17, 고후 6:7, 갈 2:14, 골 1:5).
[거짓 것으로 바꾸어]의 [거짓 것]은 토 프슈데이(τῷ ψεύδει)로서 ‘우상들’ 또는 ‘거짓 신들’을 의미한다. 우상들은 하나님의 참 표현이 아니므로 흔히 거짓이나 거짓말쟁이로 불렸다(사 28:15, 렘 10:14, 13:25, 시 40:4). 그리고 [바꾸어]는 메텔락싼(μετήλλαξαν)으로서 ‘변질시켰다’가 아니라, ‘교환하였다’, ‘대치하였다’를 뜻한다. 즉, 하나님의 진리 곧 참 하나님을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거짓 것 곧 우상으로 대치시켰다는 것이다.
참과 거짓의 성격적 대조를 말한 바울은, 이어서 그 기원을 대조하여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라고 하였다.
[보다 더]는 파라(παρὰ)인데 “원래 비교급의 문장에서 ‘~보다’(Lietzmann, Riesenfeld)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다만 ‘~ 대신에’를 의미한다”(E. Ksemann).
[경배하고 섬김이라]의 전자는 에세바스테산(ἐσεβάσθησαν)으로서 “일반적인 예배이고, [섬김이라]는 엘라트류산(ἐλάτρευσαν)으로서 특별한 의식이나 제물을 통한 예배이다”(Vincent).⑥ 웨슬리(J. Wesley)와 벤겔(J. A. Bengel)은 전자는 내적, 후자는 외적 경배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두 낱말은 근본에 있어서는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1:9의 주석을 보라.
그레이트하우스(W. M. Greathouse)는 “만일 사람이 창조주를 경배하지 않으면, 피조물을 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의 고칠 수 없는 종교심이다.”라고 하였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에 대해, 케제만(E. Ksemann)은 “이교도들이 피조물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사실에 놀란 나머지, 유다의 관습에 따라서(Billerbeck)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기릴 뿐만 아니라 꺼림칙하여(Schlier, ‘Heiden’ 35) 그러한 가증스런 사실을 멀리하고, 아멘으로 그의 진술을 중단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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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인역을 통하여 유포된 양식인 [영원히](εἰς τοὺς αἰώνας)는 헬레니즘 영역에서 흔히 통용되었던 단수형 대신 사용되었다. 이때 영원이란 셈어적으로 무한한 시간의 진행인 것처럼 보인다”(E. Ksemann).
[찬송할 이시로다](ὃς ἐστιν εὐλογητὸς)는 신약성경에서는 항상 하나님을 가리켰다(롬 9:5, 막 14:61, 눅 1:68, 엡 1:3).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기본적인 은사에 대한 인간들의 진지한 감사를 표시하는 노래이므로, 오직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아멘](ἀμήν)은 {‘견고하다’, ‘신실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 어원에서 온 말이다(P. E. Hughes)}(고후 1:20의 주석).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서약’, ‘진술’, ‘선언’ 등을 확인할 때 사용했는데(민 5:22, 왕상 1:36, 렘 28:6), 그것이 예배 때에 기도에 동의를 표하는 회중의 응답으로 발전한 것이다(시 106:48, 느 8:6, Ⅱ 에스드라서 15:13, 18:6, 계 5:14, 7:12, 19:4). 또, 보통 문장의 서두에서 ‘진실로’, ‘참으로’, ‘정말로’라는 뜻으로, 그리고 찬양 등의 끝에 기원을 나타낼 때에 사용되기도 하였다(계 3:14).
{쇠트겐(Schoettgen)은 이 말이 얼마나 미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입증하기 위하여 수많은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아멘을 말하는 자는 축복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 “아멘을 말하는 자는 누구이든 그에게는 낙원의 문이 열리게 된다.” “아멘을 짧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날이 짧게 될 것이다. 반면에, 아멘을 분명하게 길게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날이 길게 될 것이다”}(고전 14:16의 주석).
피조물을 조물주 대신 경배하고 섬기는 이방인들의 종교적 죄(우상 숭배)를 논한 바울은, 이어서 그 자연스런 결과라 할 수 있는 그들의 도덕적 죄를 논한다.
바울은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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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인하여](διὰ τούτο)는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부끄러운(명사인 아티미아스, ἀτιμίας: 1:24의 “욕되게 하셨으니”의 주석을 보라.) 욕심]의 [욕심]은 파테(πάθη)로서 {본질적으로 느낌이나 경험을 뜻했지만, 헬라의 고전 작가들에 의해서 그것은 선하든 악하든 간에 어떤 수동적인 감정을 언급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후에는 거친 감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C. Vaughan, p. 175)}(저자의 골 3:15의 주석). 신약성경에서는 ‘성욕’, ‘정욕’, ‘색욕’, ‘색정’(본절, 살전 4:5), ‘사욕’(골 3:5) 등 무절제한 욕망이나 나쁜 종류의 정서를 의미한다.
[내어 버려두셨으니]는 1:24의 주석을 보라.
여기의 수치스러운 정욕이란 여인들이 [순리대로 쓸 것](τὴν φυσικὴν χρήσιν), 즉 자연적 또는 본연적 용법을 [바꾸어](1:25의 주석을 보라.) [역리](파라프신, παρὰφύσιν) 곧 자연을 거역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결혼하여 남편과의 성행위를 통해서 자녀를 낳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데, 그에 반하여 같은 여인과 더불어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웨슬리(J. Wesley)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에 버려두셨는데, 특히 로마의 이교도들은 극도로 버림받았다. 그리고 로마의 황제들보다 더 심하게 버림받은 사람들은 없었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 숭배를 한 죄의 결과 중 하나인 동성애에 탐닉한 현상을 설명한 것이다.
칼빈(J. Calvin)은 “이 말씀은 사람들이 모든 자연 질서를 거스른 이래 그들 자신의 짐승 같은 욕심에 내버려졌을 뿐만 아니라, 짐승들보다 더 나빠졌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다음에 바울은 그 당시에 어떤 규제가 전혀 없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부도덕인 동성애 외에, 모든 세대에 있었던 모든 부도덕에 대한 긴 목록을 열거한다.”라고 하였다. 기포드(Gifford)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적하는 죄는 그 형벌로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적하는 죄를 수반한다.”⑦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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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라는 점에서는 남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이 점에 대해 바울은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자들]은 ‘수컷들’을 뜻하는 아르세네스(ἄρσενες)로 쓰고, [여인]은 ‘암컷’을 뜻하는 텔레이아스(θηλείας)로 쓴 것을 보면, 바울이 그들의 성적 문란을 비판하는 것 같다.
[음욕이 불 일 듯하매]는 ἐξεκαύθησαν ἐν τῇ ὀρέξει αὐτών으로서 ‘그들의 음욕(속)에 불이 붙었다’ 또는 ‘그들의 음욕이 달아올랐다’는 뜻이다.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의 [그릇됨]은 플라네스(πλάνης)로서 “하나님을 떠난 방황”⑧ 곧 우상 숭배(J. Wesley, W. M. Greathouse, 조선출)를 의미하고, “상당한 보응”은 “동성애의 결과”(A. Barnes, 이상근)가 아니라 우상 숭배의 결과로 받는 현재적 심판으로서의 부도덕한 정욕을 의미하는 것이다.⑨ 물론, 이 정욕에도 정신적․육체적 파멸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동성애는 천박한 계급의 인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심할 것 없이 모든 계급에 퍼져 있었다.…키케로(Cicero: Tuscul. Ques. iv. 34)는 디케아르쿠스(Dicearchus)가 그 동성애에 대해 플라톤(Plato: 주전 427?-347?)을 비난했는데, 아마도 정당한 비난이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말하기를(Tuscul. Ques. iv. 33), “그 행위는 헬라인들 사이에 흔했으며, 그들의 시인들과 위인들 그리고 심지어 박식가들과 철학자들까지도 행하며 자랑하였다.”라고 하였다.…크세노폰(Xenophon: 주전434?-355?)은 “소년들의 비자연적인 사랑이 매우 흔했으며, 그 일이 많은 지역에서 공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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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제정되었다.”라고 하였다.…디오게네스 라엘티우스(Diogenes Laertius)는 “이 악덕은 스토아 학파의 시조인 제노(Zeno: 주전 336?-263?)에 의해 행해졌다.”라고 하였다.…세네카(Seneca: 주전 4-주후 65)는 자기 시대에 동성애가 로마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졌는데,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았다고 하였다.⑩
바클레이(W. Barclay)에 의하면, 초기 15대까지의 로마 황제 가운데 14명이 동성애자들이었다고 한다.
웨슬리(J. Wesley)는 “그들은 그들의 잘못인 우상 숭배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 즉, 우상 숭배와 부자연스러운 정욕 때문에 벌을 받는데, 그 몸에 심한 불명예가 되는 것이 우상 숭배가 하나님께 심한 불명예가 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크란피일드(C. E. B. Cranfield)는 “동성애란 그리스와 로마만의 독점품은 아니다. 셈족 세계에서도 흔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추행이었다(창 19:1-28, 레 18:22, 20:13, 신 23:17, 왕상 14:24, 왕하 23:7, 사 1:9, 3:9).”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의 매우 큰 병폐 가운데 하나도 역시 성적 부도덕 및 동성애와 그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피해라 할 수 있다.
바울은 그러한 동성에 반하여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 4:4)라고 하였고,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전 7:2-3)라고 하였으며, 또한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하였다.
예수님과 바울은 창세기 2:24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마 19:5, 엡 5:31)라고 결혼의 원리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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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6) in 이상근.
7) in E. F. Harrison.
8) J. A. Bengel, “Godet”(in 黑崎幸吉), E. Ksemann, C. E. B. Cranfield, “Kuss”(in E. Ksemann).
9) C. E. B. Cranfield, J. Barmby, E. Ksemann, 조선출.
10) in A. 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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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 2판 1쇄), pp. 1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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